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이중 잣대…마약은 구실일 뿐
온두라스 대통령은 같은 혐의 한달전 사면
미국내 약물 대부분은 멕시코산 펜타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를 공격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하면서 마약 밀매 혐의를 내세웠지만, 불과 한 달 전 유사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다른 중남미 전직 대통령을 사면한 사실이 드러나 이중 잣대 논란이 일고 있다. 베네수엘라가 미국 마약 유입의 주요 경로도 아니라는 점에서 마약이 군사 개입의 진짜 이유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미 법무부가 마두로 대통령을 기소하면서 적용한 마약 관련 혐의는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전 온두라스 대통령이 받은 혐의와 사실상 동일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마두로 대통령이 “미국과 미국민을 상대로 치명적인 마약 테러리즘 캠페인”을 벌였다고 주장하며 석유 자원 확보와 함께 마약 밀매를 군사 작전의 주요 근거로 내세웠다.
트럼프 행정부는 마두로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국회의원, 외교부 장관, 대통령을 지내면서 마약 카르텔과 손잡고 20여 년간 미국에 수천 톤의 코카인을 유통했다는 혐의로 기소했으며, 그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 뉴욕으로 압송했다.
그런데 에르난데스 전 대통령의 경우 지난달 초 대통령 사면으로 석방됐다. 에르난데스 전 대통령은 마약 밀매 조직과 결탁해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등지에서 마약을 들여와 미국으로 보내는 데 관여하고, 기관총을 사용한 혐의 등으로 2022년 미국 검찰에 기소됐다. 그는 작년 6월 뉴욕 맨해튼연방법원으로부터 징역 4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는데,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가 미국으로의 밀반입에 관여한 코카인 규모는 최소 400톤에 이른다.
두 사건 모두 2010년께 미국 마약단속국(DEA) 수사로 시작됐으며 같은 DEA 팀이 수사를 담당했다. 심지어 마두로 대통령을 기소한 뉴욕남부지방검찰청의 수사반이 에르난데스 전 대통령도 기소했다.
게다가 NYT는 실제 미국 내 약물 과다복용 사망의 대부분은 남미산 마약과는 무관한 펜타닐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펜타닐은 거의 전량이 멕시코에서 생산되며 중국산 화학 물질을 원료로 사용한다. 베네수엘라를 포함한 남미 국가는 펜타닐 유통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공개된 기소장은 베네수엘라의 코카인 거래 관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소장에는 마두로 대통령과 공범들이 콜롬비아와 멕시코의 주요 마약 조직들과 긴밀히 협력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여기에는 콜롬비아 무장혁명군과 시날로아 카르텔 등 미국이 테러 조직으로 지정한 단체들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가 코카인을 대규모로 생산하는 국가는 아니며, 주요 마약 경유국 가운데서도 비중이 낮은 편이라고 평가한다. 베네수엘라를 통과하는 코카인의 상당량은 미국이 아니라 유럽으로 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과 콜롬비아, 유엔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으로 들어오는 코카인의 대부분은 카리브해가 아니라 태평양 항로를 통해 이동한다. 베네수엘라는 태평양에 면한 해안선이 없어 태평양 항로의 핵심 경유지로 보기 어렵다.
기소장은 2020년 무렵 베네수엘라를 거쳐 연간 200톤에서 250톤의 코카인이 유통됐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전 세계 코카인 거래량의 10%에서 13% 수준에 그친다. 다른 국가들의 비중은 훨씬 크다. 미국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과테말라를 통과한 코카인은 약 1400톤에 달했다.
다만 마두로 대통령이 마약 거래로 정치적 이득을 얻어왔다는 정황은 존재한다. 기소장과 전문가들은 마두로 대통령이 마약 유통 수익을 통해 군 고위 인사와 집권 세력의 충성심을 유지하는 데 활용해 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