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가 양자혁명 이끈다
보석으론 저물었지만
‘양자센서’ 소재로 부각
보석 시장의 상징이던 다이아몬드가 첨단 기술 산업의 핵심 소재로 재조명되고 있다. 장신구 수요 부진으로 위축된 다이아몬드 산업이 ‘양자 기술’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29일 보도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다이아몬드 결정 구조에 미세한 결함을 인위적으로 삽입해 초정밀 센서로 활용하는 기술을 빠르게 상용화 단계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른바 ‘양자 다이아몬드’는 결정 내의 일부 탄소 원자를 질소 원자와 빈 공간으로 대체한 구조를 갖는다. 이 결함 부위에서 전자의 양자 스핀 상태가 외부 자기장이나 전자기장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극히 미세한 신호까지 감지할 수 있다. FT는 이를 양자역학을 실제 산업에 적용하는 ‘제2의 양자 혁명’의 대표 사례로 소개했다.
주목할 점은 상용화 속도다. 범용 양자컴퓨터가 여전히 실험 단계에 머무는 것과 달리, 양자 센서는 의료·항공·지질 탐사 등에서 이미 실증 단계에 진입했다. 영국 물리학자 피터 나이트는 FT에 “첫 번째 양자 혁명이 전자와 레이저, 반도체를 낳았다면, 두 번째 혁명은 양자 현상을 정밀하게 제어해 새로운 센서와 측정 기술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산업적 기대가 커지는 배경에는 다이아몬드의 물성이 있다. 다이아몬드는 상온과 상압에서도 양자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고, 진동과 외부 잡음에 강하다. 별도의 극저온 장비가 필요한 다른 양자 소재와 달리, 기존 전자 장비와 결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산과 확장에 유리하다는 평가다.
영국의 산업용 다이아몬드 제조업체 엘리먼트 식스는 이미 수천파운드 수준의 양자 다이아몬드를 판매하고 있다. 이 회사는 연간 300억달러 규모의 산업용 다이아몬드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연마·절삭용을 넘어 레이저와 반도체, 양자 센서용 ‘기술 다이아몬드’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엘리먼트 식스의 시오반 더피 최고경영자는 FT에 “합성 다이아몬드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 관점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독일 로버트 보쉬 산하 보쉬 퀀텀 센싱은 항공기 항법과 의료 진단을 양자 다이아몬드의 초기 시장으로 보고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위성항법시스템(GPS) 교란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지구 자기장을 활용한 항법 기술은 방위·항공 분야의 대안으로 거론된다. 의료 분야에서는 기존 심전도 검사나 바이러스 진단을 대체할 가능성도 제시된다.
다만 FT는 기술 낙관론에 신중한 시각도 함께 전했다. 다이아몬드는 제조 공정이 까다롭고, 기존 실리콘 기반 전자 시스템과의 연결성이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대규모 양자컴퓨팅보다는 센서와 계측 분야에 더 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상업적 성공 시점과 시장 규모 역시 아직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투자 판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FT는 다이아몬드의 산업적 위상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짚었다. 지난 수십 년간 다이아몬드가 ‘자르는 도구’였다면, 앞으로는 전자 시스템 속에 들어가는 ‘부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보석 수요 감소와 중국산 저가 합성 다이아몬드 확산으로 위기를 맞은 산업이 첨단 기술을 통해 재편될 수 있을지, 다이아몬드의 두 번째 전성기가 주목되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