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인플레가 이란 반체제시위 점화

2026-01-14 00:00:00 게재

1979년 이란혁명 주역 상인들이 앞장 서 … 트럼프의 선택 무엇일지 세계가 촉각

2025년 12월 28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휴대전화와 전자제품을 주로 취급하는 알라딘상가와 차르수시장 상인들이 급격히 상승한 환율과 정부의 무능한 대응에 상점문을 닫고 항의하며 시위가 시작되었다. 이튿날에는 이란 최대시장인 테헤란의 그랜드바자르 상인들까지 합류하며 시위가 커졌다.

화들짝 놀란 정부가 상인들을 달래며 시위를 진화하려 했으나 이미 생활고에 지친 일반 시민들까지 거리로 나서면서 항의의 물결은 전국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고 윤리순찰대에 체포됐다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 추모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진 이른바 ‘히잡시위’ 이래 3년 만에 민중항쟁이 재발한 것이다.

환율,15년 만에 41배나 뛰어

그런데 이번에는 젊은이 주도 정치문화적 시위와 달리 경제난에 화가 난 상인들이 시작했다는 점이 기존 시위와는 달랐다. 1979년 이란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주역인 상인들이 먼저 앞장섰다는 사실은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현 이란정부에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했다. 안정적인 사업을 위해 정국의 평온을 선호하는 상인들이 상점문을 닫고 시위에 앞장섰다는 사실은 실로 경악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지난해 10~11월 두달간 50%에 이르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2015년 1달러에 3만2000리알이었던 환율은 시위가 터진 시점에 142만리알로 무려 41배가 뛰었다. 환율 때문에 가장 싼 휴대폰 하나도 팔기 어려웠다. 전자제품상가에서 시위가 시작된 이유다.

이란은 고정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미국의 제재로 달러가 부족하기에 고정환율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2018년부터 환율을 크게 세단계로 나눠 외환을 관리해왔다. 가장 기본적인 생필품 수입업자들에게는 1달러에 4만2000리알이라는 1차 환율을, 중요한 제품 수입업자에게는 8~9만리알이라는 2차 환율에 달러를 바꿔주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유시장 환율을 적용했다.

그러나 제재가 계속 이어지면서 두번째 단계가 사라졌고, 1차 환율은 28만5000리알까지 치솟았다. 자유시장 환율은 142만리알이나 됐다. 문제는 싼 환율로 달러를 받은 업자들이 자유시장에 달러를 내놓으면서 막대한 환차익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힘있는 사람들이거나 부패한 고위층과 연관된 사람들이었다. 이란정부는 이러한 부패의 고리를 차단하지 못하는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상인들이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이 50%인데도 새해 예산안에서 임금인상폭을 20%로 묶었다. 또 돈이 없다면서도 헤즈볼라를 비롯한 해외 대리조직에는 여전히 지원금을 보내고 국내 종교기관에 내려주는 보조금도 삭감하지 않았다. 이처럼 국민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 체제의 현실에 이란 국민들이 다시 성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가자나 레바논이 아니라 이란에 내 삶을” “레자 샤(팔레비 국왕의 마지막 왕세자)의 영혼에 축복을”이라는 시위구호가 다시 등장한 이유다. 이들 표현은 2017년 이래 나온 시위구호다.

이달 9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 거리에 나온 시위대가 모닥불을 피우고 춤을 추며 환호하는 장면을 담은 소셜미디어 캡처 화면. 사진 AP=연합뉴스

국가 시스템 지키려는 신중함 사라져

이란 분석가에 따르면 기존 이란에서 나타난 시위 양상은 ‘잃을 것 없는’ 사람들의 소요가 아니었다. 무능한 정치 지배계급은 혐오하지만 국가 시스템은 지키고 싶어 하는 신중함이 있었다. 이란혁명으로 그나마 기능하고 있는 국가의 행정·복지체계마저 무너질까 우려하는 전략적 신중함을 견지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러한 신중함마저 사라진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분노가 드셌다. 1999년 진보매체 ‘살람’ 폐간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란의 대중시위는 2017년부터 반체제시위로 바뀌기 시작했다. 체제내 개혁에서 체제전복으로 방향타를 틀기 시작한 것이다.

