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환의 동남아 산책

미얀마, 내전의 끝이 보인다

2026-02-13 13:00:00 게재

지난 2월 1일은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통해 재집권한 지 만 5년이 되는 날이었다. 쿠데타 기념식을 거행할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그들만의 잔치’가 분명했던, 한달 반에 걸쳐 세차례에 나눠 치른 희한한 총선에 역사적 의미를 갖다 붙이는 프로파간다 방송을 개시했다. 이 선거를 국내 반대세력은 물론이고 국제사회 단체들도 나서 “가장(쇼) 선거”로 규정하며 한 목소리로 비판한 것은 물론이다.

실패할 게 뻔한 선거를 강행하는 까닭

미얀마 현대사 80년을 통째로 농간한 닳아 빠진 군부가 실패할 게 뻔히 예견된 선거를 굳이 강행한 속셈은 따로 있을 것이다. 5년 동안 반군부 시민무장세력인 국민방위군(PDF)과 치르고 있는 내전 전황이 갈수록 불리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정당성 위기, 군사력 과부하, 경제붕괴 위협험, 국제적 압력, 행정기능 마비 등 이른바 “복합적 위기”에 당면한 군사정권으로서는 잠시나마 시간을 벌 수 있는 술책과 위기로부터 외부 시선을 돌려 줄 엄폐물로 선거를 택하지 않았을까?

1962년 네윈의 쿠데타 이후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던 군사정권은 아무리 심각한 위기에도 꿈쩍하지 않고 무려 반세기를 버텼다. 루디야드 키플링, 서머셋 모옴, 조지 오웰과 같은 대문호들이 그 자연, 문화유산, 인간성, 신앙심에 대한 최상의 찬사를 보냈던 버마. 그러나 현대에 들어 시대착오적이고, 무지하고, 잔혹한 군부 탓에 군사독재국가, 불량국가, 최빈국, 경제제재대상국으로 낙인 찍힌 오늘의 미얀마로 전락했다.

대륙부 불교국가들 중에 국민들의 신앙심이 가장 강한 나라는 바로 이 나라 미얀마다. 하루에 세번 선행을 베풀어야 극락을 간다고 굳게 믿고 실천하는 사람들, 불교 계율을 가장 성실하게 지키는 신도들, 못살아도 파고다에 금박지를 사다 입히는 순박한 사람들, 다른 동남아인들보다도 더 친절하고, 더 점잖고,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들이었기에 이렇게 끝없고 혹독한 군사독재를 참고 견디나 보다.

네윈과 군사정부는 이런 풍요로운 나라의 평화로운 국민들을 수십년 동안 울타리안에 가둬 놓은 셈인데, 그 목적은 불교사회주의 이념이나 자력갱생 모델을 실현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사실은 군사독재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 말 어느 정신 나간 이른바 진보 경제학자는 우리나라도 미얀마를 본떠서 외국자본을 배척하고 농업에 기반한 자주자립경제를 건설하자고 어린 대학생들을 호도했다. 만약 그 길로 갔다면 우리는 미얀마보다 못사는 최빈국이 되었을 것이다. 미얀마는 그 때도 삼기작 쌀농사를 지었다. 이 학자도 국민을 잘 살게 하는 경제체제나 발전모델을 제시하겠다는 뜻보다 박정희 독재체제 타도라는 정치적인 의도가 더 앞섰을 것이다.

수십년을 꾹 참고 견디던 미얀마인들이 처음으로 폭발한 것은 1988년 8월, 이른바 8888 항쟁이었다. 학생들이 주도하고 승려, 시민들이 참여한 대규모시위는 군의 무차별 발포로 수천명이 생명을 잃는 참극으로 귀결되었지만, 2년 뒤 모든 정당들이 참여하는 총선을 실시하게 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이 총선에서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민주주주의 민족동맹(NLD)이 압승하자 군부는 선거를 없었던 일로 하고 군사독재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20년이 지난 2007년에는 승려들이 주도한 이른바 샤프란혁명이 국제적 주목을 받아 미얀마 군사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고조되고, 그 결과 경제제제와 봉쇄조치도 한층 강화됐다. 2008년에는 신헌법을 제정하고 2010년 총선을 실시하여 친군부민간정부를 출범시키고 아웅산 수찌를 석방했다. 의미 있는 변화는 2015년 총선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NLD이 압승을 거두어 드디어 순수한 민간정부를 구성했다.

