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섬백길 걷기여행 38 울도 당산등대길
서해안 섬·바다 파노라마로 펼쳐져
썰물 때면 바닥이 드러나는 대피항을 대피항이라 할 수 있을까.
섬에서 목격한 최악의 예산 낭비 공사 중 하나는 인천 옹진군 울도항 방파제 공사다. 대피항을 명분으로 만들어졌으나 애초부터 대피 기능을 할 수 없는 입지였다. 공사는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이 1993년부터 16년 동안 60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울도항은 만조 때도 최고 수심이 3.5m에 불과할 정도로 낮고 간조 시에는 대피항 전체가 바닥이 드러난다. 만조 시에도 큰 배는 들어올 수 없고 간조 시에는 뻘 바닥이 드러나니 어선 한 척도 들어올 수 없다. 이것이 600억원의 혈세를 낭비해서 만든 대피항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울도항에는 이보다 더 기가 막힌 시설물도 있다. 집 한 채 없는 북망산 앞의 방파제다. 대체 무엇을 보호하려고 산 앞에 방파제를 만든 것일까.
그냥 예산을 빼먹기 위한 것이다. 1999년 지방어항에서 국가어항으로 승격됐던 울도항은 2019년 국가어항에서 해제됐다. 정박하는 어선이 적다는 것이 이유였다. 뻘바닥이 드러나 정박할 수 없게 만들어진 어항에 어느 어선이 정박하겠는가.
혈세를 도둑질한 범죄의 증거가 이토록 뚜렷이 남아 있지만 처벌받은 자는 없다. 그럼에도 해양수산부의 섬 지역 예산 낭비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대피항으로, 관광 어항으로, 어촌뉴딜, 신활력 사업 등으로 이름을 바꾸어 가며 혈세로 토건족 배 불리는 공사가 주구장창 진행 중이다.
울도는 큰 마을과 작은 마을 두 마을이 있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큰 마을에 몰려 산다. 과거 울도 바다는 새우어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파시가 서면 전국 각지에서 수백척의 어선들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었다. 파시 때 잡은 새우 대부분은 건하로 말려서 포장한 뒤 중국의 칭다오, 다롄, 톈진, 상하이 등지로 수출했다.
하지만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고 수출 길이 막히면서 울도 새우 파시도 막을 내렸다. 그후 울도 어장에서 잡힌 새우는 젓새우로 팔려나갔다. 울도 주민들은 충남 당진, 서산, 홍성 등지로 나가 새우젓으로 곡식을 바꿔다 먹기도 했다.
파시가 사라진 뒤 섬 주민들 중에 어업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작은 어선 몇 척이 조업을 하지만 어획량이 많지 않다. 주민들은 대부분 굴이나 홍합, 조개 등 해산물을 조금씩 채취하거나 비탈밭을 일구고 산다.
울도에는 백섬백길 89코스 울도당산등대길이 있다. 울도항을 출발해 보건소와 등대, 무명산, 넉바위를 지나 목넘어에 이르는 7.9㎞의 트레일이다. 울도 등대가 자리한 당산 정상에서는 서해안 섬과 바다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처진다.
등대로 가는 길 곳곳에는 울도 주민들의 피땀이 뿌려져 있다.
1960년대, 정부에서는 등대공사를 하청 업자에게 맡겼다. 업자는 울도 주민들을 인부로 고용해서 등대를 지었다. 울도 주민들은 선착장에서부터 2㎞ 넘는 산길을 오르내리며 자재를 운반했다. 시멘트와 모래, 물을 이고 지고 수도 없이 산길을 오르내렸다. 어린 소년, 소녀들까지 등대 공사에 참여했다.
하지만 공사가 끝나고 나서 울도 사람들은 품삯 한 푼 받지 못했다. 업자가 부도 났다는 핑계로 공사대금을 떼먹고 달아나 버린 까닭이다. 정부에서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주민들은 아직도 그때의 억울함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베락맞을 놈의 새끼들. 이런데 사람들이 어수룩 하니께 속여묵은 게여. 울섬 사람들 다 달라붙어서 했는디.”
섬은 그토록 아픈 세월을 지나왔다.
백섬백길: https://100seom.com
공동기획: 섬연구소·내일신문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