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행정구역은 왜 선거구처럼 바뀌지 못하나

2026-01-26 13:00:06 게재

행정통합 이슈의 바탕에 있는 대한민국행정구역 문제를 들여다 보면 본질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입법부인 국회의원 지역구는 2014년 헌법재판소가 인구 편차 2대 1 기준을 제시한 이후 총선을 앞둘 때마다 조정되고 있다. 사법부인 법원 관할구역도 사건수와 접근성을 고려해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지원의 설치·조정을 반복해 왔다.

행정부의 중앙부처는 여러 지표를 활용해 인구감소지역과 의료취약지역을 정기적으로 재지정하며 생활권 변화를 반영한다. 그런데 시민 삶의 기본 단위인 자치단체 경계는 110년 넘게 사실상 그대로다.

1914년 일제가 단행한 부군면 통폐합은 오늘날 행정구역의 골격을 만들었다. 이후 대도시 인근과 분도, 광역시 승격을 제외하면 광역자치단체 경계는 100년 넘게 거의 바뀌지 않았다. 그 사이 인구는 1000만대 초반에서 5000만명 수준으로 불어났고, 농업국가는 반도체·첨단 제조 강국이 되었으며,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양극화가 심화됐다.

이런 변화 속에서 광역행정구역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하다. 경제구조의 급변과 인구이동 패턴이 완전히 달라진 오늘날에도 행정구역 고정은 지역 불균형을 더욱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치단체 경계, 110년 넘게 제자리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세 가지 구조적 원인이 있다. 첫째, 정치적 비용의 비대칭성이다. 행정구역 변경은 지역 정체성과 기득권에 직결되므로 반대는 격렬하고 조직적이다. 반면 찬성은 미래지향적이지만 분산돼 있다. 이러한 정치적 계산이 지역주의를 강화하며 개편을 가로막는 핵심 장애물로 자리 잡고 있다.

둘째, 제도적 경로의존성이다. 선거구는 헌법재판소라는 외부 강제가 작동해 주기적으로 손질되지만 광역자치단체 경계 변경은 그동안 대부분 별도의 특별법을 통해서만 추진돼 왔다. 사실상 입법 부담이 커 변화보다 현상 유지를 유인하는 구조가 됐다. 이 제도적 관성은 지방자치의 유연성을 떨어뜨리는 뿌리 깊은 문제다.

셋째, 기능적 우회다. 중앙정부와 공공기관은 행정구역을 바꾸는 대신 대전지방국세청(대전·세종·충남·충북), 한국전력 대전세종충남본부(대전·세종·충남)처럼 하나의 권역으로 묶는 조직개편을 반복해 왔다. 이런우회 전략은 근본해결 대신 임시방편으로 그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공개적 지지 아래 여야가 함께 추진 중인 대전·충남 행정통합은 단순한 구역 조정이 아니다. 100여년 누적된 제도적 모순에 균열을 내는 시도다. 국민의힘 발의 특별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고, 더불어민주당도 253개 조항·229개 특례를 담은 법안을 다음 주 초 발의할 예정으로 여야 모두 2026년 2월 안팎 통과를 목표로 논의 중이다.

물론 우려도 있다. 대전 쏠림, 농촌 소외, 정체성 상실이다. 그러나 현재 분리상태가 충남 서남부의 상대적 소외와 서비스 격차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무시하기 어렵다. 저수지의 물꼬를 터야 마른 땅에 물이 스며들듯, 통합은 새 위험과 함께 고착된 문제를 풀어볼 도구다. 균형발전과 시민 참여를 강화하는 설계가 관건이다.

시민 삶에 실질적 변화 가져올 첫걸음

​특별법이 계획대로 통과되면 약 360만 시민은 2026년 지방선거에서 통합특별시장을 선출하고 7월 새 광역자치단체를 출범할 수 있다. 110년 된 지도를 접고 새 지도를 펼칠 권한은 시민에게 있다. 행정통합은 시민 삶의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첫걸음이 될 것이다.

권선필 목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