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국가 책임의 사각지대 ‘청년 부상제대군인’
지난 12월 3일 국회에서는 ‘부상군인의 보상과 명예를 위한 지원체계 발전방안’을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군 복무 과정에서 부상이나 질병을 입고 전역한 청년들, 이른바 청년 부상제대군인이 처한 현실과 현 행 보상·보훈체계의 구조적 한계가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단순한 제도개선을 넘어 병역의무 이행 과정에서 발생한 희생을 국가가 어떻게 책임지고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되짚는 논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청년 부상제대군인의 현실은 특정 집단의 어려움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병역의무 이행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에 대해 국가가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통계를 보면 군 복무 과정에서 부상이나 질병으로 전역하는 청년은 결코 소수가 아니다. 최근 수년간 군 복무 중 부상이나 질병으로 전역하는 인원은 매년 평균적으로 약 1000명 내외로 파악된다. 이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매년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현상이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통합적 관리와 체계적인 사후 지원은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다.
국방부와 보훈부로 이원화된 심사구조 문제
이러한 공백의 배경에는 국방부와 국가보훈부로 이원화된 심사구조가 있다. 군 복무 중 부상을 입으면 국방부는 전공사상심사를 통해 공상 여부를 판단한다. 그러나 국가유공자나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시 국가보훈부의 별도 심사를 거쳐야 한다.
국방부가 임무 수행 중 부상으로 인정한 사안에 대해 보훈 단계에서는 다른 판단이 내려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방부의 판단은 보훈 심사에서 법적 기속력을 갖지 못하고 참고 자료로 활용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동일한 부상에 대해 국가가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리고 그 부담은 제대 군인 개인에게 전가된다.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는 해당 부상이나 질병이 군 복무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의학적 자료와 법적 논리로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군 복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발생한 손상임에도, 국가는 이를 적극적으로 설명하기보다 개인에게 입증 책임을 맡기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권리 구제의 문턱은 높아지고, 상당수의 청년 부상제대군인은 제도 앞에서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현행 보훈제도의 경직된 등급 기준은 수많은 청년들을 정책의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 특히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이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같은 비가시적 상해는 기존의 외과적 기능 손실 중심의 등급 체계로는 충분히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의학적으로는 환자이지만 제도적으로는 보훈 대상이 아닌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사회적·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가오는 2026년은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고 청년 부상제대군인 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원년이 되어야 한다.
첫째, 전역 후 보훈심사가 완료되기까지 6개월에서 1년 이상 소요되는 공백기 동안 국가는 이들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부상 제대와 동시에 치료와 심리상담, 사회적응 지원이 끊김없이 제공되도록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둘째, 국방부가 공상으로 인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보훈심사에서도 일정한 준기속력을 갖도록 하거나 최소한 심사기준을 일원화해 부처 간 심사 불일치로 인한 불이익을 해소해야 한다.
셋째, ‘등급 외’ 판정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상이등급 7급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군 복무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이라면 완치될 때까지 국비 진료를 보장하고 사회 복귀를 위한 직업 재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분법적 보상체계를 넘어 희생의 정도에 비례하는 단계적이고 포용적인 지원 체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입증 책임의 전환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정보 비대칭성이 큰 군 의료사고나 질병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기록을 조사하고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국가가 함께 한다는 신뢰 회복의 한해 되길
2026년은 부상제대군인들이 국가로부터 소외되었다는 절망 대신 국가가 자신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끝까지 함께한다는 신뢰를 회복하는 해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헌법이 명시한 국가의 의무이며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책임 있는 공동체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