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떠나는 단체장의 뒷모습도 정치다
선거는 끝났지만 단체장 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낙선한 단체장에게도 이달 말까지 예산과 조직, 재난대응과 민생현안을 챙길 책임이 남아있다.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권한을 어떻게 넘기는지는 한 정치인의 품격을 넘어 지방정부의 수준을 보여준다.
공직 인수인계의 인상적인 장면은 2019년 4월 강원 산불 때 있었다.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이 김부겸에서 진 영으로 바뀌던 시점이었다. 전임자와 후임자는 재난현장에서 자정 무렵 임무를 교대했다. 재난대응의 연속성을 고려한 일이다. 공직은 임명권자나 선거 결과보다 주민 안전과 행정 연속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 사례다.
이번 지방선거 뒤에도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김태흠 지사님, 지난 4년 수고 많으셨습니다.” 박수현 충남지사 당선인이 당선인사 현수막 첫 줄에 경쟁자였던 김 지사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승자의 언어가 심판이나 단절보다 존중과 배려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지방정부 교체는 전임자의 모든 정책을 지우는 일이 아니다. 무엇을 이어가고 무엇을 고칠지 차분하게 가르는 일이 먼저다.
이런 점에서 몇몇 단체장들은 6.3 지방선거 이후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일부 낙선 단체장들은 선거관리 부실을 넘어 선거 결과 자체에 의문을 던지는 듯한 언어를 사용했다.
물론 낙선자에게도 이의제기와 제도개선 요구의 권리는 있다. 문제는 방식이다. 법적 절차와 객관적 자료로 검증을 요구하는 일과 의혹을 부추기는 일은 분명히 다르다. 선거관리 부실을 바로잡자는 주장은 필요하지만,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언어가 앞서면 주민에게 남는 것은 제도개선이 아니라 불신뿐이다.
임기 말 태도에서도 차이가 있다. 어떤 단체장은 퇴임식을 앞당겨 준비하고 어떤 단체장은 당선인 측에 주요 현안과 쟁점사업을 넘기는 데 집중한다. 퇴임식 날짜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남은 기간 실제 직무를 어떻게 수행하느냐다. 조직과 예산, 인사, 중단 없는 재난대응은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주민의 일이다.
낙선은 정치인의 패배지만 행정공백은 주민의 피해다. 마지막 간부회의에서 당선인 인수인계를 지시하고, 쟁점사업의 장단점을 정리해 넘기며, 임기 말 무리한 인사나 계약을 자제하는 일은 패자의 미덕이 아니라 현직 단체장의 기본 책무다. 반대로 남은 권한을 정치적 불만의 표시로 쓰거나 책임을 일찍 내려놓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사회로 돌아간다.
패배를 받아들이는 방식도 민주주의의 일부다. 떠나는 단체장의 뒷모습은 유권자가 마지막으로 보는 정치의 얼굴이다. 선거는 졌더라도 행정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지방자치의 성숙도는 이기는 방식만큼이나 지는 방식에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