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중남미를 악마화하는 진짜 이유
11월 중간선거 앞두고 국내 지지층 결집 의도 …경제적 취약 겹쳐 중남미 혼란 가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중남미를 자신의 선거판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한 데 이어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에 대한 군사 공격 가능성까지 거론하면서 중남미는 다시 한번 강대국 정치의 격전지로 떠올랐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지역 분쟁이나 개별 국가의 위기와 차원을 달리한다. 트럼프가 미국 내 정치적 결집을 위해 강대국의 힘을 외부로 투사하는 방식은, 중남미의 정치·안보 환경을 구조적으로 뒤흔드는 ‘선거전략형 외교’로 규정할 수 있다.
특히 베네수엘라와 멕시코처럼 중남미 질서의 핵심적 비중을 지닌 국가가 직접적인 타격을 입으면서 그 여파는 역내 민주주의·안보·경제 전반에 걸친 대전환을 강제하고 있다. 심지어 이러한 변화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한국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위험한 외부’로 중남미 소비하는 전략
트럼프는 과거 임기 동안에도 이민 마약 국경통제를 둘러싼 문제를 정치적 무기로 삼아 지지층 결집에 성공했다. 그 경험을 토대로 이번 대선에서도 동일한 서사를 재가동하는 모습이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대한 군사행동’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체포’는 미 대선 국면에서 중남미를 ‘위험한 외부’로 규정해 국내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강경안보 이미지를 강화하는 전략이다.
이미 1기 재임 시기부터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개입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언급했고, 멕시코 국경에는 군 병력 배치와 무력사용까지 고려한 바 있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 그가 다시 이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중남미를 향한 미국의 정책방향을 바꾸려는 시도라기보다 자신의 강점인 ‘강경안보 이미지’를 최대화함으로써 미국 내 정치적 기반을 결집하기 위한 전략적 행위로 읽힌다.
트럼프는 라틴아메리카를 특정한 안보위협과 범죄의 공간으로 규정하며 미국 대중의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능수능란한 화법과 정책을 구사한 바 있다. 그런 그가 선거를 앞두고 ‘군사행동’을 다시 들고나온 것은 중남미 국가들의 주권을 직접 위협할 뿐 아니라 지역정세 전체를 위협하는 위험한 선택이다.
사회 기반 흔들리는 베네수엘라
우선 베네수엘라는 대통령 체포 이후 사실상 정권붕괴 국면에 진입하면서 혼돈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오랜 권력집중과 부패, 국영 석유산업 의존이라는 취약한 구조 위에서 유지되던 체제가 급작스러운 외부 충격에 무너졌지만 이를 대체할 정치적 중심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마두로 친위세력은 구심점을 잃었고, 임시 지도부는 정통성·통합력 모두 취약하다. 일부 정치범 석방조치가 이뤄졌으나 이는 체제의 변화를 뒷받침하는 긍정적 신호라기보다 급변상황을 관리하기 위한 임시대응에 가깝다.
국가 치안은 급격히 불안정해지고 있으며 이미 붕괴된 경제는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회 기반 자체가 흔들리면서 난민유출이 다시 증가할 조짐이 보이고, 각 지역에서 무장세력·군부 일부가 움직임을 보이며 혼란의 범위는 확대되고 있다.
외압에 흔들리는 멕시코 셰인바움 정부
멕시코의 상황 또한 녹록지 않다.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정부는 치안개혁, 카르텔 대응, 경제구조조정이라는 장기과제에다 트럼프의 군사공격 발언이 겹치며 외교·안보·치안 모든 영역에서 동시다발 위기를 맞았다.
미국의 군사개입 가능성은 멕시코 내부문제 해결을 돕기보다 오히려 주권침해 논란을 유발하고 반미정서를 증폭시키며 국내 정치의 분열을 심화시키고 있다. 셰인바움정부는 정책 추진 기반을 온전히 다지기도 전에 대외적 위협 대응을 우선순위로 전환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셰인바움정부는 ‘대내 치안’과 ‘대미 외교’라는 두 개의 폭풍이 정면으로 겹치는 이중의 압력 속에서 국정주도권을 유지해야 하는 난제에 직면했다.
중남미의 강제적 ‘대전환기’ 진입
베네수엘라와 멕시코에서 벌어진 이 급변 사태는 중남미 전체의 구조적 전환을 촉발하고 있다. 브라질은 극심한 정치 양극화로 사회적 피로도가 누적되어 있고, 아르헨티나는 급격한 긴축정책과 경제난 속에서 기존 정치질서가 사실상 재편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콜롬비아는 내전 종식 이후 새로운 평화 구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게릴라 잔존 세력과 범죄조직이라는 이중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칠레·페루·에콰도르 등 안데스권 국가들은 사회불만과 헌정 논쟁을 반복하며 정치적 불안정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중남미 국가들이 이미 ‘제도적 피로’와 ‘경제적 취약성’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군사행위는 지역이 스스로 개혁하고 조정할 시간을 완전히 빼앗아 버렸다. 트럼프의 행동은 중남미를 협력의 파트너가 아닌 미국 국내정치의 도구로 소비하는 방식이며, 결과적으로 각국은 자국의 개혁보다 외부 압박에 대응하는 데 더 많은 국가역량을 씀으로써 지역 전환기의 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에 미치는 중남미 충격의 파장
베네수엘라 정권 붕괴와 멕시코 불안정이 촉발한 중남미의 격변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한국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 오늘날 한국 경제는 중남미와 단순한 교역 차원을 넘어서 전략적 연계 수준으로 확장해 왔다.
배터리·전기차·반도체 등 미래 산업의 핵심인 리튬·구리·니켈·희토류가 대부분 중남미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은 이 지역의 정치불안이 곧 한국의 산업생태계 전반에 구조적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베네수엘라의 혼란은 원유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멕시코의 정치·치안 불안은 북미 공급망의 안정성을 약화시키며 한국 제조업의 생산 계획에도 직접적 부담을 준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의 존재다. 트럼프의 군사행동 언급이 반복될수록 미국 외교는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새로운 리스크를 동반하게 된다. 미국 외교의 방향성이 흔들릴 때마다 한국은 외교·안보 전략을 재정비해야 하고, 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지형에도 파장을 일으킨다.
특히 미국의 전략적 초점이 중남미로 분산될 경우 아시아 정책의 일관성이 약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미동맹은 강고하지만 미국의 외교 우선순위 변화는 한국의 대외 전략 전반에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의 새로운 외교·공급망 전략 필요
한국은 지금 중남미 충격을 ‘남의 문제’로 바라볼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섰다. 지금 중남미가 겪는 혼란은 단순히 한 지도자의 체포나 특정 국가의 치안악화가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의 시대에는 어느 지역의 불안정이 국경 내에서 멈추지 않는다. 중남미가 흔들리면 한국도 흔들린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중남미 불확실성에 대비한 자원 확보 전략의 재점검, 북미–중남미를 아우르는 공급망의 다변화, 그리고 미국 외교의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는 독자적 외교 설계다.
여기에 더해 한국은 장기적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정보분석 체계와 외교·통상 조정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리튬·구리·니켈 같은 핵심 광물의 조달 안정성은 단순한 산업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중남미 정치의 급변 속도는 한국이 기존의 ‘사후 대응형 외교’에서 벗어나 선제적·예측적 전략으로 전환해야 함을 분명히 보여준다. 중남미의 안정은 곧 한국의 산업·외교·안보의 안정과 직결된다.
강대국 지도자의 선거전략이 세계 질서를 흔드는 시대에, 한국은 더욱 넓은 시야와 능동적 전략으로 국제 정세의 격랑을 헤쳐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