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정부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지방’ 대접이 달라졌다. 그 중 하나는 ‘지방정부’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방자치단체라는 명칭을 지방정부로 통일하라’고 지시한 이후 중앙부처는 입에 붙지 않는 지방정부라는 용어 때문에 ‘웃픈’ 현상도 생겼다. 주무장관인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조차 국무회의에서 ‘지방자치단체’라고 했다가 이 대통령에게 바로 지적받았던 일이 일어났다.
이재명정부는 연일 균형성장도 강조하고 있다. ‘5극 3특’ 전략을 중심으로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권역별 전략산업을 육성한다는 것은 과거 정부와 다른 행보다. 시혜적 성격이었던 균형발전 정책이 국가생존전략으로 격상됐고, 재정 또한 수도권에서 먼 지자체일수록 더 많이 배분된다는 것도 생소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비수도권에 투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고 있는 것은 지방의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일이다.
지방정부에 조직·입법·재정권 넘겨야 진짜 지방자치
단지 이재명정부가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라고 부른다고 해서 지자체가 처한 사정이 당장 달라지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지방정부도 정부인만큼 중앙정부와 동등하게 독립적인 자치 권한을 행사하는 정치적 실체여야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특히 지방은 수도권에 비해 ‘자립적 발전 역량’이 부족한 곳이다. 고부가가치 산업이 부족하고 기존의 기업도 성장이 정체됐다. 또한 청년 인력은 매년 수도권으로 유출돼 스스로 발전할 역량이 부족한 상태다.
지자체들은 이런 악순환을 깨기 위해 오랫동안 분권을 요구해 왔지만 정부가 갖춰야 할 자주적 인사·조직·예산권한은 여전히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다. 조례 제정은 상위 법령의 틀 안에 갇혀 있고, 예산의 상당 부분은 중앙정부의 교부금에 의존한다. 인사권과 조직 구성 권한조차도 행정안전부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
이는 과거 정부가 지방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여긴 탓이다. 그간 지방자치단체는 중앙부처의 하위 행정단위라는 인식이 강했다. 중앙집권적 사고의 유산이지만 진보적 정부들이 들어선 뒤에도 이런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지방분권은 균형성장을 위한 출발점이다. 지금처럼 중앙정부가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지자체 간 경쟁을 시켜서 예산을 나눠주는 방식이어선 지방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자체가 자율성을 갖고 지역에 필요한 인재와 산업과 기업을 키울 수 있도록 권한을 넘겨줘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지방정부라는 용어가 걸맞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자치권이다. 자치권은 자치 조직권, 자치 입법권, 자주 재정권을 말한다. 다시 말해 지방주민에 대해 구속력을 가진 각종 제도를 제정하는 권한과 나아가 주택·병원·학교 등 공공시설을 건립하고 중앙정부의 허가 없이도 사회복지제도를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이러한 활동에 소요되는 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재정분권도 강력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지 어느덧 30년이 지났다. 1991년 지방의회 선거를 시작으로, 1995년 자치단체장 직선제가 도입됐지만 여전히 지방정부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지난 30년 동안 지방자치가 제도적으로 정착됐다면 앞으로는 단순히 중앙정부의 행정 부담을 분산하는 수단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실현해 나갈 수 있는 민주주의 토대이자 공간으로 자리 잡도록 자율성을 부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지방자치는 제도와 권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제는 ‘지방행정’을 넘어 기초단위에서 생활자치와 주민주권이 실현되는 시대로 나아가야 것이야말로 지방자치 30년을 넘어 다음 30년을 잘 준비하는 길이다.
실질적 지방분권은 지방분권개헌안에 '지방정부' 명시하는 것
지방정부를 언급한 것은 이재명정부가 처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화되지 못한 것은 현행 헌법상 지방자치단체의 정식 명칭을 지방정부로 바꾸는 개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앙정부가 먼저 지방정부라고 부르는 것은 지금으로선 상징적인 의미에 불과하다.
중앙과 지방을 종속적 관계에서 협력적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선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지방정부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 의미를 가지려면 실질적 지방분권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그 시작이 이재명정부가 지방분권개헌안을 발의하고 거기에 지방정부를 명시하는 일이다.
홍범택 자치행정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