2017년과 2019년 시위에서는 이란의 모든 정파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내며 “개혁파여 강경파여, 게임은 끝났다”고 외쳤다. “국민은 구걸하는데 성직자들은 신처럼 행세한다”라거나 “우리는 이슬람공화국을 원하지 않는다”며 직접적으로 신정체제에 반대하는 구호도 터져나왔다. 이번 시위는 경제난에 화난 상인들의 분노에서 시작했지만 합류한 시위민중은 2017년 이래 똬리를 튼 반체제 감정을 변함없이 그대로 표출했다.

전국적으로 번진 시위를 진압하고자 이란정부는 생필품 환율을 없애 시장환율로 통일하고 국민 1인당 4개월간 매달 1000만리알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330ml 캔콜라 23개를 살 정도의 보조금에 만족할 국민은 없었다. 게다가 환율시장을 어지럽힌 부패한 지도층 인사를 처벌하겠다는 약속도 없었으니 애시당초 분노가 쉽게 가라앉길 기대하기 어려웠다.

계속되는 시위에 이달 8일 이란정부는 유무선 통신을 모두 차단하고 강경진압에 나섰다. 외신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직접 발포명령을 내렸고 군의 발포로 사망자가 수백에서 수만명에 이른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란정부는 정확한 사망자 수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계속 시위하라”며 항전 독려

강경진압으로 사망자가 나오면 이란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여러차례 공언한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이란 공격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동시에 이란이 미국에 대화를 제의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공격과 대화라는 두 가지 선택지 중 어느쪽을 선택할지 전세계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시위만으로는 승리가 어렵다고 느낀 시위대는 트럼프의 말을 믿고 기대를 걸지만 이란정부의 강경대응으로 시위의 기세는 한풀 꺾인 상황이다. 이에 트럼프는 다시 이란 시위대의 항전을 격려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미 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이란의 애국자들이여, 계속 시위하라. 여러분의 (정부)기관들을 점령하라”며 “(여러분을) 살해하고 학대하는 이들의 이름을 남겨라. 그들은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시위대에 대한 무분별한 살인이 멈출 때까지 이란 관리들과의 모든 회담을 취소했다”며 “지원이 곧 도착할 것”이라고도 했다.

앞서 11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지도부가 어제 전화했다”며 “회담이 준비되고 있고, 그들은 협상을 원한다”고 밝히며 대화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란정부, 배후에 모사드 있다고 의심

1월 10일 테헤란 시장은 모스크 30개가 불탔다고 발표했다. 이란 시위에서 모스크가 공격당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란정부는 이스라엘 모사드가 시위를 폭동으로 유도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이번 시위에 이례적으로 수많은 단체가 조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트럼프 1기 시절 미 국무장관과 CIA 국장을 지낸 폼페이오가 엑스(예전 트위터)에 “거리의 모든 이란 시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그들과 함께 걷는 모사드 요원 여러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쓰면서 의심을 증폭시켰다. 이스라엘의 두터운 지지를 받는 레자 팔라비가 시위를 이끄는 주도적 인물로 떠오른 것 또한 시위 배후에 이스라엘이 있다는 이란정부의 의심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시위에 나선 젊은이들은 “이제 일반인들도 현 정권과 제도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팔레비라도 와서 상황을 바꿔줬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한다. 물론 아직도 현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람들은 너무 지쳐 있고, 이 어려움에서 구해줄 수만 있다면 레자 팔레비가 와도 괜찮다고 말할 정도라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이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까지 자신들을 구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에 트럼프는 곧 지원할 테니 시위를 계속하라고 화답하고 있다. 트럼프의 지원책은 무엇일까.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그토록 원하는 미국과 이란의 싸움일까. 지금 페르시아만에 전세계의 눈이 쏠려있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