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시대 일본 유통기업의 생존전략

2025-12-22 13:00:01 게재

전통적 비즈니스 모델 한계 넘어 지역 인프라와 물류 허브,글로벌화로 진화 중

저출산·고령화, 인구감소, 전자상거래(EC) 확산 등으로 일본 유통 산업은 구조적 전환의 한가운데 있다.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한계에 직면했고 각 기업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각기 다른 해법을 내놓고 있다.

이온몰은 전국에 164개, 해외를 포함해 총 202개의 거점을 운영 중인 일본을 대표하는 대형 쇼핑몰이다. 패션, 잡화, 식품, 가전 등 다양한 전문 매장을 한곳에 모아 원스톱 쇼핑 환경을 제공하며, 지역의 상업 및 생활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출처 이온몰 홈페이지

이온몰, 쇼핑몰에서 지역 인프라로

이온몰은 전국에 164개, 해외를 포함해 총 202개의 거점을 운영 중인 일본을 대표하는 대형쇼핑몰이다. 패션 잡화 식품 가전 등 다양한 전문매장을 한곳에 모아 원스톱 쇼핑 환경을 제공하며 지역의 상업 및 생활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온몰의 미션은 ‘삶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라이프 디자인 개발자(Life Design Developer)’로,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지역 인프라로서 주민의 생활과 도시개발에 기여하는 시설을 구축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온몰의 핵심 고객층은 주말에 방문하는 30~40대 자녀를 둔 가족들이다. 그러나 저출산이라는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이러한 가족층이 급격히 줄면서 기존 비즈니스 모델이 흔들리고 있다. 현재의 모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사업구조 전반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첫번째는 지역 물류거점으로의 확장이다. 단순한 쇼핑센터를 넘어 ‘지역 물류허브’로 기능을 확장함으로써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 위해 물류 기능을 갖춘 고객 풀필먼트 센터(CFC)를 설치할 계획이다. 이미 이온몰은 전국 단위로 상업시설 내 테넌트 매장을 대상으로 창고에서 매장으로 상품을 운송하는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여기에 한 단계 더 나아가 온라인 주문 상품의 보관·포장·배송까지 담당하는 풀필먼트 서비스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쇼핑센터의 물류 거점화는 인구감소가 불가피한 일본에서 이온몰에게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매장, 로봇 물류창고, 배송센터라는 세 가지 기능을 하나의 건물에 통합한 시설은 10년 후 이온몰이 생존해 있는 새로운 모습일 것이다.

두번째는 인바운드 공략이다. 이온몰은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동시에 해외에서 유입되는 인바운드 관광객을 대상으로 일본 관광지와 연계해 관광객이 인근 이온몰도 함께 방문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2025년 2월기 3분기 실적에서는 관광지나 공항 인근 이온몰의 면세 매출이 전년 대비 약 2배 증가하며 성과를 보였다.

이온몰은 꾸준한 설비투자를 이어가며, 2025년 상반기 영업수익 2328억엔(전년 동기 대비 4.8% 증가), 영업이익 319억엔(19.0% 증가)을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의 글로벌 전략

세븐앤아이 홀딩스(Seven & I Holdings)는 세계적으로 전개하는 편의점 체인 세븐일레븐(7-Eleven)을 중심으로 슈퍼마켓 전문점 금융서비스 등 폭넓은 사업을 영위하는 일본의 대형 유통그룹이다. 2025년 5월 새로운 CEO를 중심으로 한 신경영진이 출범했으며, 2031년도까지 일본 편의점 시장에서 약 1000개 점포, 북미시장에서 약 1300개 점포를 새로 여는 야심 찬 확장 전략을 포함한 경영전략을 공개했다.

일본에는 5만개가 넘는 편의점이 있어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본 내 이미 2만1000개 이상 점포를 보유한 세븐일레븐은 추가로 1000개 점포를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편의점 밀도가 낮은 농촌지역과 중소도시를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다. 이들 지역은 24시간 소매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낮아 즉석식품, ATM, 공과금 납부 서비스 등 세븐일레븐의 강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추가로 확보하고 일본 편의점 시장에서의 선도적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전략이다.

북미시장은 추가 성장 여지가 큰 시장으로 평가되며 핵심 성장동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교외와 농촌 지역은 주유소 스낵 생활필수품을 결합한 세븐일레븐의 편의점 모델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곳으로 향후 확장의 주요 무대가 될 것이다.

