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혁신 일궈온 일본 광학기업들
'전통 소재' 유리 기술을 '첨단산업 핵심'으로 재정의…반도체 소재 분야 독보적 경쟁력
유리에서 출발한 기술을 첨단산업의 심장부로 확장하며 ‘전통 소재’를 ‘차세대 기술 플랫폼’으로 재정의해 온 기업들이 있다. 이들 일본 유리 소재 기업은 극도로 까다롭고 기술장벽이 높은 시장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구축해 왔다.
AGC의 경쟁력과 차세대 도전
AGC는 1907년 아사히글라스(Asahi Glass, 旭硝子)라는 사명으로 일본 판유리 산업의 개척자로 출발한 기업이다. 유리를 기반으로 기술혁신을 지속해 왔으며, 현재는 건축 자동차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화학 전자재료 세라믹 라이프사이언스까지 확장된 산업군을 아우르는 종합 첨단소재 솔루션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8년 유리 중심 제조사라는 기존 인식을 뛰어넘기 위해 AGC로 사명을 변경했다.
AGC의 대표적인 성장동력 중 하나는 반도체 노광 공정에서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포토마스크 블랭크(Photomask Blanks)다. 이 시장에서 약 59%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세계 1위 기업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AGC의 EUV Photomask Blanks 공정의 핵심은 고열 환경에서도 크기 변화가 거의 없는 특수 유리기판이다.
AGC의 특수유리 기판은 형태 안정성이 매우 뛰어나 정밀한 회로 전사가 가능하다. 여기에 표면을 극도로 매끄럽고 평탄하게 가공하는 연마기술과 수십 층의 초박막을 정밀하게 적층하는 코팅기술이 결합된다. 이러한 기술들은 AGC가 오랜 기간 유리 산업에서 축적해 온 공정기술의 근간이다. 전 공정을 자체기술로 생산하는 기업은 AGC가 유일하다.
2024년 AGC의 연간 매출은 2조676억 엔으로 그중 전통 유리사업이 약 45%(약 9400억엔)를 차지하며 여전히 중요한 매출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영업이익의 중심은 이미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 부품·소재 사업으로 이동했다.
해당 부문에서 2024년 기준 약 440억엔의 영업이익을 창출했다. 이는 전체 영업이익 1258억엔 중 핵심 기여 사업으로 부상하며 AGC의 수익 구조를 지탱하는 주력 사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AGC의 경영문화는 단순히 안정적 수익 기반을 유지하는 방식에 머물지 않는다. 기술 경쟁력을 더 깊게 다져 나가는 심화과정과 고객의 미래 니즈를 기반으로 다음 성장동력을 탐색하는 과정이 동시에 기업 내부에 축적되어 있으며, 이 방식 자체가 조직 문화의 DNA로 자리잡았다.
HOYA의 포트폴리오 전략
1941년 광학유리 제조사로 출발한 호야(HOYA)는 광학기술을 핵심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해 왔다. 현재는 라이프케어 사업과 정보·통신 IT 사업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균형잡힌 사업구조를 구축했다.
라이프케어 사업은 HOYA의 핵심 사업이다. 안경 렌즈, 콘택트렌즈 리테일 체인 아이시티(Eye City), 의료용 내시경, 백내장 치료에 사용되는 인공수정체(IOL) 등 사람의 삶의 질과 직접 연결된 제품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고부가가치 라인업의 성장을 견인하며, 경기변동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는 안정적인 현금 창출 기반 사업으로 기능하고 있다. HOYA 전체 매출의 63.6% (5509억엔)을 차지하며 그룹의 가장 강력한 수익 기반 역할을 하고 있다.
