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중동전쟁 멈춰도 비싼 평화 불가피

2026-04-02 13:00:03 게재

중동전쟁 발발 이후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전쟁은 공급망 교란과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을 통해 글로벌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최근 글로벌 증시가 거의 전적으로 국제 유가에 연동돼 움직이는 것도 이 때문인데, ‘원자재 가격상승 → 물가상승 → 중앙은행의 긴축 → 금리상승 → 주식 등 자산시장 타격’의 경로로 리스크가 전이된다.

공급망 교란에 따른 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에 큰 정책적 딜레마를 던진다. 중앙은행의 긴축정책은 경제에 ‘과잉수요’가 존재할 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전쟁 장기화에 따른 물가상승은 넘치는 수요에 기인하고 있다기 보다는 외부충격에 따른 ‘비용전이’의 성격 강하다.

공급망 교란에 따른 인플레이션 중앙은행에 정책적 딜레마

비용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에 대해 중앙은행이 기계적인 금리인상으로 대응할 경우 경제가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전쟁으로 인해 국제유가가 올라 생활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금리까지 상승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의 즉각적 억제와 공급망 충격의 일회성 성격을 감안한 인내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내려야 한다.

한편 인플레이션은 정치인들에게도 큰 부담이다. 물가상승은 정치인의 무덤이다. 경제학자 아서 오쿤은 ‘고통지수’라는 지표를 고안했다. 고통지수는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의 합으로 정의된다. 실업은 돈을 벌지 못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고, 물가상승은 가지고 있는 돈의 구매력이 떨어지는 데서 오는 고통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대통령들은 대체로 연임에 성공했다. 단임에 그친 소수의 대통령들은 대부분 인플레이션에 발목을 잡혔다. 1976년 대선에서 패한 제럴드 포드, 1980년 대선의 지미 카터, 1992년 대선의 조지 H.W.부시, 2024년 대선에서의 카멀라 해리스 등은 모두 인플레이션이라는 쓰나미에 휩쓸려 선거에서 패했다.

전쟁을 도발한 미국 트럼트 대통령도 인플레이션이 주는 정치적 부담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3월 넷째 주에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5달러를 넘어섰고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4.4%를 넘어섰다. 자동차에 대한 의존도가 큰 미국인들에게 휘발유가격 상승은 실질적인 삶의 질을 위협하는 척도가 될 수 있고,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정부와 민간이 감내해야 할 금융비용을 보여주는 지표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전쟁중단을 시사하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것은 그의 진심이라고 본다.

미국의 제안에 대한 이란의 대응은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미국은 자국 내 경제적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본격적인 출구전략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전쟁의 포성이 멈춘다 해도 세계 경제가 곧장 저물가 시대로 회귀하지는 못할 것이다. 원유수송로의 불안은 물론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헬륨 수급 차질과 석유화학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 부족에 따른 생산타격은 실물경제에 깊은 상흔을 남기고 있다.

전쟁의 포성 멈춰도 고비용 구조 고착화할 가능성 커

기업들은 이제 효율성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던 ‘적기생산(Just-In-Time)’의 시대를 뒤로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막대한 재고를 쌓아두는 ‘비축(Just-In-Case)’의 시대로 강제 진입하고 있다. 상시적으로 높은 수준의 재고를 보유하는 것은 기업에 막대한 유지 비용과 금융부담을 지우며, 이는 결국 제품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고비용 구조를 고착화할 가능성이 크다.

전쟁 이후 우리가 마주할 세상은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상수가 되고 그 리스크 비용을 상시로 지불해야만 하는 ‘비싼 평화’의 시대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 결국 우리는 더 많은 안전장치를 갖추는 대신 더 높은 비용을 감내해야 하는 시대, 저비용 구조가 흔들리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