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봉쇄, 중·러 불러들이는 자충수

2026-02-27 13:00:04 게재

트럼프 “올해로 쿠바혁명 끝” 압박… 멕시코서 막후 협상 움직임도

1962년 10월, 존 F. 케네디 미국대통령은 항공모함 8척과 90여척의 함선으로 쿠바를 봉쇄했다. 전군에 전쟁대비 태세인 데프콘3가 내려진 상태였다.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자국 선박에 미국의 봉쇄를 뚫고 쿠바로 진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핵잠수함 6척이 호위하는 선박에는 미사일과 핵무기 부품들이 실려 있었다.

당시 쿠바 미사일 위기는 미국과 소련이 서로 한발씩 물러서면서 극적으로 풀렸다. 양국은 쿠바의 소련 미사일과 튀르키예에 배치한 미국 미사일을 각각 철수시키기로 합의했다. 일촉즉발 제3차세계대전 위기를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2026년 2월, 쿠바는 64년 전 소련미사일 사태 못지 않은 위기를 맞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지난 8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SNS) 트루스소셜에 “쿠바로 들어가는 석유나 돈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제로!”라고 썼다.

쿠바 해안경비대 함정이 2026년 2월 25일 아바나 항에 정박해 있다. 쿠바 해안경비대는 같은 날 자국 해안 인근에서 미국 등록 고속정을 향한 교전 과정에서 4명을 사살하고 6명을 부상시켰다고 밝혔다. 미·쿠바 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벌어진 사건이다. AFP=연합뉴스

쿠바 경제의 목을 조르는 미국

미국이 쿠바 경제의 목을 조르고 있다. 1959년 혁명 이후 최악의 사회경제적 재앙에 직면하고 있다. 아르만도 로드리게스 바티스타 쿠바 과학·기술·환경부(CITMA) 장관은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해 12월까지 국가 수요의 1/3을 충당하던 베네수엘라산 석유 공급이 전면 중단됐다”면서 “완벽한 폭풍이 닥치고 있다”라고 밝혔다.

쿠바에 불고 있는 ‘완벽한 폭풍’은 어떤 모습일까? 자동차가 멈춰 서고 있다. 주유소에서 리터당 1.30달러인 휘발유를 사려면 대기 순번 수천명을 기다려야 한다. 암시장 휘발유는 리터당 최대 6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비행기가 뜨지 못하고 있다. 쿠바정부는 지난 8일 쿠바의 공항들이 더 이상 제트연료를 충분히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의 고지문을 발표했다. 캐나다와 러시아가 쿠바행 항공편 운항을 중단했다.

주민들의 일상이 마비되고 있다. 국영 제빵소는 가동을 멈추었다. 일부 병원에서는 휴대전화 불빛에 의지해 응급처치를 한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청소차의 운행 중단으로 쓰레기 대란이 일고 있다. 뎅기열과 치쿤구니아, 오로푸체 바이러스 등 감염병 발발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가 쿠바 공산주의 혁명의 마지막 해”가 될 것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는 생전에 “우리 목에 칼을 들이댄 상태에서는 협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느 쪽이 그 말을 지킬 수 있을까? 쿠바의 앞날에 대한 견해는 분분하다.

# 호락호락 무너지지 않을 것 - 쿠바 전문가인 윌리엄 M. 레오그란데 아메리칸대학 교수는 지난 5일 국제정치·외교 전문 매체인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칼럼 ‘트럼프와 쿠바 간 거래는 어떻게 전개될까’에서 미국 정부가 ‘쿠바판 로드리게스’를 찾는 일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쿠바 정권은 더 이상 피델이나 라울 카스트로 같은 특정 인물의 카리스마에 의존하지 않는다. 정부 관료와 공산당 조직, 그리고 군대 지도자들로 구성된 집단지도체제로 움직인다. 이러한 지도체제는 미국의 위협에 맞서 상당한 결속력을 보여왔다. 베네수엘라식 지도자 제거 전략은 쿠바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은 미 육군 특수부대 ‘델타포스’를 동원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미국으로 연행했다.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이 즉각 임시대통령에 취임했다. 군부는 로드리게스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마치 사전 각본에 따른 것처럼 일사불란했다.