정보·통신 IT사업 부문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수적인 EUV Photomask Blanks와 HDD용 유리기판 등 첨단 핵심소재를 공급하는 영역이다. 이 시장은 매우 높은 품질 기준을 요구하는 기술집약 시장에 속하며, HOYA 기술의 절대 우위가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결정짓는 핵심동력이 되고 있다. 전체 매출의 35.9%(3101억엔)를 차지하며, 기술혁신을 기반으로 미래 성장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HOYA의 경쟁력은 안정적 현금 흐름을 만드는 라이프케어 사업과 첨단기술 개발과 미래투자를 견인하는 정보·통신 IT사업의 균형과 선순환 구조에서 비롯된다. 각 사업의 경기 민감도와 라이프사이클 단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활용해, 성장가능성이 높은 영역에 투자를 유연하게 배분한다. 동시에 경쟁 우위를 잃은 사업은 구조개편을 적극 검토하며, 변화에 적응하는 선별적 사업구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 전략은 흔히 ‘작은 연못의 큰 물고기’ 모델로 설명된다. 시장 규모는 크지 않지만 기술 난도가 극도로 높은 니치 시장을 선택하고, 그 안에서 압도적인 기술 우위를 기반으로 절대 강자의 지위를 장기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전략을 바탕으로 각 분야에서 HOYA는 세계적인 수준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안경용 렌즈 부문에서는 세계 시장 점유율 2위이며, HDD글래스 기판은 세계시장 40%, 의료용 내시경은 세계 3위를 오랜 기간 유지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EUV photomask blanks 부문에서는 34%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는 HOYA와 AGC라는 일본의 기업이 전세계 시장의 93% 이상을 과점하는, 매우 특이한 상황에 놓여 있다.
HOYA는 라이프케어 사업에서 확보한 안정적인 현금을 성장가능성이 높은 정보·통신 IT기술 개발과 생산 능력 확장에 재투자하는 구조를 확립하면서 지속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고 있다. 또한 반도체 및 HDD 제조사와 차세대 제품을 공동 개발하는 등 소재 공급기업을 넘어 협업 파트너로서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특수유리의 개척자 NEG
NEG는 1944년 형광등과 형광램프에 사용되는 유리 제조로 출발했지만 이후 LCD 디스플레이, 전자부품, 광통신, 의료·바이오, 에너지, 건축·인테리어 등 산업 전반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왔다. 다양한 고기능 특수유리 제품을 개발·생산·판매하며, 일상 기술부터 산업의 최첨단 공정까지 폭넓게 공급하는 유리 소재 분야의 글로벌 선도 기업이다.
NEG는 기초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안정적 수익을 확보하면서도, 신기술·신시장 투자로 성장가능성을 동시에 확장하고 있다. 유리 제조 공정은 매우 높은 기술수준을 요구하는 분야인데 NEG는 박형화(薄型化), 경량화, 표면 강도 향상, 플렉시블 기술과 같은 혁신제품을 개발하며 사용자 요구에 대응해왔다. 또한 광섬유, 의료·바이오용 특수유리 등 고도의 전문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했으며,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경쟁력과 연구개발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자동차 디스플레이와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등 차량용 유리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환경에서 고품질, 경량, 내구성이 뛰어난 유리 소재에 대한 수요가 지속 확대될 전망이다. NEG는 이 분야에 적용되는 특수유리 연구개발에 적극 투자하고 있으며, 업계에서도 높은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5G·6G 등 차세대 통신의 핵심 부품인 광섬유 및 광통신용 유리 소재 분야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오랜 유리 소재 노하우를 기반으로 고성능 유리 파이버의 기술 고도화 수요에 대응하고 있으며, 신호를 빠르고 손실 없이 전송하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2024년부터 2028년까지 5개년을 대상으로 하는 신 중기경영계획 ‘EGP2028’을 출범시켰다. 이 계획의 실행을 통해 기업가치 향상과 PBR 개선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스트롱 글로스(STRONG GROWTH)”를 슬로건으로 기존 사업의 수익 기반 강화와 성장 분야에 대한 적극적 자원 투입을 기본 방침으로 삼아 2028회계연도까지 매출 4000억엔, 영업이익 500억엔, 영업이익률 12.5%, ROE 8% 달성을 목표로 추진하는 안정성과 성장성을 균형 있게 갖춘 중기 성장 전략이다.
지속가능한 사회 실현을 위한 환경 기술의 발전, 그리고 디지털전환(DX) 확산에 따른 신규 시장 성장 등으로 유리산업에는 앞으로도 다양한 기회와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존재한다.
향후에는 AI, 5G·6G, 데이터센터, 디지털 의료 확산에 따라 초정밀 유리 기판, 코팅, 광학 부품, EUV Photomask Blanks 등 핵심 부품 수요가 지속 증가할 전망이다. 또 자동차 디지털화, 폴더블 디스플레이, HUD, AI 반도체 등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사양에 대응하기 위해 제품 개발 사이클 단축과 속도 경쟁력 강화가 필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