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국회기록원을 실질적 민주주의 전당으로 만들려면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추락에는 ‘날개’가 없는가 보다. 집권당 원내대표직 사퇴, 당 윤리심판원의 제명 처분, 의원직 사퇴 압박까지. 게다가 정치자금법 위반, 뇌물수수, 직권남용 등 무려 13건에 이르는 방대한 혐의로 경찰 수사마저 받고 있다. 그제 그의 자택 등 6곳에 대한 압수수색이 단행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추락이 시작된 지점이다. 놀랍게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9월 차남의 숭실대 편입 관련 의혹이 뉴스타파에 보도되면서 표면화한 각종 의혹의 시작과 증폭 과정에서 국회 보좌진이 스모킹건 역할을 했다. 뉴스타파의 최초보도는 김 의원실에서 근무했던 전직 보좌진의 제보가 바탕이 됐다. 의혹이 증폭된 것 또한 전현직 보좌진들이 김 의원의 비위 실태를 언론과 수사기관에 본격적으로 알린 결과였다.
국민을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보좌진의 내부 제보나 고발 증언 폭로 등이 아니었으면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각종 의혹이 김 의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강선우 의원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사퇴, 더불어민주당 탈당 및 제명, 의원직 사퇴 압박 등에다 공천헌금 수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인 이혜훈 전 의원 역시 과거 인턴과 보좌진들에 가한 폭언 녹취 등이 공개되면서 인사청문회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에 처해 있다.
국회의원의 부당권력 기록하는 ‘블랙박스’
하나같이 보좌진을 개인 비서나 소모품으로 취급해 부당한 지시와 갑질을 한 데서 사단이 난 것임을 알 수 있다. 국회 보좌진은 국가공무원법에 규정된 별정직공무원으로서 국민이 낸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공적 자산임에도 이를 사적으로 유용한 것이 발단이 된 셈이다.
국회의원과 보좌진이 정치적 동지 내지 운명공동체였던 과거 구조에 익숙한 필자로서는 이 몇가지 사례를 가지고 국회의원 300명 전체로 일반화하고 싶지 않다. 다만 고위직 공직자의 자질과 도덕성 등이 가장 가까운 목격자에 의해 적나라하게 검증되는 시대적 변화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원 보좌직원을 법률이 정한 입법활동 지원 차원을 넘어 사적으로 동원한다면 이는 엄밀히 말하면 공적 시스템을 사유화한 ‘행정적 부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이런 관행이 ‘정치적 신의’로 덮어질 수 있었지만 그것이 사라진 자리에는 차가운 법적 기록만 남는다. 과거의 보좌진이 국회의원의 정치적 신념을 지키는 ‘방패’였다면, 현대의 보좌진은 국회의원의 부당한 권력을 기록하는 ‘블랙박스’가 된 것이다.
미디어 환경 변화도 보좌진을 국회의원의 그림자에서 국민이 보낸 감시자로 변모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과거에는 보좌진의 입을 통해 기억으로만 전해졌던 부당한 지시들이 이제는 SNS 문자메시지 녹취 등 ‘기록’으로 남아 오래전의 불법 증거로까지 소환되고 있다.
최근 가뜩이나 국회가 국민의 불신을 받는 가운데 보좌진의 내부 고발로 드러난 의원들의 비리와 비위로 인해 입법부 전체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이다. 그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를 기록에서 찾고 싶다. 기록은 공적에서 범죄까지 모든 행위의 증거가 된다. 그런 점에서 보좌진의 내부고발도 기록으로 입증되어 권력을 심판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는 현실은 주목할 만하다.
국회의원과 정당 기록 수집 보존 길 열려
이와 관련해 지난 12일 국회기록원이 출범한 것은 큰 기대를 갖게 한다. 국회도서관 산하 조직이던 국회기록보존소가 국회의장 직속 차관급 독립기관으로 승격했다. 언론의 조명을 크게 받지는 못했지만 ‘국회 아카이브’의 출범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동안 임기 만료와 함께 거의 멸실되거나 사유화되던 개별 국회의원 기록과 엉망으로 관리되던 정당 기록까지 체계적으로 수집 보존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조직이 갖춰진 것이다.
도서관 박물관 아카이브를 3대 문화유산기관이라고 한다. 도서관은 지식, 박물관은 유물, 아카이브는 증거를 보존한다. 증거의 보존은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적 문화자산이다. 300명의 입법기관과 정당에 막대한 국민 세금이 투입되지만 그 활동의 증거이자 책임성을 담보하는 기록의 의무가 없었던 것이 거꾸로 국회의원과 정당이 국민 불신을 받는 부메랑이 된 현실을 성찰해야 한다. 이제 막 탯줄을 끊은 국회기록원을 그야말로 ‘민주주의를 기록하는 전당’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국회는 물론 국민도 관심을 갖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