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정부·시장·시민이 함께 하는 에너지전환
교수신문이 선정한 2025년의 사자성어는 변동불거(變動不居)였다.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변한다는 뜻이다. 올 한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대격변의 시기를 보냈다. 연 초 폭설과 맹추위에도 수많은 국민이 거리에 나와 민주주의 회복을 외쳤고, 6월엔 드디어 국민주권정부의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부푼 기대에도 불구하고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저무는 지금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변화가 녹록치 않음을 느끼고 있다.
정책적 측면에서 되짚어 볼 때 올 한해 가장 큰 변화와 과제를 동시에 남긴 부문 중 하나가 바로 기후⋅에너지 문제일 것이다. 이재명정부는 재생에너지에 기반한 성장을 핵심기조로 삼고 기후와 에너지를 하나의 행정체제로 통합하는 등 적극적인 에너지전환 정책을 내세우며 대한민국 최초의 기후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지난 11월에는 2035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53~61%로 설정하고,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도 2030년까지 100GW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갈수록 가속화되는 글로벌 에너지전환 흐름에 역행하던 위기의 대한민국을 바로 잡는 중대한 전환점이 마련된 한 해였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막상 국내의 에너지 현황을 들여다보면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2030년까지 매년 12GW 이상의 막대한 재생에너지 설비 증설이 필요한데, 국내 신규 보급 용량은 근래 연간 3~4GW 수준에 불과하고,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산업화 시대의 패러다임과 제도적 모순, 그리고 이해 당사자들의 반감 등이 전환의 길목을 가로막고 있다.
가격 경쟁력 확보가 전환의 열쇠
상황의 심각성을 직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에너지전환이 국가의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과제이기 때문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지속적인 인상이 불가피한데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의 성장에 따른 전력수요의 급격한 증가까지 겹쳐,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재생에너지 확보가 국가의 산업 경쟁력을 결정지을 핵심 요소로 떠오른 상황이다. 실제로 해외 유수의 기업들은 이미 저렴한 재생에너지 확보를 위한 다양한 전략 마련을 통해 비용상승 위험에 대응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도 에너지전환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공급자가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시장체계를 재조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국내 재생에너지 시장의 활성화와 관련 산업 생태계의 발전이 전제될 때 비로소 재생에너지의 확대가 경제적 사회적으로 지속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해외 사례를 봐도 재생에너지나 전기자동차 육성을 위한 각종 정책은 결국 해당 사업의 가격경쟁력 강화로 이어졌을 때 성공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현재 한국의 재생에너지 공급 가격은 중국에 비해 태양광발전 평균비용이 2.8배, 풍력이 4~5배나 비쌀 만큼 경쟁력이 낮다. 이같이 높은 가격은 전체 공급비용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높은 사회적 비용이 낳은 결과다. 최근 정부가 재생에너지의 이격거리 완화, 인허가절차 간소화, 주민주도형 햇빛 발전 및 영농형 태양광 확산 등을 서두르는 것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 역시 국내 재생에너지 사업의 시장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지 않으면 다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만다. 일부 장애요인의 해소만으로 가격하락과 산업생태계의 확장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왜곡된 시장과 가격의 교정, 혁신 사이클의 구축, 비용 효과적이며 계통문제 해결의 열쇠이기도 한 에너지효율과 유연성 자원의 개발 등을 포함해, 보다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정책 패키지가 치밀하게 재설계되어야 한다.
정부 역할은 시장의 룰 만드는데 방점 둬야
재생에너지의 가격경쟁력 확보는 또한 기업뿐 아니라 전환의 주체가 되어야 할 주민과 소비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영농형 태양광의 경우 상향식으로 전환하는 정책적 접근 방식을 넘어 시설투자 비용의 감소, 경제성 확보를 위한 인센티브 및 제도 개혁, 우선적 계통 접속 등의 과감한 정책수단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농업과 에너지전환의 결합을 통해 지역이 새롭게 도약하는 미래형 지역발전 계획과 연계해 기획되어야 한다.
에너지전환에 있어 정부, 즉 공공의 역할은 너무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가 전환 과정을 직접 운용하려는 방식은 자칫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정부의 역할은 에너지전환 측면에서 바람직하고 현명한 시장의 룰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새해엔 정부와 시민, 시장이 조화롭게 열어가는 희망찬 세상을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