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유출도 ‘안보 범죄’로 다룬다
국회, 간첩죄 73년 만에 손질 … 수사 기준·기업 보안체계 변화 불가피
간첩죄 적용 범위를 ‘적국’에서 ‘외국 및 이에 준하는 단체’로 넓히는 형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면서 기술 유출 사건의 법적 성격이 달라질 전망이다. 국가기밀과 첨단기술을 외국으로 넘긴 경우에도 간첩죄를 적용할 수 있게 되면 산업범죄로 처리되던 사건이 국가안보 사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진다. 정치권에서는 기술 안보 대응 강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평가와 함께 적용 범위 확대에 따른 과잉 수사 우려도 제기된다.
26일 국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신청한 필리버스터를 종결한 뒤 이날 개정안을 처리할 계획이다.
앞서 국회는 25일 본회의에서 간첩죄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법왜곡죄를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개정안이 공포되면 별도 유예기간 없이 시행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형벌 불소급 원칙에 따라 시행 이전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현행 형법은 ‘적국을 위한 간첩 행위’만 처벌 대상으로 규정해 북한과의 연계가 입증되지 않으면 간첩죄 적용이 어려웠다. 이 때문에 제3국으로의 기밀 유출이나 외국 기업으로의 기술 이전은 산업기술보호법이나 일반이적죄로 처리됐다. 산업기술보호법 법정형은 15년 이하 징역으로, 사형·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인 간첩죄보다 처벌 수위가 낮아 형량 격차가 크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외국 연계 입증이 핵심 쟁점 = 개정안은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의 지령이나 사주를 받아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한 경우를 간첩죄로 규정했다. ‘이에 준하는 단체’에는 외국 기업 등 조직이 포함될 수 있어 핵심 기술을 해외 기업에 넘긴 산업 스파이도 적용 대상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유출 대상이 적국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국가 핵심 기술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적국 요건 제한으로 간첩죄 적용이 어려웠던 사례도 이어졌다. 군사시설과 공항에서 전투기 사진을 촬영해 해외로 전송한 사건은 일반이적 혐의가 적용됐고, 반도체 공정 기술을 외국 기업에 넘긴 사건도 산업기술보호법으로 처벌됐다. 군사·기술 정보가 해외로 유출됐음에도 적국 연계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일반 범죄로 처리되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안보 범죄가 경제범죄 수준으로 처벌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수사 방식도 달라질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해외 기업으로 기술이 넘어가더라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이 주된 적용 법률이었다.
앞으로는 외국 기업이 대가를 제공하거나 조직적으로 기술 확보를 시도한 정황이 확인될 경우 간첩죄 적용이 가능해진다. 기술 유출 사건이 경제범죄를 넘어 안보 범죄로 분류될 수 있다는 의미다.
수사 실무에서는 외국측 지령이나 사주 여부 입증이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단순 이직 과정에서의 기술 활용과 고의적 유출을 구분해야 하고, 대가 지급 여부, 접촉 기록, 자료 전달 경로, 내부 반출 방식 등이 주요 판단 요소로 거론된다. 공동 연구나 학술 교류처럼 합법적 협력과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지도 수사 단계의 과제로 꼽힌다.
◆기업 보안체계 전면 점검 불가피 = 기업 내부 통제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연구자료 접근 권한 관리, 퇴직자 보안 점검, 해외 공동 연구 범위 설정, 기술 자료 반출 절차 강화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심 인력의 해외 이직 과정에서 보유 자료 관리와 비밀유지 의무 점검이 중요 관리 요소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의 경우 기술 관리 체계가 곧 형사 책임과 연결될 수 있어 내부 통제 기준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외국 기업과의 공동 연구 계약, 자료 공유 범위, 저장 매체 반출 절차 등을 문서화하지 않으면 수사 과정에서 고의성 판단의 쟁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과잉 수사 우려와 기준 마련 과제 = 적용 범위 확대에 따른 과잉 수사 우려도 제기된다. 기술 활용 범위와 고의성 판단 기준이 불명확할 경우 정상적인 연구·개발 활동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수사 기준과 적용 요건을 구체화한 세부 지침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간첩죄 조항은 6.25 전쟁 직후 제정돼 적국 개념에 머물러 있었다. 냉전 이후 국제 환경이 변화하고 기술 경쟁이 국가 안보와 직결되면서 법 체계를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졌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술 유출 사건의 법적 성격과 수사 방식, 기업 보안 체계까지 연쇄적으로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