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기술자의 AI 넘어 정책가의 AI로
“2026년 한국의 첫 농업위성이 발사된다.” 이 짧은 문장 속에는 향후 10년 한국 농업의 성패가 담겨 있다. 기후위기로 농업생산은 요동치고 식탁물가의 진폭도 커졌다. ‘기후플레이션’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다. 그러나 농산물 수급 판단은 여전히 지난해의 경험과 현장의 감각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번 위성발사가 단순한 우주 이벤트로 끝나지 않으려면 농업 인공지능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농업 인공지능(AI) 정책을 냉정히 진단하자면 나무는 무성하되 숲은 보이지 않는 격이었다. 센서, 드론, 로봇, 온실 제어 알고리즘 등 이른바 기술자들의 인공지능은 넘쳐난다. 그러나 농업구조의 근본적인 개선, 기후 리스크 분산, 농가소득 안정, 그리고 직불제와 재해보험의 정밀화까지 꿰뚫어 보는 정책가의 인공지능은 보이지 않는다.
과거 스마트팜 보급 사업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현장에 고가의 장비는 깔렸지만 정작 그 데이터를 엮어 농정과 경영을 혁신하는 데이터 아키텍처는 부실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인공지능은 개별 농가가 구독료를 내고 선택적으로 구매하는 도구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고 구축해야 할 디지털 사회기반시설(SOC)이어야 한다.
인공지능은 농촌을 지키는 공공재
한국 농업의 중심은 소농과 고령농이다. 이들에게 매달 비용을 부담하며 인공지능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한국형 농업 인공지능은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니라 기상청 예보처럼 누구나 누리는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
유럽연합(EU)은 2023년부터 위성 기반 필지 모니터링 시스템을 공동농업정책 보조금 관리의 핵심 수단으로 도입했다. 센티널위성과 인공지능을 활용해 모든 신청 필지의 작물과 농업 활동을 정기적으로 판독한다. 인도는 국가 농작물보험에서 위성과 인공지능, 드론을 결합한 디지털 피해평가 시스템을 도입해 보험금 지급 속도와 공적 위험 분담 능력을 크게 개선했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도 이런 국가적 데이터 아키텍처다. 농업위성 정밀토양지도 지적정보 기상데이터를 하나로 통합한 강력한 백엔드 인프라가 필요하다.
국가가 이 기본망을 책임지고 깔면 민간은 그 위에서 정밀 재배 솔루션과 수급 예측 서비스를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다. 농민은 막대한 초기투자 없이도 공공 인프라를 통해 첨단 기술의 혜택을 누린다. 데이터는 정부가 흐르게 하고, 혁신은 민간이 주도하며, 혜택은 농민이 가져가는 구조. 이것이 농업 인공지능이 가야 할 선순환 모델이다.
미래농업 인공지능의 성과를 단순히 생산량 몇 퍼센트 증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기후재난 속에서도 농가소득의 급락을 막고, 농촌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기상이변이 감지되면 사전에 경고하고, 피해발생 시 보험금이 지체없이 지급되는 시스템. 이것이 기술이 농민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위로다.
비용구조 역시 달라져야 한다. 개별농가에 부담을 전가하는 대신 데이터로 이익을 얻는 보험사나 농협 식품기업, 그리고 정부가 비용을 분담하는 모델이 현실적이다.
아무리 정교한 기술도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영세소농 구조는 혁신기술 확산의 가장 큰 장벽이다. 해법 중 하나는 지역 단위 서비스 모델이다. 개별농가가 각자 인공지능을 구독하는 대신 읍·면이나 대규모 영농단지 단위에서 위성·기상·토양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가상농장 개념이다.
지금과 같은 파편화된 필지들은 데이터를 매개로 하나의 큰 농장처럼 연결되고, 공동 방제와 재배, 적기 출하를 가능하게 한다. 소농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기후리스크를 지역 공동체가 기술로 함께 흡수하는 구조다. 지역 농협, 출하조직, 청년 농업경영체가 이 변화를 이끌 수 있다.
농업위성, 농촌을 비추는 등불이 될 수 있길
농업위성이 우주의 별이 아니라 농촌을 비추는 등불이 되길 바란다. 이제는 기술자의 인공지능을 넘어 정책가의 인공지능을 설계해야 할 시간이다. 장비보급보다 데이터와 제도의 설계도에 집중해야 한다.
미래 농업 인공지능 인프라는 마을 전체를 보살피는 지능형 가로등과 같다. 개별농가가 각자 손전등을 드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촘촘한 가로등을 세우고 재난에 대비한 안전망을 갖추는 일이다. 농민이 어두운 밤길을 걱정 없이 걷고, 폭우 속에서도 안심하며 농사지을 수 있을 때, 기술은 비로소 농민의 땀방울을 이해하는 따뜻한 손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