세븐일레븐을 세계 1위 편의점 체인으로 만든 핵심은 상품 기획·제조부터 매장 운영까지 이어지는 일관된 비즈니스 모델이다. 다양성이 확대되는 글로벌 사회에서 편의점은 지역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생활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이 모델을 글로벌로 확장하는 동시에, 각 국가의 사회·문화에 맞춘 전략적 현지화를 추진하고 있다.

돈키호테의 역발상 경영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꼭 들르는 장소가 있다. 바로 일본의 대형 잡화점 ‘돈키호테’다. 돈키호테는 Pan Pacific International Holdings(PPIH)가 운영하는 종합 디스카운트 스토어 체인이다. ‘놀라운 가격의 전당(驚安の殿堂)’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다양한 상품을 저렴하게 제공하며 ‘정열가격(情熱價格)’이라는 자사 브랜드, 독특한 매장 레이아웃, 심야까지 이어지는 영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돈키호테는 ‘역발상 전략’을 핵심으로 삼고 있다. 매장구조를 복잡하게 설계해 고객이 ‘보물찾기’를 하듯 쇼핑하도록 유도하는 점포 디자인이 대표적이다. 비좁고 어둡고 혼잡한 동선, 오래된 느낌의 건물에서의 쇼핑 경험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독특한 체험을 제공한다. 형형색색의 장식과 손글씨 POP, 활기찬 배경음악(BGM)과 독특한 매장 안내방송은 쇼핑 자체를 하나의 체험형 콘텐츠로 만든다.

단순히 물건을 사는 장소를 넘어, 머무는 동안 끊임없는 자극과 발견이 이어지는 오락적 쇼핑 공간이다. 고객은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새로운 것을 찾고 싶다,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고 싶다’는 탐험가로 변신한다.

이러한 전략의 뿌리에는 현장 중심의 기업문화와 매장 단위로 높은 자율성을 부여하는 ‘권한 위임’ 모델이 있다. 각 점포 담당자는 일정 수준의 권한을 가지고 현지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카테고리 리더’ 제도다. 카테고리 리더는 7개 상품군의 매입을 총괄하는 책임자로 연간 매입 규모는 약 500억엔에서 많게는 4000억엔에 이른다. 다만 실제 매입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직원들이 담당하고 카테고리 리더는 최종 책임만 진다. 직원들은 철저히 ‘자기 일’이라는 인식 아래 움직이며 상사의 지시가 아니라 현장의 이해를 기준으로 조직 전체가 작동한다.

돈키호테는 겉으로 보면 역발상이 우연히 성공한 사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비자 행동과 사업 성장의 원리를 깊이 이해한 치밀한 전략에 기반하고 있다. 돈키호테는 ‘고객을 소중히 한다’는 차원을 넘어, 고객에게 ‘가장 편리하고 유리한 가게가 되는 것’을 기업 철학으로 삼는다. 고객은 감성이나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과 즐거움을 기준으로 돈키호테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매장을 찾는다는 고객 지상주의적 발상이다.

이 회사의 핵심 철학은 고객을 최우선에 두는 것과 현장에 과감히 권한을 맡기는 데 있다. 이 두 원칙을 그룹 전반에 깊이 뿌리내리고 이를 높은 수익으로 연결해 온 경영 방식과 마케팅 전략은 기존 유통업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이론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실제로 동일하게 실행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모델이다.

현재 일본 내 659개, 해외에는 미국 싱가포르 태국 홍콩 대만 등 123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35기 연속 매출과 이익이 증가했으며, 2024년에는 매출이 처음으로 2조 엔을 돌파해 일본 소매업계 4위에 오른 거대 기업이 되었다.

줄어드는 시장에서 성장하는 법 찾기

세 기업의 전략은 서로 다르지만 생존을 위해 사업구조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인바운드 수요 대응, 도시형·생활 밀착형 점포 강화, 원스톱 기능 확대, 그리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모색이 그 핵심이다.

그러나 일본 유통기업들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단기적인 실적개선이 아니라 ‘인구가 줄어드는 사회에서도 성장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다. 이들 기업의 새로운 실험이 어떤 성과로 이어질지는 앞으로 일본 유통산업 전체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양경렬 Yang GyungYeol 나고야 상과대학(NUCB) 마케팅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