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는 버핏, 550만% 수익률 비결은
“주식가치 본질에 투자”로 60년 동안 매년 20% 올라 … AI시대엔 누가 ‘월가의 전설’ 될까
그는 살아있는 ‘월가의 전설’이다. 지난 60여 년간 그가 세운 기록은 경이 그 자체다. 그는 1965년 파산 직전의 섬유회사였던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해 오늘날 자산 1조달러(약 1450조원)가 넘는 글로벌 복합기업으로 키웠다. 그동안 버크셔의 주식은 연평균 수익률 20%, 누적 수익률 550만%를 기록했다. 230여년의 월가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바로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 이야기다. 올해 95세인 버핏은 올 연말 버크셔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난다.
가치투자의 대가 ‘오마하의 현인’의 은퇴
지난 5월 주주총회에서 은퇴 의사를 밝힌 버핏은 지난 11월 10일(현지시간) 주주들에게 보내는 추수감사절 서신을 통해 “나는 이제 조용히 물러난다”라면서 퇴진을 재차 확인했다.
버핏은 후계자로 지명된 그렉 에이블 부회장에 대한 신뢰를 분명히 했다. 그는 “그렉 만큼 여러분과 제 자산을 맡길 CEO는 떠오르지 않는다”면서 “주주 여러분이 그렉에게 충분한 신뢰를 갖게 될 때까지 내 주식의 상당량은 유지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버핏은 서신의 말미에서 알프레드 노벨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알프레드 노벨의 형이 죽었을 때 한 신문사가 실수로 알프레드의 부고 기사를 냈다”면서 “자신의 부고 기사를 접한 알프레드는 큰 충격을 받고는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버핏은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당신의 부고 기사에 어떤 내용이 실리길 바라는가? 스스로 정하라.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라. 위대함은 막대한 돈이나 엄청난 홍보나 정부의 권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누군가를 도와라. 그것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친절은 비용이 들지 않지만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청소부 아주머니도 회장만큼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버핏은 투자철학을 담은 명언들도 숱하게 남겼다. 예컨대 “남들이 탐욕스러울 때 두려워하라” “이해하지 못하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마라” “투자는 인내의 게임이다” 등은 모두 버핏이 남긴 경구들이다.
버핏의 투자 비결은 ‘가치투자’와 ‘장기투자’로 요약된다. 버핏은 △꿈과 현실 사이 수익성이 높고 △재무구조가 탄탄하고 △브랜드 가치가 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경영진을 둔 기업을 투자의 대상으로 삼았다.
버핏은 또한 정기적으로 배당을 지급하는 기업의 주식을 주로 사들였다. 배당주는 화려하거나 혁신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인내심 있는 장기 투자자에게는 매우 성공적인 전략이라는 게 그의 계산이었다.
버핏이 가장 사랑한 주식은 애플
버핏이 고른 종목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얼마 전 미국의 3대 증권거래소 중 하나인 나스닥의 홈페이지에 ‘버크셔 포트폴리오에 포함된 워런 버핏의 46개 주식들’이란 제하의 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 따르면 버크셔 포트폴리오(2025년 8월 14일 기준)는 총 46개의 주식으로 구성돼 있다. 최근 공시 기준으로 3130억달러(약458조원)규모다.
버핏의 투자 원칙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포트폴리오 상위 10개 종목이 전체 투자의 82.1%를 차지했다. 버핏은 분산 포트폴리오를 견지하고 있지만, 자신이 확신하는 소수 종목에 집중투자를 한 것이다.
버핏이 가장 사랑한 종목은 애플이었다. 전체 투자의 24.2%인 759억 달러(약 111조원) 어치를 사들였다. 이어 2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546억달러(17.4%, 약 80조원), 3위 뱅크오브아메리카 322억 달러(10.3%, 약47조원), 4위 코카콜라 276억달러( 8.8%, 약40조4400억원)씩 투자했다. 5~10위는 셰브론(6%, 188억달러)과 무디스(3.8%, 118억달러), 옥시덴털 페트롤리엄(3.5%, 109억달러), 미쓰비시(3%, 93억달러), 크래프트 하인즈(2.6%, 80억달러), 이토추(2.5%, 78억달러) 등이 차지했다.
