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칼럼
미국이 ‘제국의 입맛’을 다신다면
북극해에 떠 있는 거대한 얼음 섬 그린란드. 남한 면적의 21배, 인구는 고작 5만7000명이다. 이 섬이 갑자기 세계 뉴스의 중심에 섰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 섬을 사들이겠다고 말하면서다. 동맹의 영토가 거래 대상처럼 언급됐다. 2차대전 후 80년 동안 우리가 익숙했던 외교의 문법과는 사뭇 다른 장면이다.
유럽 외교가의 공기가 차가워졌다. 덴마크는 단호하게 반대입장을 밝혔다. 유럽 내부에서도 안보와 주권문제를 둘러싼 우려가 잇따랐다. 그러자 트럼프정부는 통상문제를 거론하며 압박성 발언을 이어갔다.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외교적 파장이 커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포럼에서 수위 조절에 나서는 듯한 모습도 보였지만 이미 던져진 메시지는 남았다. 동맹을 설득의 상대라기보다 협상의 카드처럼 다루는 태도에 문제는 땅이 아니라 시선이었다.
전후 미국은 힘을 사용해왔다. 그러나 그 힘은 대체로 제도와 동맹이라는 틀 안에서 움직였다. 갈등은 회의 테이블로 올라왔고 군사력은 마지막 수단으로 남겨졌다. 그래서 미국의 힘은 두려움만이 아니라 신뢰도 함께 만들었다. 지금 그 균형이 흔들린다. 협의보다 거래가 먼저 나오고, 규칙보다 압박이 앞선다. 외교의 문장이 짧아지고 거칠어졌다. 동맹을 향해서 말이다.
이 장면은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하다. 19세기 말 미국이 스페인과 전쟁을 치르던 무렵, 미국 사회에는 노골적인 ‘제국의 언어’가 떠돌았다. 영향권, 확장, 전략적 요충지, 전쟁의 필요성 같은 말들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몬로주의는 비개입 선언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관리와 통제의 논리로 변질됐다. 새로운 몬로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의 ‘돈로주의’는 이름만 달랐을 뿐 유사한 방식으로 반복됐다. 베네수엘라를 둘러싼 강경 압박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동맹 내부에까지 스며든 '제국의 논리'
그러나 그린란드 문제는 결이 다르다. 약소국이 아니라 동맹과 연결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제국의 논리가 동맹 내부로 스며들기 시작하면 질서는 균열을 넘어 성격 자체가 달라진다.
얼마 전 관훈클럽 행사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축사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원로 외교관의 발언은 대개 신중한데 그날은 분위기가 달랐다. 미국 이야기가 나오자 어조가 한층 단단해졌다. 트럼프행정부 출범 이후 국제기구와 다자 틀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 변화를 거론하며 다자주의 질서가 약해지는 데 대한 우려를 비교적 강한 톤으로 드러냈다. 외교현장을 오래 지켜본 인사의 걱정이 묻어났다.
갈등을 흡수하던 국제기구와 다자 협력의 틀이 약해질수록 힘은 더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과거 같으면 제도가 완충했을 문제를 압박과 힘의 과시가 대신한다. 외교의 안전장치가 하나씩 사라지는 느낌이다.
이 지점에서 조지프 나이가 말한 소프트파워가 떠오른다. 강요하지 않아도 따르게 만드는 힘. 그 토대는 가치 신뢰 예측가능성이었다. 미국은 오랫동안 이 힘으로 세계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최근의 미국 외교는 이 자산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나이 역시 생전에 여러차례 이런 흐름이 결국 미국 자신의 영향력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버드대 역사학자 그레그 그랜딘 교수는 최근 기고문에서 트럼프식 힘의 외교를 시대착오적 제국주의의 귀환으로 해석하며 이것이 대규모 충돌의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가 소환한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속 ‘멜로스 대화’는 이런 상황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감내해야 할 것을 감내한다”는 논리가 지배할 때, 대화는 사라지고 힘만 남는다. 투키디데스는 이 언어가 결국 아테네의 오만과 몰락으로 이어졌음을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불안이 깊어진 유럽에 그린란드 논란은 또 설상가상의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동맹 내부에서조차 신뢰의 언어보다 힘과 거래의 언어가 먼저 나오는 현실. 이 변화가 단지 유럽 문제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그린란드 상황은 한국에 반면교사
그린란드는 멀리 있다. 그러나 그 섬을 둘러싼 논쟁은 가깝게 들린다. 힘이 규칙보다 먼저 나오고, 동맹이 신뢰보다 거래로 불리는 장면. 이런 변화가 서반구에만 머물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한국도 그 지도 밖에 있지 않다. 안보 통상 기술 방위비. 어느 사안에서든 비슷한 방식의 압박과 거래가 반복될 수 있다. 동맹이라는 말이 안심을 보장해주던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이 정말 ‘제국의 입맛’을 다시는 것일까. 미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라고 반론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을 두고 ‘선출된 황제’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임기 동안 대통령이 향하는 방향이 곧 미국의 진로가 되기 쉽다. 과연 트럼프의 길이 미국 다수의 선택으로 굳어질 것인가. 세계가 미국의 다음 선거를 주목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