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환의 동남아산책

동남아시아 2026년 - 경제적 전진, 정치적 퇴보

2026-01-08 13:00:08 게재

2025년은 동남아에게도 무척 힘든 한해였다. 연초부터 갓 출범한 트럼프 2기행정부가 대부분 동남아국가들에게 부여하던 일반특혜관세(GSP)를 폐지하고 개별 상호관세로 전환하면서 고관세 폭탄 위협을 했다. 연말에는 몇몇 나라에 기록적인 폭우와 그로 인한 홍수사태라는 물폭탄 세례를 퍼부어 1000명이 넘는 사망자와 수십만명의 수재민을 내는 참극이 빚어졌다.

진짜 폭탄은 7월에 태국-캄보디아 국경지대에 떨어졌는데, 영토분쟁 중인 두 나라는 12월에 이르기까지 총격전과 휴전을 반복해 100명 이상의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생명을 잃었다. 아세안이 창설된 이래 최대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한 무력충돌이었다.

필리핀이 중국과 오랫동안 벌여 온 남중국해의 스카버러암초 영유권 분쟁은 2025년 들어 상호간 무력시위로 비화했고, 4년을 끌어온 미얀마 내전은 끝날 기미도 이를 종식시킬 수 있는 길도 보이지 않았다.

인도네시아는 정부 실정과 권력층 비리에 대한 불만이 민주화 이후 최대규모 시위와 소요사태로 발전했다. 태국에서는 지속되는 정치갈등과 이로 인한 저성장이 작년에도 이어졌다.

경제측면에선 ‘조심스러운 낙관론’

하지만 비교적 관점에서, 2025년을 동남아 현대사 전반에 비춰보고 위기에 대처하며 일궈낸 성과들을 다른 지역이나 국가들에 견주어 보면 동남아의 진가가 확연히 드러난다. 동남아경제는 외부적 충격을 흡수하는 회복탄력성이 강하고(resilient), 국가들 대부분이 비합리적이거나 반시장적인 경제정책을 자제한 덕분에 2025년에도 전세계 최고 성장 지역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2026년은 트럼프 2.0 탓에 미국을 제외한 세계경제가 고전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동남아경제에 대해 ‘조심스런 낙관론(cautious optimism)’이 대종을 이룬다.

이렇듯 동남아 지역에 대한 경제전망은 전반적으로 밝다고 할 수 있으나 개별국가들을 비교해보면 그들 간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2026년 아세안국가 평균 성장률을 5.3%로 높게 점친다. 선진국들이 중국을 보완 또는 대체할 수 있는 국가를 하나 더 경제파트너로 선정하겠다는 차이나+1 전략의 가장 큰 수혜국인 베트남이 무려 8.2%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고, 그 뒤로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이 아세안 평균을 상회하는 성장을 이룰 것이라 내다보았다.

동남아경제는 코로나사태 이전 붕괴된 공급체인 복구, 차이나+1 확대, 태국과 말레이시아의 데이터센터 설립으로 대표되는 외국인투자와 디지털경제의 성장, 자원수출 증대, 중산층 증가로 인한 국내소비의 증가 등 많은 성장 요인들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성장 국가군의 정반대 쪽에 내전과 정치불안을 벗어나지 못한 미얀마와 태국이 놓여 있다. 이 두 국가군 사이에 캄보디아와 라오스 그리고 작년에 11번째 아세안 회원국으로 가입한 티모르레스테(동티모르)가 중간 정도의 성적을 낼 것으로 기대한다.

빈번한 무력충돌, 민주주의 퇴행은 여전

동남아경제에 대한 긍정적 전망과 달리 지역협력체인 아세안과 구성 국가들의 정치적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아세안은 지금과 같은 위기에 직면하고서도 과거 평화로웠던 시기와 마찬가지로 편안하고 느린 행보를 고치지 않고 있다. 미얀마 내전, 태국-캄보디아 국경분쟁, 남중국해에서의 중국 도발에 대해 선언적 수준을 넘어서는 실효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거나 한목소리를 내는 단결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래도 원래부터 이른바 ‘아세안방식’으로 천천히, 어떠한 회원국도 소외시키지 않고, 통합을 향해 일관된 자세를 견지해 온 것은 아세안의 강점이기도 하다. 가장 친미적인 필리핀도, 친중적인 캄보디아와 라오스도 아세안을 분열시킬 정도로 그 대국에 멀리 다가가지는 않았다.

