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반도체 매출 4천억달러 돌파
2026년엔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자금 조달 우려 … 학습→추론 경쟁 이동
인공지능(AI) 붐의 최대 수혜자는 엔비디아다. 매출이 전년대비 두배 이상 급증했고, 이 회사 반도체는 새로운 디지털 골드러시의 핵심 도구로 불린다. 그러나 경쟁 구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구글과 아마존이 자체 칩으로 시장을 파고들고 있고, 경쟁 무대도 학습에서 추론으로 이동 중이다.
엔비디아는 최근 인공지능 추론 속도를 높이는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개발 스타트업 그록과 200억달러 규모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과거 인공지능 경쟁이 학습 성능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훈련된 모델이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답을 내놓느냐를 다투는 싸움으로 전환되고 있다.
데이터센터 운영사와 인공지능 연구소들은 엔비디아의 H200, B200 그래픽처리장치를 앞다퉈 주문하고 있다. 동시에 구글의 맞춤형 칩 TPU, 아마존의 트레이니엄과 인퍼렌시아 칩도 고객을 빠르게 늘리는 중이다. 오픈AI 같은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브로드컴과 손잡고 자체 칩 설계에 뛰어들었다.
AMD는 2026년 엔비디아 인공지능 프로세서에 본격 도전하는 신형 GPU를 출시할 예정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향후 2년간 데이터센터 규모를 두 배로 키우겠다고 밝히면서 반도체 업체들의 기대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엔비디아가 2026년 GPU와 관련 하드웨어로만 3830억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추산했다. 전년 대비 78% 늘어난 규모다. 팩트셋 집계에 따르면 엔비디아와 인텔, 브로드컴, AMD, 퀄컴의 합산 매출은 5380억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구글과 아마존의 맞춤형 칩 매출은 비공개라 이 수치에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2026년은 전례 없는 도전의 해가 될 수도 있다. 전력용 변압기와 가스터빈 부족으로 데이터센터 건설이 지연되고, 대규모 연산에 필요한 전력 확보도 만만찮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서버 핵심 부품의 공급 부족도 심각하다. 초박형 실리콘 기판과 메모리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특히 인공지능 추론 수요 증가로 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HBM)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추론 작업은 학습보다 메모리 접근 용량에 더 크게 영향받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업체들은 공급 부족을 틈타 가격을 올리고 설비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대규모 반도체 공장 증설에는 시간이 걸린다.
데이터센터 확장 자금 조달의 지속 가능성도 변수다. 오픈AI 같은 주요 고객이 현재 속도를 유지할 만큼 충분한 자금을 제때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투자자들은 분기마다 이어진 폭발적 매출 성장에 익숙해진 만큼 성장 둔화 조짐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실제로 올가을 인공지능 관련 주식은 자금 조달 우려로 큰 조정을 받았다. 오픈AI는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과 수십억달러 규모 컴퓨팅 계약을 맺으며 데이터센터 확장의 핵심 동력 역할을 해왔다. 일부 분석가들은 2026년까지는 투자가 이어지겠지만 2027년 이후에는 속도가 둔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DA데이비드슨의 길 루리아 분석가는 2026년이 정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내년 3월 말까지 오픈AI가 1000억달러 규모 추가 자금 조달 소식을 내놓지 못한다면 시장이 속도 조절에 나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인공지능 반도체 업체가 늘면서 수익성 압박도 커지고 있다. 브로드컴은 올 12월 사상 최대 분기 매출을 기록하고도 고수익 제품군 성장 둔화 우려로 주가가 떨어졌다. 다만 컴퓨팅 하드웨어 유통업체 서큘러 테크놀로지스의 브래드 개스트워스는 인간 수준 인공지능, 이른바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를 향한 경쟁이 여전히 막대한 연산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반도체 산업의 상승 흐름이 쉽게 꺾이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