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경제재앙 ‘녹색 백조’ 막아라

2026-02-09 00:00:00 게재

북반구엔 폭설, 남반구에 폭염… 세계경제 천문학적 손실

일찍이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불과 얼음’이라는 시에서 “어떤 이는 세상이 불로 끝날 거라 말하고, 어떤 이는 얼음으로 끝날 거라 말하지”라고 읊었다. 시인의 예지력은 놀랍다. 프로스트가 자신의 생전에 닥치지도 않았던 기후재앙을 예견이라도 한 걸까? 최근 세계 곳곳의 폭염과 산불, 폭설, 혹한 등을 보노라면 지구의 종말이 ‘불’ 혹은 ‘얼음’일 것이라는 걱정을 하게 된다. 올 겨울 북반구는 꽁꽁 얼어붙고, 남반구는 뜨겁게 타고 있다. 가장 추웠던 러시아 톤굴라흐 지역의 최저 기온이 영하 54.8도까지 곤두박질쳤다. 반면 호주 남부의 안다무카와 포트 어거스타의 최고 기온은 영상 50도까지 치솟았다.

“눈폭풍 닥친 미국은 아이스마겟돈”

북반구의 경우, 미국과 유럽과 일본 등이 영화 ‘투머로우’(롤랜드 에머리히 감독)를 떠올리게 할 만큼 눈폭풍과 빙우와 한파로 뒤덮였다. 미국 20여 개 주에 비상사태가 선포됐고, 하루에만 만 편 넘는 항공편이 결항됐고, 100만 가구 이상이 정전됐다. 유럽 10여 개국에는 폭설과 빙우, 돌풍이 덮쳤다. 최근 2주 동안 일본 북부에도 폭설이 몰아쳤다. 신호등을 덮을 정도의 기록적인 폭설로 30여명이 숨지고 교통과 물류가 마비됐다.

남반구의 경우, 호주와 칠레와 아르헨티나 등지에 폭염과 산불이 이어졌다.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북부의 안다무카 마을은 지난달 30일 영상 50도까지 치솟았다. 빅토리아주에서는 2019~2020년 ‘블랙 서머’ 산불 이후 최악의 산불이 발생했다. 40만헥타르(서울시 면적 6배 이상)가 잿더미로 변했다. 지난달 중순 칠레에서는 20여 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파타고니아에서도 대형 산불이 발생해 3000헥타르(여의도 3.5배) 규모의 숲이 소실됐다.

세상의 종말은 ‘불’로 올까, ‘얼음’으로 올까? 뉴욕타임스(NYT) 객원 칼럼니스트인 마거릿 렌클은 프로스트의 시를 인용하면서 “세상의 종말은 기후변화를 고려하더라도, 얼음 쪽이 될 것 같다”는 글을 썼다.

렌클은 지난 2일(현지시간) NYT에 기고한 칼럼에서 최근 눈폭풍과 혹한이 덮친 미국 남부의 모습을 ‘아이스마겟돈(Icemageddon)’으로 표현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내슈빌이 눈과 얼음으로 파괴된 모습을 인류 종말의 장인 ‘아마겟돈’에 비유한 것이었다. 렌클은 "세상이 끝나는 듯한 빙우 (氷雨)가 내렸다”면서 그 공포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겨울 폭풍은 눈과 싸락눈, 빙우, 어는 안개 등 여러 형태로 닥친다. 그 중에서, 빙우가 단연 최악이다. 빙우는 닿는 모든 표면을 얼음으로 뒤덮었다. 얼음덩어리에 덮인 전선이 중력에 이끌려 땅으로 떨어졌다. 무거운 얼음은 자동차와 집을 부쉈다. 얼음은 거대한 참나무를 쓰러뜨렸다. 얼음을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들이 부러지면서 쾅쾅쾅 총을 쏘는 소리를 냈다.”

“기온상승으로 매분마다 한 명씩 사망”

세상의 위기를 ‘불’로 보는 이들도 있다. 영국 런던대학의 마리나 로마넬로 박사는 “지구 기온상승으로 전 세계에서 매 분마다 한 명씩 죽어가고 있다”면서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응을 촉구했다.

로마넬로 박사는 자신이 주도한 ‘2025년 랜싯 카운트다운: 기후변화와 건강 보고서’를 통해 “화석연료에 대한 인류의 중독이 독성 대기오염, 산불, 댕기열과 같은 질병을 확산시키고 있다”면서 “기후변화에 늑장 대처하는 대가로 매년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2~2021년 사이 연평균 폭염 사망자는 54만6000명에 달했다. 이는 1990년대 대비 23% 늘어난 수치다. 화석연료 연소는 지구를 데우는 것뿐 아니라 대기오염을 일으켜 매년 수백만 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다. 점점 더 뜨겁고 건조해진 환경에서 산불이 급증하고 있다. 2024년 한해 동안에만 15만4000명이 산불 연기로 숨진 것으로 기록됐다.

