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개인화 인공지능 헬스케어 혁신 뒤 숨은 환경영향
플라스틱보다 핵심금속이 문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6~9일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 전시회인 CES의 화두는 ‘초개인화 인공지능과 헬스케어’였다. CES 2026 디지털 헬스 부문은 단순 건강 모니터링을 넘어 인공지능이 치료에 개입하는 ‘초개인화 헬스케어’ 시대를 선언했다. 인공지능이 사용자의 감성과 생활습관을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건강 상태를 진단해 대응하는 게 핵심이다.
웨어러블 헬스케어 전자기기 역시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유연 소재 제조 기술 발전으로 실시간 모니터링은 물론 인간-컴퓨터 상호작용과 치료 등을 통해 전통적인 헬스케어 시장을 빠르게 변화시킨다. 최근에는 통합 건강 솔루션 사용자들에 의해 디지털 인프라 네트워크로도 진화 중이다.
문제는 이러한 급격한 변화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웨어러블 헬스케어 전자기기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원료나 생산 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실가스, 나아가 급격히 증가하는 에너지 사용량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둘이 아니다. 문제가 축적된 뒤에 해결하기보다는 사전에 시스템 공학을 기반으로 한 대응 체계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12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의 논문 ‘웨어러블 헬스케어 전자기기의 글로벌 생태발자국 정량화’에 따르면, 웨어러블 헬스케어 전자기기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플라스틱이 아닌 회로기판 속 ‘금’ 등과 같은 핵심 금속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은 미미한 효과만 있는 반면, 금을 은이나 구리로 대체하면 탄소배출을 3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연구는 신제품 시장 확산 예측 모델인 Bass 확산모델을 전과정평가(LCA)에 통합한 시스템공학 기반 방법론을 적용했다.
양촨왕 박사 등이 참여한 미국 시카고대와 코넬대 공동연구팀은 혈당·심전도·혈압 모니터, 초음파 패치 등 웨어러블 헬스케어 전자기기를 대상으로 원료 채굴부터 제조·사용·폐기까지 전과정의 환경영향을 분석했다. 이들 4개 기기에 대한 신규 생애주기 데이터를 구축하고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1만회)으로 불확실성을 정량화했다.
기기당 탄소배출량은 △혈압계 1.06kg △심전도계 1.30kg △혈당계 1.94kg △초음파 패치 6.11kg으로 측정됐다. 특히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배터리가 포함된 유연인쇄회로기판(FPCB) 조립체가 전체 탄소발자국의 95.9%를 차지했다. 센서(3.0%)나 포장재(1.1%)의 영향은 미미했다.
FPCB 내에서도 집적회로(IC)가 62.6%로 압도적이었다. 반도체 제조가 에너지 집약적이고 IC 내부에 사용되는 금 도선의 채굴·정제 과정이 환경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금 1kg당 지구온난화지수(GWP)는 4만9000kgCO₂e로, 은(150)이나 구리(4)보다 두 자릿수 이상 높았다.
논문에서는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기에서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은 탄소배출을 2.6%밖에 줄이지 못한다”며 “회로기판 속 희귀금속이 핵심 문제”라고 언급했다.
물론 이 분석 결과는 헬스케어 시스템 전체의 간접효과(기존 혈당계 대체에 따른 탄소 감축 등)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통념적으로 알아왔던 사실과 다른 점을 발견했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
연구팀은 시장 확산 모델을 적용해 2050년까지 글로벌 환경영향도 예측했다. 중간 시나리오 기준으로 연간 소비량은 △혈당계 14억대 △심전도계 4억대 등 총 20억대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2024년 대비 42배 증가한 규모로 전세계 스마트폰 판매량(12억대)을 넘어선다.
이에 따른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340만톤CO₂e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미국 시카고 대도시권 전체 교통 부문 배출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누적 전자폐기물은 40만톤이다. 심전도계의 경우 상시 착용자 1인당 연간 전자폐기물(886g)이 소형 ICT기기 글로벌 평균(570g)을 초과했다. 지역별로는 △중국(연 70만톤) △인도(60만톤) △유럽(40만톤) △중동(40만톤) 순으로 배출량이 많을 것으로 예상됐다. 인구 규모와 고령화, 당뇨·심혈관 질환 유병률이 주요 변수로 작용했다.
논문에서는 “IC 제조 시 금을 은·구리·알루미늄으로 대체하면 탄소 30%, 생태독성은 60% 이상 감소한다”며 “전도성이 비슷한 이들 금속은 산화가 쉬운 단점이 있지만 웨어러블 헬스케어 전자기기의 경우 엘라스토머로 밀봉돼 있어 일회용 기기에선 문제가 없다”고 제언했다.
모듈식 설계로 FPCB는 재사용하고 센서·배터리만 교체하는 방식도 언급했다. 논문에서는 “혈당계는 효소 분해로 2주마다 통째로 버리지만 회로는 멀쩡하다”며 “모듈화하면 사용당 탄소배출을 △혈당계 62% △심전도계 55% △초음파 60%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기존 순환경제 전략이 플라스틱 집약 제품엔 효과적이지만 차세대 전자기기엔 시스템 수준 접근이 필요하다”며 “△생화학 센서에 사용되는 효소의 내구성 강화 △시스템온칩 통합(여러 전자부품의 기능을 칩 하나에 넣는 것) 등 기술 혁신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