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구조가 청년 자산 격차 갈라
주택대출은 축적, 전세·학자금은 소멸
“자산형성 중심 금융정책 전환 필요”
#1. 서울 외곽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김 모씨는 학자금대출과 전세대출을 동시에 상환하고 있지만 자산은 늘지 않고 있다. 원리금 부담이 워낙 크다보니 저축 여력이 생기지 않는다. 주택 구입을 검토했지만 초기 자금 부족과 대출 한도 문제로 전세 재계약을 반복하고 있다.
#2. 수도권 대기업에 다니는 박 모씨는 사회 초기에 부모 지원을 받아 소형 아파트를 구입했다. 주택담보대출 상환 부담은 있지만 원금 상환과 집값 상승이 동시에 자산으로 쌓이고 있다.
부채 구조가 청년 자산 격차를 확대하는 요인으로 지목되면서 금융정책 전환 필요성이 제기됐다. 단순한 대출 확대가 아니라 자산 형성으로 이어지는 금융을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0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산 격차 요인 분석과 정책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부채는 성격에 따라 자산 축적 효과가 달랐다. 주택 구입 대출은 자산을 늘리는 경로로 작동했지만 전세대출과 학자금대출은 상환 부담만 남겼다. 같은 규모의 빚이라도 자산 사다리가 되거나 생활비용으로 소멸하는 구조가 확인됐다. 전세보증금이 자산으로 평가되지 않는 금융 구조와 학자금 상환 방식이 장기 저축 여력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계층별 차이도 뚜렷했다. 소득 대비 부채가 증가할 경우 자산 중하위층에서는 자산 증가 효과가 나타났지만 최상위층에서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중하위층은 부채를 활용해 자산을 늘린 반면 상위층은 부채 없이 자산을 축적했다. 금융 접근성과 담보 보유 여부, 금리 조건 차이가 자산 형성 속도를 가른 셈이다. 동일한 신용등급이 아니면 장기·저금리 대출에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도 격차 확대 요인으로 지목됐다.
자산 형성은 생애주기 구조를 보였다. 청년기에는 초기 자산과 부채 성격에 따라 출발선이 갈렸고 중장년기에는 부동산 보유 여부에 따라 격차가 확대됐다. 주택시장 진입 시점이 늦어질수록 자산 이동 가능성이 낮아지는 경로 의존성이 나타났다. 저축만으로는 자산 상향 이동이 어려운 구조에서 주택 취득이 사실상 유일한 상승 경로로 작동했다. 이는 금융정책이 주거비 부담 완화와 자산 취득 경로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노동시장 지위도 금융 접근성과 연결됐다. 상용직과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자산 상위층에 많았고 임시·일용직은 하위층에 집중됐다. 소득 안정성이 낮을수록 장기 대출 이용이 어려워 자산 취득 기회가 제한됐다. 주거비 비중이 높은 구조는 소비를 제외한 가처분소득을 줄여 장기 저축을 제약했다. 이는 고용 구조와 금융 구조가 결합해 자산 격차를 확대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속·증여 역시 전 자산 분위에서 자산 상승 변수로 나타났다. 가족 배경에 따른 초기 자산 격차가 세대 간 이전되는 구조가 확인됐다. 한부모 가구와 장애인 가구는 자산 하위 분위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자산 격차가 생애 위험과 결합해 고착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금융정책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구조적 요인과 복지정책 연계 필요성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금융정책을 ‘자산 형성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주거비 부담 완화와 초기 자산 형성 지원을 결합한 금융, 장기 저축과 주택 취득을 연계한 상품, 상환 부담이 자산으로 전환되는 구조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세대출을 주택 취득 금융으로 연결하거나 상환액 일부를 자산으로 적립하는 방식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단순한 대출 총량 관리만으로는 격차 완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금융 지원과 자산 형성 프로그램 확대를 제안했다. 담보가 부족한 계층도 자산 취득 경로에 진입할 수 있도록 공적 보증과 금리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교육과 장기 저축 유도 정책을 결합해 초기 자산 형성 기간을 앞당길 필요성도 제시됐다.
결국 문제는 빚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구조라는 지적이다. 상환이 비용으로 소멸되는 부채와 자산으로 전환되는 부채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금융정책 역시 자산 격차의 관점에서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부채의 용도와 자산 전환 가능성을 기준으로 정책 수단을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