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시민 살해하고 조롱하는 정부, 미국은 민주국가인가

2026-01-13 13:00:01 게재

2020년 5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에 의해 살해되었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은 고질적인 인종차별에 맞선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M)’ 운동을 촉발했고 이는 미 전역으로 퍼졌다. 트럼프 1기 정권 말에 벌어진 이 시민저항운동은 집권 후반부 트럼프정부를 흔들었고 그 해 11월 선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26년 1월 7일, 조지 플로이드가 살해된 곳으로부터 1.6km도 떨어지지 않은 주택가에서 또 하나의 무고한 생명이 공권력에 의해 살해되었다. 트럼프 2기 정권 탄생 후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고 있는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이 비무장 시민의 얼굴을 향해 세 발의 총격을 가해 죽였다.

피해자 르네 니콜 굿은 유색인종도 이민자도 아닌 백인 여성으로 미국 출생 시민권자이자 세 아이의 엄마다. 소셜미디어에 자신을 ‘시인이자 작가, 아내이며 엄마’라고 소개했던 그녀가 새 삶을 찾아 캔사스시티에서 미니애폴리스로 이주한 지 일년이 채 되지 않아 공권력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ICE에 맞서는 미국 시민들

르네는 왜 그날 그 자리에 있었을까? 르네는 미국 출생 시민권자로 이민단속 대상이 아니었다. 복면을 한 ICE 요원들이 그녀가 사는 한적한 동네의 주택가에 출몰 했을 때 그녀뿐 아니라 많은 평범한 시민들이 이민단속 상황을 모니터하고 기록하기 위해 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ICE 출현을 이웃들에게 알리는 호루라기가 들려 있었고, 사진과 비디오 촬영 등을 하면서 단속상황을 모니터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근래 미국 전역의 ICE 출몰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수많은 기사들이 보도해 왔듯이 트럼프정부의 대규모 이민단속은 법 절차도 무시하고 무자비하게 진행되면서 점차 ‘군사작전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추방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ICE는 사업체, 직장과 쇼핑몰 등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가는 공간 뿐 아니라 지금까지 성역으로 여겨져 온 법원 학교 병원 종교기관 어린이집 등을 가리지 않고 출몰해 이민자들을 잡아가고 있다.

같이 일하던 동료가, 같은 동네에 살던 이웃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거나 단속 위협이 두려워 일상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르네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시민 대응팀’을 꾸려 커뮤니티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섰다.

시민들은 ICE 요원들의 불법 행위을 감시하고 보고하는 법률 감시인(Legal Observer) 역할을 하거나 ICE가 출몰하면 주민들에게 단속요원들의 위치와 상황을 알려주고, 체포된 사람이 있는 경우 인적 사항을 가족과 변호사에게 알려주는 등의 지원 활동을 하는 ICE 신속 대응팀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민단속에 눈의 가시같은 존재가 된 시민들이 ICE 요원들에게 체포·구금되는 일도 점차 빈번해지고 있다. 작년에 나온 탐사보도에 따르면 트럼프정부 출범 이후 첫 9개월 동안 이민국에 불법 체포·구금된 시민권자의 수가 최소 170명에 달한다.

이 평범한 시민들은 백주대낮에 길에서 사람을 납치해 가고, 제대로된 법 절차도 밟지 않고 사람들을 추방하면서 공동체 전체를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는 폭력과 야만으로부터 이웃을 지키고자 나선 사람들이다. 인종 계층 배경에 상관없이 공동체 성원 모두가 안전한 사회에서 살기를 원하고, 우리 이웃이 공권력의 부당한 표적이 될 때 그 누구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19세기 중반 흑인 노예들을 남부 노예주에서 북부의 자유주나 캐나다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던 미국 자유시민들의 정신을 21세기에 이어 받아 실행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총격으로 사망한 르네도 이렇게 용기 있는 사람들의 일부였다. 백인 미국 시민으로 인종적 민족적 배경이나 이민 신분 때문에 ICE가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의를 외면하지 않고 이웃을 위해 나섰다. 그녀는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주축이 된 ‘ICE 신속 대응팀’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여느날처럼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동네에 ICE가 출몰 했다는 연락을 받고 나갔다가 연방 요원의 총에 죽임을 당했다.

