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 시대, 전력망이 문제다

2025-12-29 13:00:02 게재

탄소중립 위해 재생에너지 늘어날수록 ‘송전망’ 중요성 커져…HVDC가 대안 기술

“주말 오전에 강한 햇볕이 쏟아지면 전라남도에서만 14GW의 전기가 태양광 패널에서 생산된다. 회사도 공장도 다 쉬니 전기를 쓸 곳이 없다. 다행히 유틸리티급 태양광발전소는 대부분 한전 자회사들이기 때문에 출력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한국전력거래소 관계자의 말이다.

전력망은 전기가 부족해도 문제가 되지만 너무 많아도 계통에 문제가 발생한다. 전력망에 전기가 과잉공급되는 경우 여러 가지 해결책이 있다. 유럽의 경우 대부분 인근 국가로 남는 전기를 판매한다.

캐나다 퀘벡에서 미국 뉴욕시까지 1250㎿ 규모의 수력 전력을 HVDC 송전망으로 송전하는 CHPE(Champlain Hudson Power Express) 프로젝트. 인양선들이 허드슨강에 배치되어 뉴욕주 콩거스에 수중케이블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준비중이다. 사진 ⓒ 2025 TDI CHP Express

전력망이 독립된 고립계통 국가

우리나라는 전력망이 독립된 고립계통 국가다. 국가 간 전력망 계통연계가 이루어진 유럽이나 북미와는 조건이 다르다. 전기가 부족하거나 남을 때 자체적으로 계통의 변동성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 아직 큰 사고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이 크게 늘어나면 상황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태양광 발전량이 과도하게 늘어나면 어떻게 할까? 대규모 전기저장장치(ESS)를 설치해 남는 전기를 저장하거나 물을 전기분해해서 수소를 생산하면 효율적이다. 에너지 효율은 낮지만 양수발전소 상부댐에 물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연중무휴 전력 사용량이 많은 데이터센터를 전남에 설치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력이 남아돌 때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소의 출력을 제한한다. 원전이나 석탄발전소는 출력을 제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태양광과 풍력발전은 탄소중립의 핵심이고 앞으로 전력 생산의 주역이 될 것이다. 불규칙한 재생에너지를 보완하려면 ESS나 수소 연료전지, LNG 발전처럼 출력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24시간 가동하는 원전과 석탄발전은 점점 설자리를 잃을 것이다.

인류 정착과 농경시대를 거치는 동안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300ppm 이하를 유지했다. 18세기 중엽 산업혁명 이후 이산화탄소 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지금은 450ppm에 육박한다. 석탄과 석유로 대표되는 화석연료 연소가 온실가스 증가의 주원인이다.

4차 산업혁명은 ‘탄소중립’과 함께

4차 산업혁명(2020~2050년)은 인간문명의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다. ‘탄소중립’이다. 주요 기술은 인공지능(AI)이고 에너지원은 ‘전기’다. 그 전기는 화석연료로 생산하면 안된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재생에너지를 써야 한다. 30년 동안 에너지사용량 증가를 20~50%까지 억제하는 것이 인류 공통의 목표다.

다시 ‘직류(DC)로 돌아가자’는 바람

1882년 에디슨은 3대의 직류 발전기로 3000여개의 백열전구에 전력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에디슨은 110V 직류를 사용했다. 문제는 송전이었다. 직류 100V는 2㎞ 이상 송전할 수 없었다. 넓은 도시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에디슨은 곳곳에 발전소를 지었다. 발전기는 석탄을 때는 증기기관으로 가동했다.

1880년 테슬라는 당시 표준이었던 직류(DC)가 아닌 교류(AC) 전기를 창안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물러가고 달려오는 해’ 등의 문구에서 그는 ‘회전하는 자기장’을 생각해냈다. 직류는 한쪽 방향으로 일정하게 흐르지만 교류는 양방향으로 파동을 그리며 흐른다. 교류 전기는 높거나 낮은 전압으로 쉽게 변환할 수 있어 장거리 전송이 가능했다.

에디슨은 끝까지 직류를 고집했고 테슬라는 에디슨과 결별한다. 그는 조지 웨스팅하우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교류(AC)를 이용해 미국 여러 도시의 전기화를 이끌었다. 오늘날까지 세계적으로 전력망은 주로 교류 전기로 운영된다. 장거리까지 효율적으로 전력을 전송하고 전압을 변환하기 쉬워전세계 가정과 기업의 표준이 되었다.

