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새해로 넘긴 연준 통화정책 딜레마
미 연방준비제도의 올해 최대 관심사는 관세와 인플레이션에 집중됐다.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보면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20.1%다. 1910년대 초 이후 최고치다. 올 초 트럼프 대통령 취임 당시의 실효 관세율 2.4%와 비교하면 8배 이상 차이다. 하지만 연말 소비자 물가에 나타난 관세의 영향은 미미하다. 관세를 흡수한 수입업체와 소비자 물가 간 시차가 길어진 탓이다. 미 노동통계국(BLS)의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2.7% 올랐다. 전달보다는 0.3%p나 하락했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도 2.6%로 전월보다 0.4%p 내려간 상태다.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 커져
반면 미국의 공식 실업률은 1월 4.0%에서 9월 4.4%로 상승했다. 장기실업률 평균치인 4.2%를 웃도는 수준이다. 고용둔화 속에 임금만 빠르게 오른 게 고용시장 특징이다. 미국의 임금 증가율은 5%대다. 연준이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보다 고용악화를 중시하고 9월 이후 3차례 연속 금리를 내린 이유다.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미 장기인플레이션 기대치를 반영하는 10년물 미 국채수익률은 4.1%로 올라간 상태다. 연준의 통화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의미다. 실제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연준 경제전망과 자산부채표 자료를 보면 모순이 곳곳에서 나타날 정도다.
우선 정책성 장기금리의 상승세다. 연준은 2023년 말까지 정책성 장기금리를 2%에서 3.3% 구간에서 관리했으나 지난해 말 2.4%에서 3.9%로 올렸다. 올해에는 하한선을 다시 2.6%로 더 올린 상태다. 인플레이션을 이용해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실효금리 하한선(ELB) 리스크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고금리로 인해 재정 조달비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연준(Fed)의 총자산은 6조5300억달러 규모다. 총자산 중 미국정부 채권은 4조2000억달러로 전체 자산의 64% 비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말 연준 총자산 4조1700억달러의 56%인 2조3300억달러의 정부 채권을 보유했던 것에 비하면 2배 가까운 수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늘어난 연준 자산 2조3700억달러 가운데 정부 채권 보유 비중은 78.4%다. 한마디로 연준이 미국 재정적자의 화폐화에 주력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댈러스 연방은행 데이터를 보면 2019년 말 이후 올해 11월 말까지 늘어난 미 정부 채무는 15조2000억달러다. 이 중 거래 가능한 채권은 액면가 기준 13조3900억달러에 달한다. 연준이 보유를 늘린 채권이 국채 증가 수량의 13.9%를 차지한 셈이다.
대신 성장목표나 물가목표에 대해서는 과소평가 일색이다. 연준이 올해 예상하는 경상 실질 GDP 성장률 중간치는 1.8%다. 하한선은 1.7%이고 상한선은 2.5%로 0.3%p 올렸다. 미 상무부 경제분석국(BEA) 최근 데이터를 보면 2019~2024년 실질 GDP 성장률은 연 2.4%다. 이는 연준의 장기 예상성장률 중간값인 1.8%를 크게 웃도는 수치이자 상한선인 2.5%에 가깝다. 2020년 이후 2024년까지 연준이 매년 12월 중순에 예측한 실질 GDP를 보면 모두 예측치가 실질 GDP보다 현저히 낮은 게 특징이다. 이게 미국 노동시장의 예상치 못한 경직을 초래한 원인인 셈이다.
물가관리도 마찬가지다. 연준의 근원 소비지출물가(PCE) 장기목표는 2%다. 하지만 2% 목표 도달 시점은 매년 늦춰지는 추세다. 올해 12월에 나온 경제전망을 보면 물가목표 달성 시점이 2028년으로 돼 있다. 지난 3월에 예상했던 2027년보다 1년 더 늦다. 지난해 8월 보고서를 보면 2026년이 2% 물가목표 달성 시점이고 2022년 9월에는 올해 말로 목표 시점이 설정돼 있다. 당시 PCE 물가가 6.67%였던 것을 고려하면 물가목표 달성 시점을 의도적으로 과소평가한다는 결론이다.
각국 중앙은행 연준과 동조화보다 각자도생의 길 찾을 듯
종합하면 연준이 시장을 과소평가하는 바람에 장기금리 상승과 재정적자 융자비용을 늘리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간 과도한 협력이 만든 결과다. 최근 달러 자산 대신 금은 등 귀금속에 글로벌 투자자금이 몰리는 현상도 이와 무관치 않다. 각국 중앙은행도 연준과의 동조화보다 각자도생의 길을 찾는 모양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경우 일찌감치 금리인하 사이클을 종료하고 디지털 유로 시범 프로그램 등 금융시스템 개혁을 통해 유로 자산 매력을 높이는 중이다. 한국은행 통화정책이 더더욱 중요해진 시점이다.
현문학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