르네의 죽음을 조롱한 트럼프정부

트럼프정부는 그런 그녀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며 본인이 자초한 죽음이라고 조롱하고 있다. 르네가 ICE 요원의 총에 맞아 사망한 바로 그날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ICE의 이민단속 방식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특히 응답자의 51%가 ICE의 전술이 ‘너무 강압적’이라고 답했고, ‘적절하다’고 답한 사람들은 27%에 불과했다. 트럼프정부의 눈에는 평범한 미국 시민들 대다수가 이미 잠재적 테러리스트이다.

어떻게 보면 무고한 시민의 죽음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민단속 정책의 예정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2기 정부 첫 해인 2025년에 ICE에 구금 중 사망한 사람들이 32명이다. 이는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 12월 한달 동안만 6명이 사망했다. 수년 간 이민자 구금시설 내 사망 사건을 추적해 온 비영리 단체 ‘디텐션 워치 네트워크(Detention Watch Network)’에 의하면 이는 구금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ICE 구금시설 내부환경과 수감자 처우가 계속 악화된 결과다.

단속 과정에서의 무력 사용도 더 빈번해지고 있다. 9월 이후 넉달 동안 ICE 요원에 의한 발포는 1월 7일 전에 8차례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총격으로 숨진 사람도 르네 굿 사건 전에 이미 있었다. 지난 9월 시카고에서 벌인 대규모 이민단속작전 ‘미드웨이 블리츠’ 과정에서 멕시코 출신 서류미비 이민자가 ICE 요원들에게 사살되는 일이 벌어졌다. 실베리오 빌레가스 곤잘레스라는 이름의 희생자는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던 길에 ICE요원들의 검문을 피하려다 변을 당했다. 당시 시카고 지역사회에서 ICE의 총격 살인에 대한 분노와 주민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지만 전국적인 이슈로 확대되지는 않았다.

시카고 총격 사건이 일어난 지 며칠 후 시카고 리틀 빌리지에서 열린 멕시코 독립기념일 축하 퍼레이드에 참여한 한 이민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ICE 요원들이 올까 봐 자녀를 퍼레이드에 데려오지 않았다면서 “끔찍한 일이다. ICE는 사람들을 사냥하려 한다”고 말했다.

르네가 사망한 다음날인 1월 8일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도 이민 단속 과정에서 국토안보부 산하 국경수비대 요원들이 두 명의 이민자 커플에게 총을 발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장에 함께 있었던 르네의 배우자는 “우리는 호루라기를 갖고 있었는데, 저들은 총을 갖고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인간사냥’ 의 한 단면이다.

제2의 플로이드 사태에 ‘정치적 후폭풍’

르네가 살해된 후 첫 주말인 1 월 10일 과 11일 미 전역에서 ‘ICE 영구 추방을 위한 행동의 날’이 1000건 이상 개최되었다. 무고하게 희생된 생명을 기리며 공권력의 엄중한 책임을 요구하는 동시에 ICE의 과잉 단속으로 인한 인적피해를 널리 알리는 시위와 행진에 르네 굿과 같은 보통 미국 시민들이 대거 참여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복면을 쓰고 중무장한 폭력배들이 거리에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납치하고, 살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또다시 확인해 준 주말이었다.

한편 크리스티 노엄 국토안보부 장관은 현지 시간 11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네소타에 ICE추가 인력을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사상 최대 규모 작전’인 약 2000명의 연방 요원이 투입되어 있지만 투입된 요원들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추가 인력을 배치한다는 것이다. ICE 철수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분노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남수경 뉴욕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