130년이 흐른 지금 다시 ‘직류(DC)로 돌아가자’는 바람이 거세다. 교류 송전은 전력망이 복잡하고 땅에 매립하는 송전방식으로 비효율적이다. 무효전력이 있어 송전효율도 나쁘다. 교류(AC) 송전의 단점을 보완한 직류(DC) 송전 방식이 ‘초고압직류송전(HVDC, High Voltage Direct Current)’이다.

HVDC는 반도체 소자인 컨버터를 이용해 기가와트(GW)급 큰 전력을 DC로 변환해 송전한다. 수요지역에서는 다시 인버터로 AC로 변환해서 공급한다. 승압과 강압이 어렵다는 DC의 단점이 보완된 것이다.

DC는 주파수가 없어 전자파를 방출하지 않는다. 인체나 통신기기에 영향이 없고 절연이 간단하다. 피복이 얇아지니 전선 굵기도 가늘어진다. 같은 굵기의 전선이라면 DC는 AC보다 2배 이상 송전한다. AC 송전탑에 비해 철탑 크기와 면적, 수량도 줄어든다. 그만큼 자연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든다.

기존 AC 송전탑을 활용해 HVDC로 송전하면 더 많은 전력을 보낼 수 있다. DC로 발전하는 태양광이나 풍력발전과 연계도 쉽다. 태양광 발전 모듈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직류다. 이 전기를 인버터를 이용해 교류로 변환해서 사용한다. 태양광은 석탄발전이나 원전, LNG 발전처럼 회전하는 터빈 발전기가 없다. 회전수 조절을 통해 주파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관성’이 없다. 주파수와 위상이 존재하지 않으니 계통 안정도도 높다.

HVDC는 300㎞가 넘는 장거리 송전, 40㎞가 넘는 해저·지중 송전에 매우 유리하다. 우리나라는 1998년 제주-해남 해저케이블에 HVDC를 처음 도입했다. 이후 해남 완도 진도 제주 4곳에 HVDC를 적용해 운전 중이다. 강원도-수도권, 호남-수도권 전력망에도 HVDC 도입을 추진중이다. 2024년 기준 전세계에서 175개 이상의 HVDC 프로젝트가 운영중이고 전체 송전용량은 320GW 이상이다. HVDC 케이블 시장은 2025~2035년까지 약 16.5% 기하평균(CAGR)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2035년 약 613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재생에너지 연계와 그리드 확장 전략

유럽은 국가 간 전력계통 연결에 ‘바이킹 링크’ 같은 HVDC 링크를 통해 전력 교역과 시스템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또 북해 해상(Offshore) 풍력 발전을 본토 그리드로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미국과 남미에서도 재생에너지 연계와 그리드 확장 전략으로 HVDC 활용이 늘어나고 있다.

국토가 넓은 중국은 HVDC 도입에 더 적극적이다. 중국은 800kV급 초고압 HVDC 프로젝트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대규모 수력, 태양광, 풍력 발전을 도시와 산업 중심지로 연결하는 데 HVDC가 핵심 역할을 한다. 내몽골 지역에 집중된 태양광과 풍력발전 전력을 HVDC를 이용해 동해안 공업지대로 보내는 작업도 시작했다.

‘에너지 고속도로’ 미국 HVDC 참조 필요

이재명정부는 2030년까지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를 구축하고 2040년까지 U자형으로 한반도 전역(서해안 → 남해안 → 동해안)을 잇는 전국 ‘에너지 고속도로’를 완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핵심 기술은 초고압직류송전(HVDC)이다. 문제는 ‘주민 수용성’이다. 밀양 송전탑 사태와 같은 사회적 갈등, 8년째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해안-수도권 HVDC 송전망’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HVDC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송전선 갈등이 극심한 미국에서 HVDC는 기술이자 사회적 타협 수단이다. 캐나다 퀘벡에서 미국 뉴욕시까지 1250㎿ 규모의 수력 전력을 HVDC 송전망으로 송전하는 CHPE(Champlain Hudson Power Express) 프로젝트의 핵심은 ‘보이지 않게’이다. 대부분 수중·지중 케이블로 설치해 지역 반발을 최소화했다.

‘수 그린 송전 프로젝트(SOO Green HVDC Link)’는 아이오와에서 일리노이까지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풍력과 태양광 발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에너지저장장치를 통해 안정화한 후 약 560km 길이의 525kV 초전압직류송전을 통해 공급한다. 전력망은 철도부지 내 지하에 매설한다. 미국 HVDC의 메시지는 “완벽한 기술보다 통과 가능한 기술이 중요하다”이다.

에너지고속도로는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초대형 송전탑으로 새로 건설하기는 어렵다. 기존에 깔린 교류 송전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터널과 교량으로 이어지는 고속철도 노선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남준기 기후재난연구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