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정책은 왜 교실에 닿지 못하는가

2025-12-26 13:00:46 게재

5년 동안 교육현장을 취재했다. 정권이 바뀌고 장관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정책 브리핑실에서 쏟아지는 현란한 슬라이드와 수치들과 교실 사이의 거리다. 기자실에서 받아 적은 보도자료의 장밋빛 전망과 현장에서 마주한 피로한 눈빛 사이에는 언제나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그 간극 사이에서 수많은 정책이 태어났고 그 만큼 많은 정책이 죽어나갔다.

최근 교육부에서 잘나가던 한 국장이 예상과 달리 지방 교육청으로 발령났다. 대학 정책 분야의 전문가로 꼽혔던 인물이다. 그는 지역대학 혁신이라는 큰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선정 대학 한 곳당 5년간 최대 1000억원을 투입하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사업에 선정된 대학들이 교육부 연차평가에서 최하위등급(D)을 받았다. 대학 통합의 약속은 내부 반발로 무산됐고, 대학 혁신은 오히려 갈등만 키웠다. 1000억원을 받는 대학이 꼴찌 평가를 받는 아이러니. 안타깝게도 그 국장의 퇴장은 예고된 결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한 사람의 실패가 아니라 현장과 소통 없는 정책 설계의 한계였다.

정책 설계도 위에 사람은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 국장은 유능하고 열정적이었다. 숫자와 지표를 다루는 솜씨도 탁월했다. 다만 한가지가 빠져 있었다. 현장의 숨소리였다. 정책은 설계도면처럼 깔끔하게 그려졌지만 그 도면 위에 사람은 충분히 담기지 못했다. 교수들의 반발, 학생들의 불안, 지역사회의 우려는 모두 ‘변수’로 처리됐다. 결국 그 변수들이 전체 방정식을 무너뜨렸다. 그런데 전혀 다른 장면도 목격할 수 있었다.

최근 인천의 한 스튜디오 같은 교실을 찾았다. 온라인으로 중국어를 가르치는 수업이었다. 모니터 네 대가 나란히 놓인 작은 공간에서 교사와 아이들이 실시간으로 연결돼 있었다. 화면 속 학생들이 “오늘 우리 뭐 먹지?”를 따라 읽고 있었다. 교사가 “입 모양 확인하고 있어요”라고 말하자 아이들이 웃으며 입을 크게 벌렸다. “반장 얼굴이 안 보여요”라는 말에는 “화장실 갔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온라인이었지만 교실 특유의 활기가 살아 있었다.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다. 인천온라인학교. 2023년 21개 강좌로 출발한 이 학교는 2년여 만에 116개 강좌로 늘어 5배 이상 성장했다. 특히 덕적도 영흥도 자월도 등 교사 수급이 어려운 도서 지역 10개교 중 8개교가 참여하고 있다. 중국어 일본어 같은 제2외국어를 배울 기회조차 없던 섬마을 아이들이 이제 화면 속 선생님과 “니하오”를 주고받는다. 뭍의 아이들과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숙제를 낸다.

교육부 만족도 조사에서 수강학생 421명 중 73%가 수업 전반에 만족한다고 답했고 평가 공정성에 대한 긍정 응답은 79%에 달했다. 수업을 마친 뒤 교사에게 비결을 물었다. “출석 체크할 때 아이들 표정을 봐요. 오늘 컨디션이 어떤지. 화면으로도 다 보여요.” 화려한 슬라이드도, 수천억원의 예산도 없었다. 대신 아이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카메라 켜주세요, 얼굴 좀 보여주세요”라고 말하는 교사의 헌신이 있었다. 1000억원짜리 정책과 일선 교사의 수업. 예산 규모로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쪽이 학생들의 삶을 바꾸고 있는지 대답은 분명했다.

한쪽에서는 지표와 수치가 정책을 움직였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들의 얼굴이 수업을 움직였다. 한쪽에서는 ‘혁신’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현장을 짓눌렀고 다른 한쪽에서는 “오늘 뭐 먹지?”라는 소박한 중국어 문장이 배움의 문을 열었다. 정책은 숫자로 평가받지만 교육은 관계로 완성된다. 두 장면의 차이는 그렇게 분명했다.

숫자 대신 얼굴을 본 교실

교육정책의 성패는 설계도의 정교함에 있지 않다. 그 설계도가 얼마나 현장의 숨소리를 담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엘리트의 완벽한 프레젠테이션보다 교사의 서툰 농담 한마디가 아이들의 마음을 연다. 회의실에서 만든 정책은 회의실에서 끝나지만 교실에서 시작한 변화는 교실을 넘어 퍼져나간다.

지난 5년 동안 수많은 정책이 발표됐고 수많은 예산이 집행됐다. 보도자료는 쌓여갔고 브리핑은 반복됐다. 그러나 정작 교실에서 아이들이 웃는 장면은 정책 브리핑실이 아니라 인천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관료들의 언어가 아니라 교사의 언어가 아이들에게 닿았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명쾌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 다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교육은 결국 “얼굴 좀 보여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닐까.

김기수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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