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진의 미국 톺아보기

호르무즈 봉쇄, 세계경제는 뉴노멀

2026-04-02 13:00:03 게재

2월 28일 감행된 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작전, 그리고 이에 맞선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올해 세계경제의 향방을 결정지을 최대 난제로 급부상했다. 특히 지난 달 30일 이란 의회가 영해 통제권 강화를 명분으로 통과 선박에 거액의 통행료를 물리기로 결의하면서 시장을 짓누르던 막연한 공포는 이제 실재하는 리스크로 변모했다.

미국 본토의 기류도 복잡하다. 전역으로 확산 중인 반(反)트럼프 시위(No Kings) 영향 탓인지 지상군 투입에 따른 정치적 부담과 전쟁 장기화가 중간선거에 끼칠 악영향을 극도로 경계하는 눈치다.

트럼프 대통령이 2일(한국시간)대국민담화를 통해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능력이 완전히 파괴됐다”며 “앞으로 2~3주 이란을 강하게 타격하며 전쟁을 끝내겠다”고 사실상 종전일정을 밝힌 것도 이번 군사작전의 장기화에 따른 초조함을 보여준다.

결국 실질적인 종전 여부와 상관없이, 개전 6주차를 맞는 시점에 트럼프행정부가 사실상의 종전선언을 강행하며 국면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무력충돌이 당장 전면전으로 치닫지 않더라도, 호르무즈의 불안정성을 상시 리스크로 안고 가야 하는 ‘뉴노멀’ 시대는 이미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해협 통과 물량 6% 불과하지만 대체 불가

현재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려면 호르무즈 해협이 지닌 독보적인 지정학적 특수성부터 직시해야 한다. 글로벌 물류 모델링 데이터에 따르면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해상 무역 비중은 전세계의 약 6% 수준이다. 수치만 놓고 보면 비중이 25% 안팎인 남중국해나 말라카 해협보다 낮아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통계적 착시를 넘어서는 결정적 차이가 존재한다. 바로 이곳을 지나는 물동량 대부분이 육로나 항공으로는 대체가 불가능한 석유와 천연가스라는 점이다. 수에즈운하나 대만해협과 달리 지형적으로 우회할 수 있는 경로가 아예 차단되어 있다는 사실은 호르무즈 해협의 폐쇄가 곧 전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즉각적인 마비로 직결됨을 의미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분석을 들여다보면 사태는 한층 심각하다. 봉쇄 조치 이후 단 며칠 만에 전세계 원유 공급량의 약 15%가 바다 위에 묶였고, 드론 공격을 받은 카타르 핵심 수출 시설의 여파로 글로벌 액화천연가스(LNG) 선적량의 20%가량이 시장에서 사라졌다. 배럴당 70달러 선을 유지하던 국제 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하며 시장을 강타한 배경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비상 비축유 방출이라는 강수까지 두며 진화에 나섰지만, 에너지를 실어 나를 물리적 통로 자체가 막힌 상황에서 이러한 임시방편으로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치솟으며 1970년대식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이 재연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에너지 위기 앞에서 각국의 처지는 극명하게 갈린다. 지난달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6년 중간 경제전망을 보면, 전 세계적인 고물가 압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여전히 안정적이다. 이는 미국이 주도해 온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천문학적 투자가 단순한 거품을 넘어 실제 노동 생산성의 혁신적 도약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미국 세계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던 것과 달리 지금의 미국은 AI 붐이 창출하는 거대 자본 흐름이 에너지비용 상승에 따른 경기침체 압력을 상쇄하고 있다. 더욱이 셰일혁명 이후 2019년부터 에너지 순수출국으로 지위를 굳힌 미국은 이제 러시아나 사우디아라비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실상부 산유국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내심 고유가 국면을 틈타 사상 최대의 수출 실적을 기대하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결국 미국은 풍부한 천연자원과 독보적인 AI 기술력을 방패 삼아 외부의 지정학적 리스크로부터 자국 경제를 완벽히 방어할 수 있는 역량을 증명해 내고 있다. 이란전쟁에 대한 리스크를 조기에 털어낸다면 미국으로서는 그토록 염원하던 ‘신(新)고립주의’ 실현도 가능한 시나리오가 된다.

