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는 우리가, 폐기물은 미래세대에
‘핵 없는 사회’로 가야 하는 이유 … 온실가스보다 치명적인 방사능 폐기물
1980년대 중반 경기도 연천 GOP에서 군생활을 했다. 태풍전망대 인근이었는데 특이하게 미군들과 OP를 같이 썼다. 10명 정도의 미군들은 각자 개인용 케네디지프를 갖고 있었다. 이들은 파주에서 연천, 철원까지 흩어져 밤 근무를 하고 다음날 아침에 돌아왔다. 부대 책임자는 헬기를 타고 다녔다. 이들은 우리가 낮 근무를 서는 대공초소에 지상관측용 레이더를 설치해 운용했다. 이 레이더는 야간에도 수십km 전방에 있는 북한군의 움직임을 본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들은 ‘핵지뢰’ 운용팀이었다. 핵지뢰는 대전차 방어용 핵무기다. 전차들이 접근하는 길목 지하에 매설해 유사시 폭파시킨다. 핵지뢰가 터지면 그 자리에 지름 1km, 깊이 100미터의 거대한 방사능 웅덩이가 만들어진다. 전차 접근을 차단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방사능 낙진이 워낙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실제로 사용된 적은 없다. 전술배치도 한반도가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주한미군들은 전술용 ‘중성자탄’ 사격연습까지 했다. 지금 군남홍수조절지가 있는 임진강 옆 능선에서 숙영하며 박격포 집체교육을 받을 때였다. 우리 머리 위 100미터 이상 상공에서 포탄이 계속 터졌다. 비행기를 향해 쏘는 고사포가 아니었다. 10km 이상 떨어진 왕림리나 동이리에서 쏘는 곡사포탄이 정확하게 삼각망을 형성하며 공중에서 폭발했다. 150미터 상공에서 중성자탄이 터지면 지상은 물론 지하 100미터까지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다.
방사선은 수십만에서 수백만볼트
인간이 방사선을 처음 발견한 것은 1895년이다. 독일의 뢴트겐이 음극선관이라는 실험장치를 사용하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한 광선을 발견했다. 그는 그것을 ‘X선’이라고 불렀다. 1896년에는 프랑스의 베크렐이 자연 우라늄 광석에서 이런 광선이 나온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이름을 따서 방사능 수치의 단위를 ‘베크렐’로 부른다.
1898년 퀴리부부가 우라늄 광석에서 라듐과 폴로늄을 분리했다. 이들은 그 물질이 방사능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방사성물질’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때까지 학자들은 방사능이 얼마나 무서운 물질인지 몰랐다. 퀴리부부는 맨손으로 창고에 쌓아둔 우라늄 광석을 분류하고 온갖 실험을 했다.
아주 작은 양이라도 방사선에 피폭되면 치명적인 장해를 입는다. 사람의 DNA 분자결합은 불과 몇볼트 정도인데 방사선 에너지는 수십만에서 수백만볼트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런 물질에 인체가 노출되면 DNA를 포함한 많은 분자결합이 잘려버린다. 남편인 피에르 퀴리는 몸이 망가져 비틀거리다 마차에 깔려 죽었다. 부인 마리 퀴리도 백혈병으로 죽었다.
“독일보다 먼저 원자탄 만들어야 한다”
우라늄 핵분열반응이 발견된 것은 1938년 말이다. 그 반응은 다이너마이트처럼 일반적인 화학반응이 아니었다. 핵분열은 ‘자릿수가 다른’ 엄청난 에너지였다. 우라늄이 중성자와 결합하면 핵분열이 일어난다. 이때 1개의 중성자를 흡수해서 핵분열이 일어나면 2개 또는 3개의 중성자가 튀어나온다. 처음 1개의 중성자만 공급하면 다음부터 반응은 자체적으로 일어나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된다.
이 반응을 무기로 이용하면 초고성능 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금방 알려졌다. 나치독일과 일본도 원자탄 연구를 시작했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아이슈타인을 비롯한 물리학자들은 루즈벨트에게 독일보다 먼저 원자탄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미국의 원자탄 제조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맨하튼계획’에는 20억달러의 자금이 투입됐다. 당시 일본 국가총예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히로시마 원폭은 TNT 1만6000톤, 나가사키 원폭은 2만1000톤 규모였다. 2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표현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피폭자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다 죽었다.
