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분쟁 장기화에 ‘인화’ 시험대 오른 LG

2026-02-13 13:00:00 게재

법원 “2018년 상속협의 유효” 판단 … 구광모 체제 1차 안정

세 모녀, 항소 방침 … 재계 “법적 판단 넘어 관계 회복 필요”

창업 이래 ‘인화’를 핵심 가치로 내세워 온 LG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선친 고 구본무 전 회장의 상속 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 분쟁 1심에서 승소했지만 세 모녀가 항소 방침을 밝히면서 갈등이 2심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재계에서는 법적 판단을 넘어 관계 회복이 뒤따라야 지배구조 안정과 경영 집중이 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합의11부(구광현 부장판사)는 11일 구 전 회장의 배우자 김영식씨와 두 딸이 제기한 상속회복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2018년 체결된 상속재산분할협의서가 적법하게 성립했고 협의 과정에서 기망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제척기간 도과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 전 회장은 지주회사인 LG 지분 11.28%를 비롯해 약 2조원 규모의 유산을 남겼다. 구 회장은 이 가운데 LG 지분 8.76%를 상속받았고 세 모녀는 LG 지분 일부(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2.01%·구연수씨 0.51%)와 금융투자상품·부동산 등 약 5000억원 규모의 재산을 상속받았다. 이번 판결로 현 지분 구조는 유지됐다.

판결 직후 세 모녀측은 소송대리인을 통해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재무관리팀 등 이해관계자의 일방적 증언에 의존한 판단이라며 상속권 침해의 본질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기망의 실체를 밝히고 고인의 진정한 유지를 확인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반면 구 회장측 대리인인 법무법인 율촌은 상속재산 분할 협의가 당사자들의 진정한 의사에 따라 이뤄졌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법조계는 항소가 현실화될 경우 제척기간 판단과 기망 여부가 2심의 핵심 쟁점으로 재부상할 가능성을 점친다. 1심이 제척기간 도과를 인정하지 않은 만큼 상속회복청구권의 기산점과 ‘상속권 침해를 안 날’의 해석을 둘러싼 법리 다툼이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소식에 재계는 지배구조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됐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갈등 장기화를 우려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총수 일가 분쟁이 계속되면 의사결정 속도가 떨어지고 투자 판단이 지연 등 간접적 경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법적 판단이 아니라 신뢰 회복이 이뤄질 때 비로소 안정이 완성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화해는 권리를 포기하는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장기적 안정을 선택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재계는 장기 소송이 그룹의 전략 실행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LG가 인공지능·배터리·전장 등 미래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지배구조 안정은 필수 조건이라는 것이다. 법적 분쟁이 지속될 경우 외부 주주와 시장의 불확실성 인식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속 분쟁과 별도로 진행 중인 파양 소송도 변수다. 법조계에 따르면 파양은 일방의 의사만으로 성립하기 어렵고 당사자 간 합의 또는 법원의 판단이 필요하다. 가족 관계와 지배구조 문제가 동시에 얽혀 있는 만큼 근본적 봉합을 위해서는 법적 절차를 넘어선 대화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LG는 장자 승계 이후 계열 분리를 통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전통을 유지해 왔다. 형제 간 분쟁없이 세대를 이어온 사례로 평가받아 왔다는 점에서 이번 소송은 ‘인화’의 상징성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는 시각도 있다.

이번 판결로 절차적 정당성은 확인됐지만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재계는 법적 안정이 지배구조 안정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경영 집중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기업 경쟁력이 확보된다고 본다.

법적 판단은 내려졌다. 이제 남은 과제는 승패를 넘어 관계를 복원하고 ‘인화’의 전통을 회복하는 일이라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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