기고
산업안전, 업종별 맞춤형 ‘정밀 안전체계’로 전환해야
최근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사고는 한국 산업안전의 구조적 취약성을 다시 확인시켰다. 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대책은 쏟아지지만 정작 현장의 예방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안전체계가 여전히 ‘사고 후 대응’ 중심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위험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업종별 예방 시스템과 조직 간 협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 노동자는 언제든 생명의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근로복지공단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전체 산업재해는 증가 추세이며 특히 제조업과 건설업의 사고 비중이 높다. 2024년 기준 출퇴근 재해를 제외하고 산재사고를 기준으로 총 약 27만6000명에게 4조7000억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는데 건설업 제조업 운수·창고·통신업 및 기타의 사업의 비중이 높았다.
그 중 건설업은 해마다 약 7만명 안팎의 사고가 발생하고 지급 금액은 1조8000억원을 넘었다. 제조업도 역시 약 7만2000명의 산재가 발생해 보상금은 1조300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운수·창고·통신업 및 기타의 사업 등 분야에서도 사고와 산재보상 지급액이 줄지 않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사고뿐만 아니라 질병도 동일한 추세이다. 이는 산업재해가 특정 업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산업 전반의 구조적 위험과 직결된 문제임을 보여준다.
상이한 위험구조를 한가지 틀로 관리하는 방식으론 한계
문제는 이러한 업종별 특성이 정책 설계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제조업은 기계·설비 사고와 화학물질 위험이 상존하고 건설업은 추락·붕괴 등 고위험 작업이 일상적이다. 반면 기타 사업장은 과로, 물류 사고, 감정노동으로 인한 질병이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상이한 위험구조를 한가지 틀로 관리하는 방식으로는 사고를 줄이기 어렵다.
정부는 최근 근로감독관 2000명 증원, 일터지킴이 도입, 중대재해의 처벌 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감독 인력 확대는 점검 빈도를 늘릴 수 있어도 업종별 위험을 정밀하게 진단하고 선제적 예방체계를 구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처벌 강화 역시 사고 이후에 작동하는 방식이어서 예방중심 전환에는 부족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고가 나기 전에 위험을 제거하는 구조적 체계”다.
마침 8일 노사정 대표들이 처음으로 산업안전을 주제로 공식 회동을 갖고 상시협의체인 ‘안전한 일터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노사정이 기후위기, 기술 변화, 취약노동자 보호 등 새로운 위험 요인에 공동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만큼, 이제 국가 정책 또한 산업안전의 근본적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업종별 맞춤형 산업안전 거버넌스 구축부터
따라서 지금 한국이 선택해야 할 방향은 업종별 맞춤형 ‘정밀 안전체계(Precision Safety System)’로의 대전환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고용노동부 대한산업안전협회 대한산업보건협회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근로복지공단 등 민·관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업종별 산업안전 거버넌스’를 구축할 것을 제안한다.
제조업에는 인공지능(AI) 기반 설비위험 예측과 화학물질 안전기준 강화, 다국어 안전교육, 직업병 조기진단 체계가 필요하다. 건설업에는 발주–설계–시공–감독 전과정에서의 책임 일원화와 위험 외주화 차단, 드론·사물인터넷(IoT) 기반 실시간 감지 시스템이 요구된다. 기타 사업 분야는 과로·감정노동 보호, 소규모 사업장 안전시설 지원, 정신건강 포함 안전체계 확립이 시급하다.
산업안전은 이제 노동자의 기본권이자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다. 안전을 비용이 아닌 미래에 대한 투자로 바라보고 업종별 정밀 안전체계 구축을 국가적 과제로 삼아야 한다. 지금이 ‘업종별 맞춤형 산업안전 거버넌스’ 출범으로 한국 산업안전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결정적 시점이다.
박진우
근로복지공단노조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