신규 원전 포함한 전력수급계획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에서 연소된 우라늄의 양은 800g이다. 오늘날 표준이 된 1기가와트(GW.100만kW)급 원전의 경우 1년 동안 1톤의 우라늄을 태운다. 히로시마 원폭의 1000배에 이르는 양이다. 당연히 그만큼 더 많은 ‘죽음의 재’, 방사성 폐기물이 발생한다. 방사성 폐기물에는 다량의 방사능이 포함된다. 대표적 핵분열 생성물인 ‘세슘-137’의 반감기는 30년이다. 1/1000로 줄어드는 데 300년이 걸린다. ‘플루토늄-239’의 반감기는 2만4000년이다. 1/1000로 감소하려면 24만년이 지나야 한다. 사용후핵연료는 무려 100만년 동안 안전하게 격리해서 관리해야 한다. 100만년은 인류 자체가 존재할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알 수 없는 기간이다.
27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총 2.8기가와트(GW) 규모의 신규 원전 2기와 한국형 SMR 1기를 2037~2038년에 도입한다는 내용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을 발표했다.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이 전기본에 포함된 것은 2015년 7차 이후 10년 만이다. 2차례 정책토론회와 여론 조사를 반영한 결과다. 에너지 정책은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하지만 기존에 계획된 신규 원전은 건설해 인공지능(AI) 확산 등 늘어날 전력 수요에 대비한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원자력발전은 최첨단 과학적 방식으로 전기를 만드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원전의 원리는 일반 화력발전과 다르지 않다. 물을 끓여서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일반 화력발전에 비해 증기온도가 낮아 에너지 효율도 33% 정도로 낮다. 끓인 물의 2/3를 바다에 온배수로 배출한다.
가압경수로(PWR, Pressurized Water Reactor)의 증기 온도는 섭씨 270~290도이고 운전압력은 약 6.8MPa(메가파스칼) 정도다. 비등경수로(BWR, Boiling Water Reactor)는 약 285도, 운전압력은 약 7MPa이다. 개발중인 차세대 고온 원자로(HTGR, High Temperature Gas-cooled Reactor)는 증기 또는 가스 온도가 750~950도 이상이고 높은 열효율을 목표로 하지만 2050년 이후 도입될 예정이다. 반면 최근의 화력발전소들은 섭씨 500도가 넘는 고온의 증기를 이용해 발전 열효율이 50%가 넘는다. 화력발전소를 도시에 지어 열병합발전을 병행하면 에너지 효율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원전은 사고 위험 때문에 도시에 지을 수 없다는 점에서도 화력발전에 비해 효용성이 낮다. 우리나라 보령석탄화력의 경우 이산화탄소 포집시설을 운영하는데 포집률이 90% 정도 된다.
석탄발전보다 더 치명적인 원자력발전
원자력발전은 미래세대에게 공정하지 않다. 핵분열로 생산한 전기는 우리 세대가 쓰고 수만년 이상 위험을 관리할 책임과 비용은 미래세대에 떠넘기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이 녹색분류체계를 논의하면서 핵발전을 재생에너지와 엄격히 구분한 이유다. ‘유의미한 피해 차단 원칙’이다. 핵발전은 화력발전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은 적을 수 있지만 이산화탄소보다 인류와 지구 생태계에 훨씬 유해한 방사성 폐기물을 내놓는다. 인간을 제외하면 지구에서 불을 쓰는 생명체는 아무도 없다. 인류가 오늘날처럼 에너지를 펑펑 쓰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말 산업혁명 때부터다. 지구 역사 46억년을 1년으로 환산하면 산업혁명은 12월 31일 밤 11시 59분 59초에 일어났다. 그때부터 200년밖에 안 지났다. 그 마지막 1초 동안 사용한 에너지가 인류가 수백만년 동안 사용한 에너지의 60%가 넘는다.
인류 사이에도 에너지 과소비국과 에너지 부족국 사이에는 1000배의 격차가 있다. 선진국에 사는 16억명이 전체 에너지의 68%를 소비한다. 개발도상국의 16억명은 17%를 쓰고 세계 인구 절반을 차지하는 제3세계 사람들은 15%를 쓴다. 제3세계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부유한 절반의 나라들이 10%를 쓰고 가장 가난한 나라들은 겨우 5%를 쓴다.
명 호 생태지평연구소장은 “환경부 김성환 장관은 광장의 역동적인 생태 전환 에너지를 관료주의적 행정 편의와 정치적 셈법으로 파탄내고 있다”며 “에너지 안보와 반도체산업을 빌미로 핵발전을 추가로 용인하는 것은 안면도에서부터 삼척에 이르기까지 탈핵을 위한 시민사회의 피땀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단어로 지우는 행위”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