서방언론들은 트럼프와 로드리게스 간 막후 거래가 있었을 지 모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로드리게스가 자신의 권력 승계와 군부 핵심 세력의 안전보장을 조건으로 마두로 대통령을 미국에 넘겼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그러나 쿠바는 공산당과 정부와 군대의 충성을 확보해야만 돌아가는 나라다. 레오그란데 교수는 “현재 쿠바에서 그런 인물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쿠바가 석유 봉쇄로 붕괴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학 산하 에너지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인 호르헤 R. 피뇬은 쿠바 자체적으로 총 연료 수요의 최대 40%까지는 충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피뇬은 “40% 또는 그 이하의 자급으로도 버틸 수 있다”면서 “쿠바의 완전한 마비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태양광에 대한 기대도 나오고 있다. 로드리게스 바티스타 장관은 페이스북에서 “쿠바의 생존이 뜻밖에도 하늘에서 오고 있다”고 썼다. 그는 “불과 12개월 만에 쿠바의 태양광 발전 용량은 4배 이상 증가했다”면서 “태양광은 국가 구조 작전”이라고 덧붙였다.

“쿠바는 이미 표류하는 난파선”

# 사회적 엔트로피가 상승할 것 - 1977년 퓰리처상 수상자인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조지 윌은 지난 20일 WP에 기고한 칼럼 ‘쿠바 붕괴 후 무엇이 올 것인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석유 봉쇄로 쿠바의 ‘사회적 엔트로피’가 상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엔트로피는 물체의 무질서 상태를 설명하는 열역학 개념이다. ‘사회적 엔트로피’의 상승이란 공동체가 점점 무질서해지고 통합력이 약해지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윌은 “쿠바의 보안 기관들이 국민들을 먼지처럼 흩어 놓았다”면서 “1980년대 폴란드 국민의 1/3이 가입했던 ‘연대노조(솔리다르노시치)’와 같은 자생적 민주주의의 잠재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폴란드 ‘연대노조’는 1980년대 폴란드 민주화 운동이 구심이었다.

마드리드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대표 후안 안토니오 블랑코는 “쿠바 사회는 방향타를 잃고 표류하는 난파선”이라고 말했다. 블랑코는 카스트로 사망 이후 쿠바가 공산주의 국가에서 마피아 국가로 전환했다고 주장한다.

# 중국과 러시아가 지켜만 보지 않을 것 - 지난 수백 년 동안 쿠바는 열강들의 각축장이었다. 1492년 컬럼부스의 미 대륙 발견과 함께 스페인은 쿠바를 선점했다. 1762년 영국은 쿠바를 차지하기 위해 스페인과 전쟁을 벌였다. 1898년 쿠바 독립운동을 지원하던 미국이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했다. 1902년 5월 쿠바는 독립을 했지만, 미국의 속국이나 다름없었다. 1959년 공산혁명 이후엔 미국과 소련이 대치하는 최전선으로 변했다.

오늘날 쿠바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전략적 요충이다. 미국은 자국 앞마당의 ‘사회주의 전초기지’를 함락시키려 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베네수엘라에 이어 쿠바마저 미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는 입장이다.

중국・러시아에 더 밀착 가능성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 ‘디펜스 프라이어리티스(Defense Priorities, DP)’의 다니엘 디페트리스(Daniel DePetris) 연구원은 지난달 23일 DP 홈페이지에 올린 보고서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줄이려면 쿠바를 적대시하는 정책부터 재고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미국이 쿠바를 고립시키려 할수록 쿠바는 자국의 안보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다른 강대국들과 협력하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냉전시기에 케네디 대통령의 경제봉쇄는 쿠바와 소련 관계를 오히려 밀착시켰다. 작은 나라가 더 강한 적에 맞서 동맹을 찾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쿠바가 중국이나 러시아와 공식적인 동맹관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지만 그 원칙은 여전히 적용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쿠바 경제 봉쇄는 또 다른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이런 제반 상황을 고려한다면 1962년 미사일 위기 때처럼 협상을 통한 극적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도 있다. 라울 카스트로 전 대통령의 아들 알레한드로 카스트로 에스핀 장군이 최근 멕시코에서 미국 관리들과 비밀 접촉을 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카스트로 에스핀 장군은 지난 2014년 버락 오마바 대통령 당시 백악관 고위급 보좌진과의 비밀회동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이끌어낸 인물이다. 쿠바의 권력구조를 유지하면서 미국의 안보·경제적 이해를 충족하는 선에서 합의에 이를 수도 있다.

쿠바혁명의 주역 중 한명인 체 게바라는 생전에 ‘승리의 그날까지 언제나(Hasta La Victoria Siempre)’라는 말을 쿠바 국민들에게 남겼다. 쿠바에 ‘완벽한 폭풍’이 닥치고 있다. 쿠바 국민들은 이번 위기를 딛고 혁명을 이어갈 수 있을까?

박상주 칼럼니스트 지구촌 순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