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좀처럼 회복조짐 안 보이는 체감경기
올해가 저성장을 탈피하는 원년이 될지 아니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처럼 장기불황의 늪에 빠지게 될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한해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경제는 코스피지수가 4500포인트를 돌파하고 역대 최대 수출을 기록하는 등 일부 경제 지표가 크게 개선되고 있기는 하나 저성장과 물가폭등으로 국민들의 체감경기가 좀처럼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 경제는 196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30년 동안 매년 8% 이상 고속성장하는 황금시대를 연 뒤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1990년대 초부터 5년마다 1%p씩 하락했다. 급기야 2023년부터는 저출생·고령화와 맞물리면서 심각한 위기상황이 없는데도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1%대 저성장이 이어지고 있다. 2023년에 1.4%로 전년에 비해 성장률이 거의 반토막난 뒤 2024년에는 가까스로 2%에 턱걸이했으나 지난해 1%로 다시 낮아졌다.
심각한 위기 상황 없는데도 1%대 밑도는 잠재성장률
정부가 대규모 확장예산을 편성, 엄청난 돈을 푸는 데도 올해 1.8% 성장에 그치고 내년에도 1.9%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한국은행 추산). 이는 미중 무역갈등 지속과 중국의 기술력 향상 등 외부요인과 국내 투자 정체,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인구 부족, 미래 성장동력 확보 미흡 등 내부의 구조적 요인 때문이다. 이밖에 복지 부담과 정치적 갈등도 국가의 활력을 제약하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정부 대책은 위기감이 부족하고 아이디어도 빈곤해 보인다. 경기가 나빠지면 으레 추가경정예산 편성 얘기가 등장하는 등 돈을 푸는 단기 대증요법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풀린 돈은 실물경제로 가지 않고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만 쏠려 수도권 집값이 뛰고 물가가 들썩이는 부작용이 노정되고 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액은 역대 최고치인 총 7097억달러(잠정치)로 전년 대비 261억달러(3.8%) 증가했다. 특히 반도체 수출실적은 1734억달러로 전년 대비 315억달러(22.2%)나 크게 증가, 전체 수출액 중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이전 최고 기록인 2018년의 20.9%를 깨고 24.4%에 달했다. 반도체 수출 증가액이 총 수출 증가액보다 많으니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수출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반도체 착시가 수출부진을 가리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올해 수출 여건은 전반적으로 지난해보다 불리한 상황이다.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 여파로 자국 기업을 보호하려는 보호무역주의가 유럽연합(EU)을 비롯해 캐나다 멕시코 등으로 확산하는 등 세계 무역장벽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반적인 수출 컨센서스는 폭발적인 반도체 활황으로 아직 긍정적이나 무역긴장이 다시 고조될 경우 올해 수출 규모가 7000억달러 아래도 밀릴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반도체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향후 반도체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전환할 경우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올해까지는 인공지능(AI) 서버, 데이터센터 부문에서 여전히 수요가 창출될 수 있지만 내년에는 호황이 꺾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벌써부터 미국에서는 AI 투자에 거품이 끼었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반도체 수퍼사이클 효과가 약해지면 다른 업종이 이를 보완을 해줘야 하는데 중국의 저가 공세와 트럼프 리스크 등으로 쉽지 않다. 게다가 반도체 사이클 반전이 성장률과 고용 등에 충격을 가할 경우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금리인하 카드를 꺼내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그동안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으로 이자도 못갚는 ‘좀비기업’ 비중이 지난해 말 17.4%로 2010년 이후 최고치에 달했다. 또한 카드론이 급증하고 있고 주요 은행의 대출 연체율도 높아지고 있다.
개혁으로 인한 반발 무마할 수 있을지가 관건
이재명 대통령은 새해 첫 공식 일정으로 서울현충원을 참배한 자리에서 ‘대도약’을 약속했다. 또 지난해 말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경제회복의 불씨가 켜진 지금이 구조개혁의 적기”라고 강조하면서 규제 금융 공공 연금 교육 노동 등 6대 분야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방침을 밝혔다. 우리 경제가 처한 난관과 해결방법을 이미 간파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개혁에 대한 기득권의 반발을 얼마나 무마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