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미-이란 전쟁 무엇을 위한 ‘참극’이었나
미국과 이란이 전쟁을 끝내기로 15일 합의했다. 개전 106일 만이다. 19일 스위스에서 종전 양해각서(MOU) 서명식을 갖는다. 세계 평화와 한국 경제를 위해 다행스런 일이다. 두 나라 전쟁으로 유가가 폭등해 세계 경제가 몸살을 앓았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와 미국의 역봉쇄,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확전 엄포로 전세계는 하루하루 불안감과 초조함에 시달려야 했다.
결과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근본적인 의구심은 가시지 않는다. 수많은 인명피해와 세계경제의 충격. 무엇을 위해 이런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했는가. 불확실성이 완전 해소된 것도 아니다. 양해각서 전문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언론 등을 통해 흘러나온 내용들을 보면 최종적인 종전합의에 이르기까지는 첩첩산중으로 보인다.
강경파 최고지휘부만 제거하면 이란 스스로 붕괴할 것이란 트럼프의 오판
미국은 물론 이란 내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거세다. 미국 공화당 내 강경파들은 “그 많은 군사비를 쓰고 얻어낸 게 고작 이것뿐이냐”고 볼멘소리를 하고, 민주당에서는 “왜 전쟁을 일으켰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한다.
지금 와서 냉정히 톺아보면 기습적인 공격으로 이란 강경파 최고지도자들을 제거하고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면 스스로 붕괴할 것이라 쉽게 생각한 트럼프 대통령의 오판이 결정적 패착이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달콤한 꾐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란의 완전한 비핵화, 탄도미사일 능력 무력화를 명분으로 내걸고 압도적 공격을 퍼부었으나 이란은 끈질기게 버티며 굴복하지 않았다.
아무리 겁을 주고 군사위협을 가해도 원하던 ‘완전한 승리’를 얻기가 어려울 것이란 현실적 판단이 트럼프로 하여금 ‘정신적 승리’를 주장할 수 있는 ‘덜 수치스런 출구전략’을 모색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합의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율 열세로 돌파구가 절실한 트럼프 대통령의 조급함과 무한정 버티기에는 힘이 달려 숨고르기에 들어간 이란 지도부의 다급함이 타협된 결과로 보인다.
미-이란 양국은 양해각서(MOU) 서명식 후 60일간 종전과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본 협상에 들어가기로 했다. 본협상에선 이란 비핵화 방안, 대이란 경제제재 완화, 동결자금 반환, 이란 경제재건 등을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하나같이 풀기 어려운 난제들이다. 이스라엘의 돌출행동도 변수다. 이스라엘은 일단 트럼프의 강경기세에 눌려 움츠려있지만 기회만 되면 다시 전쟁판으로 이끌기 위해 온갖 훼방과 술수를 쓰려 할 것이다.
이번 전쟁을 통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은 더더욱 바닥에 떨어졌다. 트럼프의 관세폭탄으로 가뜩이나 불만이 쌓여있던 서구의 전통적 동맹국들은 미국의 강압적인 전쟁지원 요구를 무시했다. 우리도 그중 하나다. 트럼프로선 자업자득이며 스스로 외톨이로 전락한 셈이다.
본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호르무즈해협 기뢰제거 작업이나 재건프로젝트 참여 등 동맹국들을 향한 트럼프의 경제적 부담 떠넘기기 압박이 예상된다. 전후 복구작업 참여 문제도 있으니만큼 적절히 대응하고 그에 걸맞은 발언권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각자도생 상황일수록 동병상련국들과 ‘전략적 연대’ 중요
이재명 대통령은 프랑스에서 열린 G7회의에 참석 중이다. 국익을 위해 각자도생이 불가피해진 살벌한 국제외교가 판치는 상황이지만 그럴수록 ‘전략적 연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당위성이 커진다. 동병상련 처지의 우방국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이를 바탕삼아 우리 발언권을 높여야 한다.
미-이란 전쟁은 한국경제가 중동 에너지와 해상교통로에 얼마나 크게 의존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와 공급망 재편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인 우리 선박 24척을 신속히 안전하게 빼내는 것이 당면 과제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종전합의 발표 전날 뜬금없이 자신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싱가포르 정상회담 당시 함께 산책하는 사진을 SNS에 올렸다. 이란핵 문제가 해결됐으니 다음은 북핵 이슈에 관심을 쏟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중간선거를 의식해 불리한 여론을 만회할 외교적 업적이 절실해 우크라이나전쟁 조기종식과 함께 북미 정상회담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의 ‘일방통행주의’를 익히 알면서도 한반도평화를 위해서는 돌파구를 여는 기회가 될 터이니 기대감을 버리고 싶지 않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