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의 소명 부족’ 법원, 김병주 영장 기각
불구속 판단에도 검찰 수사 등 논란 이어질듯
회생 절차 속도, 회생법원·채권자 판단으로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1000억원대 사기 혐의를 받는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과 경영진에 대해 법원이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구속 여부에 대한 판단은 내려졌지만, 홈플러스 회생 절차의 핵심인 재무 수치의 신뢰성과 책임 구조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부(박정호 부장판사)는 14일 새벽 김 회장과 김광일 홈플러스 공동대표, 김정환 MBK 부사장, 이성진 홈플러스 전무 등 4명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박 부장판사는 “사건의 피해 결과가 중한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현재까지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구속할 정도로 혐의가 충분히 소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증거를 없애거나 도망칠 우려보다는 불구속 상태에서 충분히 방어할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영장심사 절차의 한계도 언급했다. 영장 단계에서는 피의자가 검찰이 제출한 모든 증거를 미리 확인하기 어렵고, 증인신문도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고의성 등 주관적인 판단은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번 영장실질심사는 전날 오전 10시부터 밤 11시 40분까지 13시간 40분간 진행됐다. 영장실질심사 제도 도입 이후 최장 시간이다. 검찰과 MBK측은 신용등급을 언제 알았는지, 채권 발행 과정과 의사결정 구조 등을 놓고 장시간 공방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MBK와 홈플러스가 신용등급이 내려갈 가능성을 미리 알고도 이를 투자자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2월 17일부터 25일까지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와 기업어음(CP), 단기사채(SB) 등 총 1164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해 투자자에게 손해를 입혔다는 판단이다. 같은 달 28일 신용등급이 ‘A3’에서 ‘A3-’로 강등됐고, 나흘 뒤 기업회생을 신청한 점도 근거로 들었다.
검찰은 또 2023년부터 홈플러스의 재무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 내부에서 공유됐고, 기업회생을 하나의 선택지로 검토한 정황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김 회장을 제외한 일부 경영진에 대해서는 상환전환우선주(RCPS) 회계 처리와 감사보고서 기재, 신용평가사 보고 과정 등도 영장 청구 사유에 포함됐다.
이에 대해 MBK와 홈플러스측은 신용등급 하락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반박해 왔다. 회생 신청 역시 신용등급 강등 이후 유동성 위기가 커지면서 불가피하게 선택한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ABSTB 발행도 증권사가 설계한 구조로, 홈플러스가 발행이나 판매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RCPS 회계 처리 역시 외부 회계법인의 검토를 거친 적법한 절차였다고 주장한다.
구속영장 기각 직후 MBK는 입장문을 내고 “불구속 상태에서 사실관계를 다툴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의 법적 절차에서도 사실과 법리에 따라 입장을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회생을 통해 회사를 정상화하겠다는 기존 방침도 재확인했다.
이번 결정으로 홈플러스 회생 절차는 형식적으로는 다시 진행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다만 법원은 영장을 기각하면서도 피해 결과가 중대하다는 점을 함께 언급했다. 이에 따라 회생계획 심리 과정에서는 재무제표의 신뢰성, 책임 분담 구조, 신규 자금 조달의 적정성 등을 놓고 추가 검토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회생 절차는 형사 책임 판단과는 별도로 진행되는 민사 절차다. 서울회생법원은 앞으로 회생계획의 실행 가능성, 자산 가치 산정, 대주주 책임 이행 여부 등을 중심으로 심리를 이어갈 전망이다. 필요할 경우 회생계획안에 대한 수정 요구나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채권자들의 판단도 남아 있다. 구속영장 기각으로 사법 리스크는 일부 줄었지만, 채권자들은 회생계획에 담긴 숫자와 구조를 중심으로 승인 여부를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자금 부담과 손실 분담 방안을 둘러싼 논의도 계속될 전망이다.
공적 금융의 역할 역시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영장 기각으로 정책금융 논의의 최소한의 조건은 일부 충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민간 채권자의 동의와 회생계획의 객관성이 확보되지 않는 한 적극적인 개입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검찰은 법원의 기각 사유를 검토한 뒤 보강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김 회장 등은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게 되며, 검찰은 향후 기소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