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김정은-트럼프 회동 가능성, 희망과 현실 사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인적 관계는 아직 좋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5년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을 방문한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만남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김정은의 반응이 없자 체류 일정을 하루 더 연장하면서까지 기다리는 트럼프의 모습은 거의 ‘애원’에 가까웠다.
지난 12월 5일 공개된 트럼프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서(National Security Strategy)는 북한에 대한 언급을 완전히 생략했다, 북한의 핵무기 위험성과 비핵화를 강조하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위협인식의 우선순위를 조정한 결과로 평가된다. 이는 적어도 대북 적대감을 직접 표출하지 않음으로써 간접적인 우호의 신호를 발신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트럼프의 속마음이 진정한 한반도 평화의 구축인지 알 수 없다. 아마 세간의 추측대로 온 세계가 관심을 보일 김정은과의 회동을 통해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노벨평화상을 받겠다는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2026년 4월경으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을 위한 중국 방문을 계기로 트럼프는 다시 김정은과의 회동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의 ‘꿈’과 김정은의 ‘현실’
김정은의 ‘침묵’은 단순한 무반응이 아니라 엄중한 현실에 대한 정밀한 인식에 기반한 전략으로 보인다.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첫째, 대미인식의 변화를 들 수 있다. ‘하노이의 치욕’에 대한 트라우마가 상상 이상 컸을 것이고 그로 인해 미국에 대한 잠깐의 환상을 처절히 ‘총화’하고 거의 영구적인 불신이 북한 지도부는 물론이고 인민대중에게 확고히 자리잡았을 것이다.
둘째, 김정은도 쉽게 바꿀 수 없는 북한의 국가 전략과 정책은 북미관계 개선을 ‘구조적으로’ 어렵게 하고 있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은 국가전략과 대미정책을 재정립했다. 안보를 위해 핵무력 강화와 재래식 무기 첨단화를 병진하고, 경제 자립을 추구하며, 외교적으로는 러시아 및 중국과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군사력에서는 자력으로도 미국에 대한 ‘최소억제’가 가능한 체계와 태세를 완비하려 한다. 최근(12.14.) 공개된 8700톤급 전략핵잠수함과 핵능력 강화 의지 천명은 그러한 노력이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성공적인 대중러 외교로서 북한은 러시아 및 중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해 대미 억제능력을 보강했다. 2024년 6월 체결한 북러간 ‘포괄적 전략동반자관계’ 조약에 따라 2024년말부터 북한은 전투부대와 공병부대를 러시아에 파견해 최소한 수백 명의 희생 위에 ‘혈맹관계’를 정립했다. 시진핑의 초청으로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북중러 정상들이 텐안멘 망루에 나란히 선 모습은 3국 협력관계의 상징을 넘어 하나의 ‘증명’이었다.
넷째, 북한의 국내경제에 대한 자신감이다. ‘자력갱생’의 성과는 사회적 안정의 정착에도 기여한다. 북러 조약으로 군사뿐 아니라 경제 기술 문화 분야 교류협력도 빠르게 활성화되었고 북중무역 규모는 코로나 국경폐쇄 이전 수준을 회복해 증가 일로에 있다.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 결정으로 시작된 ‘지방발전 20×10 정책’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지방 소재 공장 농장 살림집 의료시설 등이 계획대로 들어서고 있다. 한편 2025년 7월 원산갈마지구에 대규모 현대적 관광단지를 완공하여 경제발전 전략과 인프라 건설 능력을 과시했다.
‘근본문제’ 해결 없이 만남 성사는 난망
북한은 안보와 외교와 경제에서 더이상 미국을 두려워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꿈이 이루어지려면 미국이 먼저 변화하는 수밖에 없다. 요컨대 북한이 말하는 ‘근본문제’의 해결 즉, 대북적대정책의 폐기에 대해 북한에게 확신을 주어야 할 것이다. 다른 ‘인센티브’는 만남의 결과이지 이유가 될 수 없다.
북미간 대화가 재개된다면 그 자체로 한반도 긴장완화의 효과를 낼 것이다. 이재명대통령이 언급한 페이스메이커(pacemaker) 역할이 의미를 가지려면 역시 ‘근본문제’의 해결에 기여해야 한다. 그래서 피스메이커(peacemaker) 역할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도 전략을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이 먼저 평화적인 관계를 정착시킨다면 주변 강대국들에 대한 전략도 함께 짜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트럼프와는 다른 꿈을 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