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AI 전력전쟁과 에너지 안보
인류 역사에서 2022년 11월은 단순한 기술 진보를 넘어 시대의 질서를 바꾼 상징적 순간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오픈AI의 ‘챗GPT’가 공개되면서 우리는 정보화 시대를 넘어 ‘AI 전력 시대’로 진입했다. 이제 전력은 공장과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연산을 통해 가치를 만드는 ‘디지털 산업’이 전력을 가장 빠르게 빨아들이는 새로운 수요 중심으로 떠올랐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2년 약 460TWh로 추정한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26년에는 1000TWh를 넘어설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는 일본의 연간 전력 소비 규모에 맞먹는다. 불과 몇 년 사이 전세계 전력 지형을 흔드는 ‘새로운 산업’이 등장한 것이다.
데이터센터의 비중은 아직 세계 전력 소비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증가 속도는 무섭다. IEA는 데이터센터가 2024년 기준으로 세계 전력 소비의 약 1.5% 수준에 이르렀다고 추정한다. 문제는 이 수요가 특정 지역에 집중되며 전력망의 여유를 급격히 소진시킨다는 점이다. 아일랜드에서는 2023년 데이터센터가 ‘계량 전력’의 21%를 사용한 것으로 집계돼 전력망·입지·전력요금 논쟁의 중심이 됐다.
공격적 에너지 믹스에 CCUS 결합
이에 대응해 글로벌 빅테크는 ‘그리드(Grid) 확충’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결론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흥미로운 사례는 스페이스X가 ‘태양광 기반 궤도형 데이터센터(위성망)’ 구상과 관련해 미 연방통신위원회(FCC) 승인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다. 지상처럼 밤과 구름, 계절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는 우주에서 전력을 확보하고 대규모 전력 송전 대신 ‘연산 결과(데이터)’만 지구로 보내겠다는 발상이다.
또 하나의 흐름은 ‘원전의 재평가’다. 빅테크가 중단 원전의 재가동을 뒷받침하는 장기 전력구매계약까지 맺는 이유는 단순하다. 전력 없이는 AI도 반도체도 클라우드도 멈추기 때문이다. 전력은 더 이상 산업의 뒷받침이 아니라 산업의 ‘전제조건’이 되었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더욱 절박하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은 2038년 목표 수요를 129.3GW로 전망한다. 동시에 추가 수요 16.7GW를 반영했는데, 그 구성은 첨단산업 1.4GW(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데이터센터 4.4GW, 전기화 11.0GW다. 특히 데이터센터의 경우 2038년 전력 수요를 총 6.2GW로 보면서 AI 확산이 가져올 수요 급증을 명시적으로 반영했다.
영토가 협소하고 에너지원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가 이 거대하고 지속적인 수요를 감당하려면 ‘에너지 믹스’의 최적화 외에는 답이 없다. 원자력, 재생에너지, LNG 등 화석연료, 그리고 수요관리·저장·계통 투자까지를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묶어 공급의 안정성·경제성·환경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AI 시대에 특정 전원에만 기대는 것은 국가적 도박에 가깝다. 재생에너지는 기후에 따르는 간헐성을 흡수할 계통·저장·유연성 자원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을 때 문제가 된다. 원자력은 안정적인 기저 전원을 제공하지만, 수요 변동에 대한 즉각적 추종과 입지·수용성 이슈를 함께 풀어야 한다. 결국 해법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극대화하는 ‘공격적이고 입체적인 에너지 믹스’에 있다. ‘원전 대 재생’의 정쟁 구도는 AI 전력 전쟁 앞에서 더 이상 생산적이지 않다.
여기에 반드시 결합돼야 할 기술이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이다. 전력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탄소중립을 동시에 달성하려면 화력발전의 질서 있는 감축과 함께 남는 배출을 제어할 기술적 수단이 필요하다. LNG 발전이 계통 유연성과 공급 안정에 기여하는 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CCUS는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 된다. AI용 전력을 공급하는 LNG 발전에 CCUS를 결합한다면 안정적 전력 공급과 배출 저감이라는 상충하는 과제를 동시에 완화할 수 있다.
특히 동해 고갈 저류층 등 잠재 저장 자원과 서해안 산업 클러스터를 연계한 대규모 저장 인프라는 에너지 믹스의 유연성을 키우고 글로벌 탄소 국경 장벽에 대한 방어력을 높이는 전략적 자산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는 지질 특성 평가, 인허가·안전 규제, CO₂ 수송망 구축, 장기 책임 체계라는 ‘국가 시스템’이 함께 갖추어져야 한다.
저탄소 고효율 전력 생태계 빨리 완성해야
이제 에너지 정책은 단순한 ‘자원 수급’이 아니라 ‘디지털 주권’과 ‘AI 주권’의 문제로 격상됐다. 빅테크가 우주를 바라보고, 원전과 장기계약을 검토하는 이유는 전력 없이는 미래 산업 자체가 멈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냉정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와 산업계도 관성적인 공급 대책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정쟁의 도구가 아니라 국가 안보를 위한 최적 조합으로 작동하도록 실용주의적 정책 결단력을 발휘해야 한다. 아울러 CCUS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제도적 뒷받침으로 ‘저탄소·고효율’ 전력 생태계를 조속히 완성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 없는 AI 강국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2026년 현재, 우리가 설계하는 에너지 믹스의 정교함이 10년 뒤 대한민국의 산업 경쟁력을 결정지을 것이다. 기술 혁신과 실용주의 에너지 정책이 결합될 때, 대한민국은 AI 전력 전쟁의 파고를 넘어 새로운 경제 도약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