“함께 미래를 항해하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2026년 아세안 의장국을 수임하는 필리핀은 ‘항해하다(navigate)’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중국이 만 10년 동안 회피해 온 남중국해 행동규범(CoC) 제정 협상을 마무리 짓겠다는 의욕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어, 올 한해는 아세안의 교섭력과 단결력이 재평가 받는 중요한 한해가 될 수도 있다.

아세안이 무능함을 드러낸 두건의 무력충돌 사태는 사실 어떤 외부세력이나 중재자도 해결하지 못한 어려운 과제다. 미얀마 군사정부는 전국을 세 지역으로 나눈 뒤, 지난해 12월 28일에 시작해 2주 간격으로 순차적으로 투표를 실시하는 기괴한 총선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것이 내전 종식은 고사하고 미얀마 군사정부의 정당성을 높여 줄 것이라는 기대는 총선을 권유하고 압박한 중국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태국-캄보디아 국경분쟁도 작년 7월 대규모 충돌 직후 미국과 중국, 말레이시아 안와이브라힘 총리의 중재로 몇달 휴전을 하기는 했지만 휴전이 깨진 12월까지 위기 촉발의 긴장사태는 지속되었고, 태국 총선이 끝나는 올 2월 8일 이후에 무력충돌의 위기가 종식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번 태국 총선은 반민주적인 2017년 헌법에 따른 선거라 그 의미가 반감되긴 하지만 민간정부 관리하에서 치러지는 선거인 까닭에 태국정치의 향방을 어느정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선거를 여러가지 이유로 중시하는 동남아이고 보면 선거가 의외의 결과를 낳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총선의 결과가 아무리 긍정적이라 할지라도 민주화로 직결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가장 진보적이고 민주주적인 정당, 즉 국민의 당(People’s Party, 2023년 총선 제1당 전진행동당의 후신)이 다시 제1당이 되면 군부나 사법부가 집권을 막거나 해산명령을 내릴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보수적인 정당이 정부를 구성하게 되면 그 정당성을 국민들이 인정하지 않아 정치적 불안정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태국의 정당정치는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대표적 민주국가 필리핀 인니도 위기

동남아의 대표적인 두 민주체제인 인도네시아와 필리핀도 국내정치 위기를 맞고 있다. 2024년 10월 취임한 인도네시아의 쁘라보워(Prabowo Subianto) 대통령은 취임 후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인사와 재정 관련 실정으로 빈번한 시위와 저항에 직면해 있는데, 언론과 경찰을 장악하고 내각에 무려 14명까지 현역 군인을 임명하며, 주지사와 군수 선거를 없애는 조치나 시도를 통해 자신의 권위주의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반대세력의 힘도 만만하지 않아 올해의 귀추가 주목된다.

필리핀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22년 한팀(UniTeam)으로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당선된 봉봉 마르코스와 사라 두테르테는 인사와 예산 문제로 갈등을 빚기 시작해 2025년 2월 급기야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되기에 이르렀다. 탄핵안은 몇 달 뒤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이 나고, 이어 상원에서 부결되어 최종 기각되었다. 그 와중에 사라의 아버지인 전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마약과의 전쟁’ 중에 범한 ‘인도주의에 반한 죄’로 3월 11일 체포되어 헤이그로 압송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마르코스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던 사건이다.

그런데 하원 의결로부터 1년이 지나는 오는 2월 탄핵을 재추진할 수 있도록 헌법이 허용하고 있어, 두테르테 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는 마르코스 정권 내내 가장 심각한 정쟁요인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베트남은 오는 1월 19일 가장 중요한 정치행사인 공산당 전당대회(14차)를 개최해 4인의 정치지도자를 뽑고 3,4월에는 총선까지 치르나 어느 것도 민주주의와는 무관하다. 라오스는 공산당 독재, 캄보디아는 강압적인 일당독재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최근 10년 사이 민주화된 유일한 동남아 국가로서 유능한 안와 총리가 연정을 2년여 이끌고 있지만 자신의 정당이 소수정당이라 연정이 언제 무너질지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다.

서강대 명예교수 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