에너지와 AI 결합된 미국 중심 더 강화

이러한 에너지 위기는 실물경제의 타격을 넘어 통화의 흐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중이다. 안전자산인 달러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미국 경제가 홀로 견고함을 과시하자 강달러 현상은 새로운 동력을 얻고 있다.

특히 중동 국가들의 친중 행보로 인해 페트로달러 시스템의 종말을 고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미국은 이 상황을 체제 전환의 결정적 기회로 역이용하는 모양새다. 달러를 단순히 석유 결제 통화라는 과거의 틀 속에 묶어두기보다는 자국의 압도적인 에너지 자급 기반과 AI 패권을 결합해 차세대 달러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전략적 포석을 준비 중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불러온 에너지 위기가 단순히 구질서의 붕괴만을 의미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는 오히려 실물 자산인 에너지와 첨단기술인 AI가 결합된 이른바 미국 중심의 더 강력한 달러 중심 체제가 시장에 안착하는 과정으로 해석해야 한다.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은 자원과 기술이라는 양대 축을 활용해 자국 경제를 방어하는 동시에 글로벌 자본을 자국 시장으로 유입시키는 새로운 경제 패권시대를 설계하고 있다.

문제는 산유국이 아닌 아시아와 유럽 국가들이다. 우선 에너지 소비의 80~90%를 수입에 의존하는 아시아 지역은 공급망 마비에 따른 직격탄을 맞고 있다. 치솟는 수입 비용 탓에 경상수지 적자는 이미 한계치를 넘어섰고, 국가적 전력 배급제에 돌입하는 등 사실상 경제마비 상태에 진입한 실정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파이프라인을 통한 러시아산 가스 대신 중동발 가스 수입을 선택했던 유럽 역시 LNG 가격이 폭등하며 다시금 위기에 빠졌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경제적 고통이 가중되는 와중에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추가적인 금리 인상을 예고해야만 하는 처지다.

이처럼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국가들은 미국의 호황과는 대조적으로 극심한 경기 침체와 물가상승의 고통을 겪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경제위기를 넘어 금융시장 붕괴와 사회적 불안정으로 번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효율적 협력의 시대에서 각자도생 시대로

결론적으로 이번 사태는 세계 경제가 얼마나 취약한 지정학적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과거 국제사회가 당연한 권리로 여겼던 ‘항해의 자유’가 뿌리부터 흔들리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작동 원리도 근본적으로 뒤바뀌고 있다.

앞으로의 세계 경제는 효율성 극대화를 추구하던 이전의 체제에서 벗어나, 지정학적 갈등과 안보 리스크에 따른 추가 비용을 상시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시대로 전환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도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미국은 독보적인 경제적 지위를 공고히 하며 나홀로 호황을 이어가겠지만 이는 세계 경제와의 불균형을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미 연준이나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조절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상시적 공급망 위기는 국가 간의 경제적 간극을 더욱 벌려놓을 것이다.

결국 세계경제는 효율적인 협력의 시대를 지나 자원과 기술을 선점한 국가만이 살아남는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미국으로부터 에너지와 기술 동력을 흡수당한 다른 나라들은 경제적으로 한층 어려운 처지에 놓일 공산이 크다.

우리 역시 이러한 거시적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원자재 수급 불안과 물류 마비가 촉발할 실무적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점검하고, 공급망 다변화와 더불어 변화된 국제질서에 걸맞은 새로운 생존 전략을 서둘러 구축해야 할 때다. 미국 경제의 독주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 이면의 위기에 대비하는 치밀한 안목이 요구된다.

조태진 법무법인 서로변호사·M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