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유가 게임체인저’는 아니다

2026-01-05 13:00:05 게재

단기 유가 충격 제한적

중장기는 리스크 존재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3일(현지시간) 생포하면서 세계 에너지시장의 변수로 부상했다.

단기적으로는 유가 급등 가능성이 제한적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지정학적 갈등과 에너지 공급 재편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국제유가는 5일 장 초반 1% 넘게 하락했다. 브렌트유는 런던 시간 기준 일요일 저녁 거래 개시 직후 배럴당 60달러로 떨어졌으며, 이후 소폭 회복했다.

◆“트럼프의 에너지 구상 ”베네수엘라 석유 되찾겠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베네수엘라의 석유산업을 재건(rebuild)하겠다”면서 “석유 회사들이 (베네수엘라로) 들어갈 것이다. 우리가 되돌려 받았어야 할 석유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와 파이낸셜타임즈(FT) 등에 따르면 확인된 원유매장량이 3000억배럴을 넘는 베네수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1위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석유 인프라에 대한 관리부실과 미국의 제재로 현재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90만~100만배럴 수준에 불과하다. 1990년대 정점의 3분의 1 수준이며,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1%에도 못 미친다. 베네수엘라는 하루 50만~80만배럴의 원유를 수출하는데 대부분의 물량이 중국으로 향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하면서 원유 주요 생산시설을 직접 타격하지는 않았다. 주요 원유 터미널인 호세, 아뮤아이 정유시설, 오리노코 중질유 지대는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미국은 최근 미국 제재 대상 유조선에 대해 봉쇄 조치를 취했다.

이에 다수의 유조선이 나포 위험을 피해 베네수엘라 인근 해역을 이탈했고, 원유 수송과 함께 필수 희석재인 나프타 수출도 차질을 빚었다.

◆베네수엘라 석유산업, 회복엔 자본과 시간 필요 = 베네수엘라 원유는 점도가 높아 나프타 없이는 생산·수송이 어렵다. 이로 인해 원유 적재와 나프타 수출이 동시에 멈췄고, 저장 탱크가 가득 차면서 일부 유전은 생산을 중단했다.

이 가운데 국제 유가는 큰 변동을 보이지 않았다. 세계 석유시장이 상당한 공급 과잉 상태에 있으며, 이 상황이 2026년 초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세계 석유시장은 베네수엘라발 공급 차질을 흡수할 여력이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베네수엘라 석유산업 붕괴는 오랜기간에 거쳐 진행됐다. 2007년 차베스 정부 시절의 국유화, 숙련 인력 축출, 반복된 사고와 부패, 미국의 금융·석유 제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미국 기술 의존도가 높은 시설 특성상 제재는 생산 기반을 약화시켰다.

이번 사태는 베네수엘라 석유가 당장 유가를 뒤흔들 ‘게임 체인저’는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켰다. 미국 에너지 컨설팅회사 래피던에너지의 밥 맥낼리 사장은 ”세계 최대 매장량이라는 점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오랜 정치적 불안과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을 고려하면 기업들이 쉽게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고 중장기적 파장마저 배제하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석유기업들을 베네수엘라에 투입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인프라를 복구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트럼프 구상대로 될 경우 베네수엘라산 원유는 세계시장에 상당한 추가 공급원이 될 수 있다. 물론 막대한 자본과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원유 생산량을 하루 50만배럴 늘리려면 100억달러(약 14조5000억원)가 들고, 2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 정유산업엔 부정적이지 않아 = 한편 이번 사태가 한국 정유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는 분석이다.

우선 단기적으로 국제유가 급등 우려가 없지만 설사 오른다 해도 재고 평가 이익(기존에 낮은 가격으로 사두었던 원유와 제품의 가치가 오르면서 단기적으로는 장부상 영업이익이 개선) 효과를 볼 수 있다. 유가상승으로 석유 제품(휘발유 경유 등) 수요가 줄어들면 수익성이 악화될 가능성은 공존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베네수엘라산 중질유 도입 재개로 원유 도입선 다변화와 원가 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 국내 정유사들은 고도화 설비를 통해 중질유를 휘발유·경유 등으로 바꾸는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가 해제돼 저렴한 중질유가 시장에 대거 풀리면 비싼 중동 원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 생산 정상화로 나프타 등 석유화학 원료 공급이 원활해지면 정유사가 운영하는 석유화학 부문의 수익성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호 양현승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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