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발 물가 습격 시작됐다…‘중동 전운’에 갇힌 한국 경제

2026-04-02 13:00:04 게재

석유류 기여도 급증하며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 … ‘석유 최고가격제’가 버팀목

농산물 풍작에 식료품값 안정됐지만 … 환율 1500원 돌파에 공공요금 압박 가중

중동전쟁 포성이 한반도 물가 지표를 흔들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2.2% 오르며 안정화 경로에서 이탈한 것은 단순한 수치상승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공급망 쇼크’에 의한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Cost-push Inflation)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신호탄일 수 있어서다.

특히 3년 5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치솟은 석유류 가격은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에너지 중동 편중 리스크’를 다시 드러냈다.

다만 2일 오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실상 일방적 ‘셀프 승리선언’을 하면서 중동전쟁의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다만 중동전쟁이 2-3주안에 마무리되면 150달러를 돌파했던 국제유가도 단계적으로 100달러선 이내로 안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억눌렸던 유가 압력 폭발 = 3월 물가의 핵심 키워드는 ‘석유류’다. 석유류 물가 상승률 9.9%는 사실상 전쟁 상황임을 고려할 때 방어적인 수치에 가깝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국내 기름값이 이 정도로 억제된 것은 정부의 강력한 시장 개입인 ‘석유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 조치 덕분이다. 국제유가는 중동전쟁 직전과 비교하면 2배(100%) 이상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유(17.0%)와 휘발유(8.0%)의 상승 폭은 가계와 물류 업계에 치명적이다. 경유 가격 급등은 화물 운송비용을 높여 시차를 두고 공업제품과 서비스 가격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기획예산처가 편성한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경 중 유류비 경감에 5조원 이상이 투입된 배경도 이 지점에서 명확해진다. 재정투입이 없었다면 3월 물가는 3%대에 진입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농산물이 만든 ‘착시 효과’ = 물가상승 폭을 제한한 또 다른 변수는 농산물이었다. 농산물이 5.6% 하락하고 신선식품지수가 6.6% 떨어진 것은 기상여건 호조에 따른 생산량 증가와 정부의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책이 시너지를 낸 결과다.

하지만 이는 ‘에너지발 쇼크’를 일시적으로 가려주는 착시효과에 가깝다. 농산물은 변동성이 큰 품목인 데다, 비료와 농기계 운용비 등 생산 원가에 유가가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현재의 농산물 하락세가 지속되더라도 유가 상승이 장기화되면 결국 농업 전반의 비용상승으로 이어져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을 유발할 수 있다.

물가 경로를 더욱 어둡게 하는 것은 환율이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돌파하면서 수입 원자재 가격을 이중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유가가 달러로 결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기업과 소비자가 체감하는 유가 상승 폭은 국제 시장 가격보다 훨씬 가파르다.

환율 상승은 에너지뿐만 아니라 밀, 옥수수 등 수입 곡물 가격과 가공식품 가격을 연쇄적으로 밀어 올린다. 3월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가 2.2% 상승하며 전체 물가와 보폭을 맞춘 것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에너지라는 특정 분야를 넘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물가정책 정밀도 높여야 =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현재의 물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정교한 ‘핀셋 정책’을 주문했다. 유동성을 대거 공급하는 방식은 자칫 물가를 자극할 수 있으므로, 이번 추경의 핵심인 고유가 피해지원금 지급 시 대상을 소득 하위 70%로 한정한 것은 적절한 선택이라는 평가다. 동시에 ‘평화의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과 함께, 에너지 전환(GX) 투자를 가속화해 석유 의존도를 낮출 것을 권고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강조한 것처럼, 추경 예산이 단순히 ‘기름값 보조’에 그치지 않고 산업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AX(인공지능 전환)와 연계되어야만 제4, 제5의 오일쇼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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