‘얼음’과 ‘불’은 천문학적 규모의 경제 손실을 초래한다. 먼저 북반구를 덮친 ‘얼음’의 청구서를 보자.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겨울 폭풍으로 인한 민간 보험 손실액이 약 67억달러(약 9조83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3일 로이터통신은 재난 위험 모델링 업체인 ‘캐런 클라크 앤드 컴퍼니(KCC) 자료를 인용해 “이번 대형 겨울 폭풍은 1월 중 미국 동부와 남부 일부 지역을 휩쓸며 대규모 정전과 극히 위험한 도로 상황, 항공편 운항 차질 등을 유발했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이번 겨울 폭풍으로 인한 피해와 보험 손실은 30개가 넘는 주에서 발생했으며, 텍사스와 테네시주가 가장 큰 손실을 입었다. 남반구를 태운 ‘불’의 청구서 또한 천문학적이다. ‘2025 랜싯 카운트다운’ 보고서에 따르면 폭염으로 인한 전 세계 노동 손실은 2024년 한해 동안 총 6390억 시간에 달했다. 최빈국의 경우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6% 손실로 이어졌다.

지난해 유럽연합(EU)의 폭염·가뭄·홍수로 인한 경제 손실은 430억유로(약 74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9월 르몽드는 “자연재해가 초래하는 경제적 충격은 재난이 끝나는 시점에서 종료되지 않는다”면서 “2025년 여름의 극단적 고온이 초래한 비용은 2029년까지 최대 1260억유로(약 218조원)에 이를 것”이라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호주와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산불은 수백만 헥타르의 대지를 잿더미로 만들며 농축산업 기반을 초토화시켰다. 호주는 이번 산불과 폭염으로 인해 관광 및 농업 분야에서만 수조 원대의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녹색 백조(Green Swan)’의 출현을 경고한다. 녹색 백조란 기후 변화가 초래할 경제·금융 위기를 뜻한다. 국제결제은행(BIS)은 2020년 1월 ‘녹색 백조: 기후변화 시대의 중앙은행과 금융안정’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는 글로벌 사회경제와 금융 커버넌스 시스템에 대한 전례 없는 도전”이라며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금융위기를 ‘녹색 백조’로 명명했다. BIS 보고서는 “기후변화는 물리적·사회적·경제적 현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면서 “녹색 백조의 위험’이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녹색 백조라는 개념은 지난 2007년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제시한 검은 백조(black swan)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검은 백조는 첫째, 예상 밖의 일이자 드문 사건으로, 통상적인 기대의 범위를 벗어나고, 둘째, 그 영향이 광범위하거나 극단적이고, 셋째, 사후적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검은 백조는 테러 공격에서부터 파괴적 기술 혁신, 자연재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인류의 존속 자체에 대한 위협”

그렇다면 녹색 백조란 뭘까? 보고서는 “녹색 백조는 검은 백조의 여러 특성을 공유한다”라면서도 “그러나 녹색 백조는 세 가지 점에서 검은 백조와는 다르다”고 밝혔다. 녹색 백조가 검은 백조와 다른 점은 뭘까. “첫째, 장차 현실화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높은 수준의 확실성이 존재한다. 둘째, 기후 재앙은 대부분의 시스템적 금융위기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인류의 존속 자체에 대한 존재론적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셋째, 기후변화와 관련된 복잡성은 검은 백조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에 있다. 녹색 백조는 근본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환경적·지정학적·사회적·경제적 역학을 만들어낼 수 있다.”

녹색 백조는 검은 백조와는 차원이 다른 위협이다. BIS 보고서가 지적한 대로 녹색 백조는 “인류의 존속 자체에 대한 존재론적 위협”이다. 녹색 백조를 막지 못하면 세상은 ‘불’ 혹은 ‘얼음’으로 종말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올해 북반구의 한파와 남반구 열파를 가늠해 보건대, 세상의 종말은 ‘불’이냐 ‘얼음’이냐 선택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불’과 ‘얼음’이 동시에 닥치고 있다. 프로스트는 ‘불과 얼음’의 후반부에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욕망을 맛본 나는 불을 택한 사람들 편에 섰다./하지만 만일 세상이 두 번 망해야 한다면/이미 증오에 대해 알고 있는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얼음도 불 못지않아 충분히 세상을 파멸시킬 것이라고.”

프로스트가 노래한 대로 세상은 ‘불’과 ‘얼음’으로 두 번 망할 지도 모른다. ‘불’과 ‘얼음’을 앞세운 녹색 백조가 오고 있다. 녹색 백조를 막기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일본 아오모리현 아오모리시 신아오모리역에서 1월 30일(현지 시각) 폭설로 지역 열차 운행이 중단된 가운데 직원들이 눈 덮인 선로의 눈을 치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박상주 칼럼니스트 지구촌 순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