군부가 입안한 헌법에 의해 수찌여사는 대통령에 출마할 수 없었다. 그리고 NLD는 집권에 성공하여 군부의 견제와 간섭을 받으면서도 6년간 민간정부를 이끌 수 있었다. 제한적이었지만 민주주의를 향유한 6년이었다.

타협에 의한 점진적 민주화 실패로 끝나

정치학자들이 말하는 타협에 의한 점진적 민주화는 중남미나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군부가 안전을 보장받고 일정한 유예기간을 보낸 뒤 정치로부터 완전히 손을 떼면서 완성되는 대표적인 민주화 유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미얀마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반대로, 2020년 총선에서 NLD가 다시 압승을 거두자 이듬해 2월 1일 무력으로 권력을 빼앗고 선거를 무효화했다.

이행 실패의 비극이 무려 30년이 지나 반복된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의 대응도 이번에는 달랐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 대한 신앙심이 깊은 미얀마인들이 무기를 든 것이다. 원래 비폭력적인 시민불복종운동(CDM)으로 시작된 항쟁은 군인들의 학살과 과잉진압이 계속되자 2021년 4월과 5월에 각각 망명정부와 시민군을 창설하며 무장투쟁의 길로 들어선다. 대학생을 필두로 한 젊은이들, 탈영한 병사들, 공무원과 교사들은 국경지대와 지하로 숨어들어 시민방위군(PDF)의 주축이 되었다.

2022년부터 미얀마의 정치적 위기는 내전이라는 무력갈등으로 변화했고, 불과 2년여 만에 PDF반군은 미얀마 정부군을 수세로 몰기 시작했다. 주변부 국경지대에서 소수민족 무장세력의 훈련과 지원으로 출범한 PDF는 2026년 2월 현재 10만명의 병력과 3개의 지역사령부를 가진 정규군의 모습을 갖추고 국경 산악지대 뿐만 아니라 사가잉과 마웨와 같은 버마족 거주지역인 중부 미얀마에 전선들을 구축함으로써 전쟁에서 당당한 한 축이 되었다.

반군의 성장과 성공은 게릴라전 등 실용적인 전술에 의존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미얀마 군부와 싸우는 다른 소수민족 부대들과 수평적인 동맹을 맺고, 내부적으로는 명령체계를 확립하는 체계를 갖춰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10월 27일, 3개 소수민족 부대가 북부샨족자치주에서 정부군을 공격하는 전투로시작된 합동작전, 즉 작전 1027은 엄청난 전과를 올렸다. 이듬해 8월 라시오 소재 동북지역사령부를 점령하는데 성공하고, 아라칸군은 여카잉주를 완전히 손에 넣었다. 조급해진 미얀마 군부는 18~35세 남성들에게 전원 징집명령을 내렸는데, 이 조치는 젊은이들이 대규모로 태국과 반군 지역으로 도망가는 역효과를 낳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얀마와 중국과 인디아를 포함한 주변국가와 연결되는 국경지역 교역로를 반군들에게 빼앗긴 것인데, 이는 주변국가들, 특히 중국의 무기 및 전쟁물자 공급에 크게 의족하고 있는 미얀마 군부에게는 심각한 타격이 될 수 있다.

2026년 2월 현재 미얀마 군사정부가 장악하고 있는 지역은 수도 네피도, 최대 도시 양곤, 제2도시 만델레이 등 저지대에 위치한 대도시지역뿐이다. 인구밀집지이긴해도 전국토의 20-25%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시민방위군과 소수민족 군대는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전국 40-50%를 장악하고 있다. 군부가 통제하는 지역은 작아지고 있는 반면 반군들이 장악한 지역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국민방위군은 민간인 피해를 고려하여 대도시지역 공격을 자제하고 있었으나, 최근 군부지도부와 군사시설 타격을 목표로 한 도시지역 침투도 시작되었다고 한다.

어느 한 쪽 군사적 승리가 내전 끝낼 전망

지금까지 미얀마 분쟁과 내전을 평화적으로 종식시켜 보려는 중재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미얀마 군부는 다른 나라, 국제기구, NGO의 말을 듣지 않기로 악명이 높다. 반면 대안정부라고 할 수 있는 국민단합정부(NUG)는 국제연합에서 대표성을 인정 받고 있는 것을 비롯하여 지지 기반을 조금씩 넓여가고 있다. 미얀마사태는 결국 내전에서 어느 한 쪽이 군사적 승리를 거둬야만 끝날 것으로 보는 현실주의 시각이 지배적이다.

서강대 명예교수 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