놀랍게도 버핏의 상위 10개 종목은 대부분 산업화 시대의 기업들이다. 애플 하나만 정보기술(IT) 업종일 뿐 나머지 9개 기업은 금융과 소비재 에너지 종합상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 버핏은 인공지능(AI)이나 가상화폐, 로봇 등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버핏은 2023년 4월 CNBC 인터뷰에서 “나는 솔직히 AI가 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로부터 처음 챗GPT를 소개받았던 당시의 느낌을 털어놓기도 했다. “챗GPT의 능력에 크게 놀랐다. 사람이 무언가를 할 때 얼마나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지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대단한 기술적 진보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만약 이 기술이 인류를 파괴하려 한다면, 누군가가 그냥 플러그를 뽑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업에만 투자”
버핏은 기술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업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버핏은 새로운 기술이 사회를 바꾼다고 해서 그 기술이 반드시 투자자에게 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자동차와 비행기처럼 혁신적인 분야도 주주들에게는 오랜 기간 수익성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버핏이 변심이라도 한 걸까?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간판기업인 알파벳이 최근 버크셔의 포트폴리오 톱10에 진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달 15일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버크셔가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 지분을 43억달러(약 6조3000억원) 어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FT는 “올해 말 은퇴를 앞두고 있는 버핏이 자신의 마지막 신규 베팅으로 알파벳을 택했다”라면서 “이번 신규 투자로 구글 모회사는 버크셔의 투자 순위 10번째(2025년 3분기 말 기준)에 올랐다”라고 전했다. FT는 “이는 고성장 기업보다는 장기 가치주를 선호해온 버핏의 철학에서 다소 벗어난 행보”라고 덧붙였다.
반면 버핏은 지난 3분기 동안 애플 주식 110억달러(약16조원) 어치를 팔아 치운 것으로 나타났다. 버크셔는 올 6~9월 사이 약 4200만주의 애플 주식을 매도했다고 공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분기 말 기준 버크셔가 보유한 애플 지분 가치는 약 610억달러(약89조4000억원)로 여전히 포트폴리오 1위를 차지하고 있다.
FT는 “애플과 알파벳을 제외하면 버크셔의 주요 보유 주식 가운데 빅테크 종목은 없다”면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 코카콜라 등 다른 최대 보유 종목들은 3분기 동안 큰 지분 변화가 없었다”고 보도했다.
애플을 팔고 알파벳을 사들인 게 잘한 걸까? 이번에도 버핏의 판단은 옳았다. 올 들어 애플 주가는 약 12% 상승에 그친 반면, 알파벳 주가는 45%나 올랐다(지난달 14일 종가 기준). 알파벳은 AI 칩 제조사인 엔비디아마저 누르면서 2025년 가장 좋은 성과를 낸 빅테크 주식으로 떠올랐다.
포트폴리오 가장 큰 비중은 현금
그러나 버크셔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현금이다. 버크셔는 현재 3441억달러(약 504조원)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버크셔가 보유한 주식의 시가총액보다 더 크다. 심지어 스탠더드&푸어스(S&P500) 기업 전체를 통째로 인수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이다.
버크셔는 특히 최근 수년 간 순매도 포지션을 유지하면서 현금 보유를 늘렸다. FT 보도에 따르면 버크셔는 지난 3년 동안 약 1840억달러(약 269조5000억원) 어치 주식을 팔았다.
버핏의 투자 인생 60년은 산업화와 정보화와 AI 시대를 잇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세상의 기술과 산업은 경천동지할 만큼 바뀌었다. 그러나 버핏은 흔들림 없이 가치의 본질에 주목했다. 이해하는 것에 투자하고, 변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고, 탐욕 대신 절제를 택했다. 그렇게 그는 ‘월가의 전설’이 되었다.
2025년을 끝으로 ‘월가의 노병’ 버핏은 조용히 물러난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그의 은퇴는 아마도 ‘산업화 시대의 종언’이다. 이제 AI시대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AI시대엔 누가 ‘월가의 전설’로 새롭게 나타날까? AI시대엔 AI가 버핏의 자리를 차지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