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지방선거, 중앙정치 대리전 그만하자
2026년의 가장 큰 정치 행사는 단연 지방선거다. 대전환과 대도약이 절실한 나라의 미래가 걸렸다. 민선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지 31년째 되는 올해 6월 치러지는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달라져야 한다.
그동안 지방선거는 지역 일꾼이 아니라 중앙정치의 지역 대리인을 뽑는 일처럼 돼왔다. 정당 공천제와 중앙정치의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지방정치의 자율성이 약화한 탓이다. 벌써 정치권과 언론이 심판론이나 주요 인물의 대리전 구도를 부각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여야가 지방선거에서 ‘내란세력 척결’과 ‘정권심판’ 프레임을 앞세운다. 한결같이 국정주도권을 잡기 위해 지방선거 승리가 필수적이라고 호소한다.
‘지역소멸’ 직면한 현실 반영하는 선거 필요
‘풀뿌리 민주주의’의 산물인 지방정부는 교통 복지 주거 환경 같은 주민의 삶과 가장 밀접한 영역을 책임진다. 그럼에도 지방선거는 대통령선거나 총선에 비해 덜 중요한 선거로 여겨졌다. 정당 공천 중심의 선거구도, 중앙정치의 연장선처럼 치러지는 선거운동, 낮은 투표율은 지방자치를 형식적 제도에 머물게 한 요인이었다.
올해 지방선거가 더 주목받는 이유는 ‘지방소멸’이라는 냉혹하고 당면한 현실 때문이다. 전국 시·군·구의 절반 가까이가 ‘소멸위험 지역’으로 분류된다. 청년들은 일자리와 인프라를 찾아 수도권이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 학교가 사라지고, 병원이 문을 닫는다. 이 흐름을 되돌리지 못하면 지방선거는 점차 ‘선출할 사람은 있지만 운영할 지역은 없는’ 역설적인 제도가 될지도 모른다.
지방소멸 문제는 출산율이나 인구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정부가 지역의 산업구조를 재편하고, 지역 대학과 연계한 인재 생태계를 만들며, 지역 고유의 자원을 활용한 지속가능한 성장전략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권한과 재정의 실질적 분권이 전제돼야 한다. 전국 평균 지방재정자립도는 지방단체장 선거가 부활한 1995년 63.5%에서 48.6%로 외려 퇴보한 상태다.
균형발전은 오래된 구호지만 이루기 어려운 숙제다. 올해는 중앙정부가 추진해 온 ‘5극 3특(5대 메가시티, 3대 특별자치권)’ 중심의 균형발전 전략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다.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말은 더는 단순한 수사학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균형발전이 공공기관 이전이나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 머물렀다면 앞으로는 지역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발전 모델로 진화해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는 이러한 책임정치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계기다.
지방선거 과정에서 각 지역의 역사와 환경에 맞는 로컬 브랜딩과 미래산업을 결합한 차별화된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인공지능(AI) 시대에는 ‘어디에 사느냐’보다 ‘어떤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느냐’가 더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있다. 지방정부는 디지털 전환의 파도를 타고, 쾌적한 자연환경과 첨단 기술 인프라를 결합한 지역을 완성해야 한다.
세대교체와 다양성이 뒤따라야 한다. 다양한 목소리가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에서 나올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낡은 지역주의 정치까지 타파해야 한다. 지방의원들이 지역발전과 지역민을 위해 헌신하기보다 정당과 공천자를 위해 일하는 모습이 흔하다. 지방의회가 국회를 흉내 내는 행태, 지방의원들의 낮은 청렴도가 지방의회 무용론까지 낳았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지방의원 후보 공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서다.
‘지방이 존재할 수 있는가’의 실존 문제에 답해야
여야 모두 명심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여성 지방정치인의 확대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뽑힌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226명 가운데 여성은 7명에 불과하다. 고작 전체의 3.1%다. 이는 이전 선거 때보다 외려 후퇴한 수치다. 광역자치단체장 상황은 더 심각하다. 여성이 광역단체장으로 선출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여성 공천 30%’ 같은 공약이 실제로 이행돼야 한다. 여성 지방정치인이 많아야 하는 이유는 다양한 시각 반영, 성평등 실현 같은 가치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거대양당의 독과점 구조를 깨트리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여야가 지난해 말 정치개혁특위 구성에 합의하고 지방선거 제도를 바꾸기로 했지만 5개월을 앞두고 거대양당 독점구조를 바꿀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이 모든 게 국회의원이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번 지방선거는 행정의 연속성을 넘어 ‘지방이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에 답해야 하는 역사적 분기점이라는 걸 잊지 말자.
김학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