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원하는 이란 체제 전환 성공할까
혁명수비대가 미는 모즈타바 후계설 … 더욱 먹구름 짙어지는 미-이란 전쟁
22월 28일 오전 9시 40분 경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공격했다. 1989년 6월 3일 호메이니가 세상을 떠난 다음 날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하메네이는 저항의 축을 이끌다 테헤란 공습에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하메네이는 파흘라비 왕정시절 호메이니의 이슬람주의에 매료되어 열정적인 추종자로 활동하며 세속왕정에 반대하다 옥고를 치렀고, 1979년 혁명 성공 후에는 대통령직을 수행하며 호메이니의 총애를 받았다. 하메네이의 조상은 이란 동부 아제르바이잔주 중부 마을인 하메네에 자리잡았다. 하메네이는 하메네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란의 초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는 최고지도자가 반드시 최고 수준의 종교적 학식과 덕성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을 피력하면서, 모든 신자가 절대적으로 따르는 모범이 아니더라도 이슬람법적인 견해를 낼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며 최고지도자 선출 기준을 낮췄다.
당시 최고위 성직자가 아니었기에 하메네이는 최고지도자가 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처럼 최고지도자 선출 조건에 변화가 일면서 기회의 창이 활짝 열렸다. 호메이니가 죽은 다음 날 하메네이는 최고지도자 대리로 선출되었고, 최고지도자 자격 관련 헌법 수정안이 국민투표로 통과된 후 정식으로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선출조건의 변화 하메네이에 기회의 창
원래 호메이니 후계자는 몬타제리였다. 호메이니는 몬타제리를 두고 “내 일생의 열매”라고 할 정도로 몬타제리를 높게 평가하며 아꼈다. 호메이니가 1964년 국외로 강제 망명을 떠나 1979년 혁명성공 직전 귀국할 때 까지 몬타제리는 사실상 왕정반대운동을 주도하며 온갖 어려운 일을 겪었다. 그런데 영원히 좋을 것만 같던 호메이니와 몬타제라 두 사람 사이는 1988년 정치범 처리를 두고 갈라졌다.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인이면서도 이라크를 도왔던 반정부 조직 민중전사단 회원을 비롯해 반정부 반체제 인사들을 정식재판 없이 즉결 처형했다. 몬타제리는 이슬람공화정 수립 이래 가장 치욕스러운 일이라며 이를 비판했고, 호메네이는 인내심을 잃고 후계자 자리에서 몬타제리를 쫓아냈다. 이후 몬타제리는 가택연금 상태로 지내다 2009년 세상을 떠났다.
몬타제리가 낙마하면서 하메네이에게 기회의 창이 열렸다. 최고위가 아니라 중간급 성직자로 최고지도자가 될 수 없었던 하메네이를 위해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었고 최고지도자의 권한도 더 강화되었다. 우선 최고 지도자에게 국가나 이슬람을 위해 필요할 경우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무효화할 수 있는 법적권한을 부여했다. 최고 지도자는 법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란은 국회에서 법을 통과하더라도 헌법수호위원회에서 이슬람법 정신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면 법안을 반려했다. 국회에서 만든 법이 헌법수호위원회에서 거부해 폐기되는 빈도가 잦자 국회가 반발했다. 그래서 불필요한 갈등을 막고자 헌법수호위원회가 거부한 법안을 재의하고자 공익판별위원회, 즉 국정조정위원회를 운영했다. 개정 헌법에서 이 위원화를 공식화하고 모든 위원을 임명할 권한을 최고지도자에게 주었다. 최고지도자가 모든 법률 제정에 관한 최종 결정권자라는 말이다.
또한 최고지도자는 군을 직접 지휘하고 전쟁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권한도 가졌다. 그리고 사법부 수장, 국영 라디오·텔레비전 방송국 사장, 합동참모본부 의장 및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을 임명할 권한도 움켜쥐었다.
강력한 권한 쥐고 37년간 이란 이끌어
이처럼 하메네이는 개정 헌법에 따라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최고지도자로 지난 37년간 이란을 이끌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호메이니는 하메네이와는 비교할 수 없이 열렬한 존경을 받았지만 최고지도자로 있던 10년 중 8년을 이라크와 전쟁하며 보내야 했기에 이란 사회 구석구석에 영향을 끼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반면 하메네이는 개정된 헌법에 따라 더 많은 권한을 누리며 사회 곳곳에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메네이는 최고지도자실과 혁명수비대를 축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하메네이의 문고리 권력으로 둘째 아들 모즈타바를 언론이 자주 거론했는데, 사실상 모즈타바가 최고지도자실을 운영하며 혁명수비대를 좌지우지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노쇠한 아버지 대신 실질적으로 아들이 최고지도자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심지어 모즈타바를 차기 최고지도자로 밀려고 애썼다는 말도 있었다. 이를 두고 루하니 전 대통령은 “우리가 왜 혁명을 했는가”라며 세습을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하메네이는 혁명1세대 지도자다. 따라서 후세대보다 억압받는 자를 해방한다는 혁명정신을 국제정세에 대입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란을 왕정의 억압에서 해방시켰으니 이제는 시온주의자들의 압제에 고생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을 그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 결과 경제제재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저항경제를 주도하며 반시온주의 투쟁을 지원했다.
국외 반시온주의 조직에 자금을 지원하는 정부를 보면서 경제난에 허덕이는 이란 국민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국민부터 챙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현실이었다. 특히 루하니행정부가 예산 세부 내용을 공개하면서 얼마나 많은 돈을 해외에 지원하는지 파악한 국민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그러나 하메네이의 명령을 받드는 혁명수비대는 이를 강제 진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루하니행정부에서 이란을 정상국가로 만들기 위해 돈 세탁을 방지하는 국제 협약에 가입하려고 해도 결국 하메네이에 충성하는 혁명수비대의 벽에 막히고 말았다.
하메네이가 사라진 이란은 최고지도자 유고시 현재 헌법 111조에 따라 대통령, 사법부 수장, 헌법수호위원회 대표, 이렇게 3명으로 구성된 임시 지도부가 발족했다. 최고지도자는 88명으로 구성된 전문가의회에서 선출해야하는데, 공습과 암살이 일상화가 된 현실에서 의원들이 모여서 투표하기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전쟁이 끝나야 후임 최고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바른 시일 내에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할 것이라는 말이 돌았고, 분위기를 감지한 미국과 이스라엘은 전문가의원이 모여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장소라고 여겨지는 전문가의회 건물을 공습해 파괴했다. 이에 이란은 의원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공습이 실패했다는 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원하는 정권교체, 체제 전환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결국 이란은 현 체제에서 변화를 모색할 것이다. 덜 종교적인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최고지도자의 권한을 내려놓고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제일 합리적일 것이다. 현재 이슬람민주공화정은 종교의 힘이 최고지도자를 통해 강력하게 투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변화를 가질 기회는 올까? 걸림돌인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공군력을 견뎌낼 수 있을까?
모즈타바 후계설 내부갈등 증폭할 수도
그런데 이 글을 마치기 직전 이란의 대표적인 해외 반정부언론인 ‘이란인터내셔날’이 이란 내부 제보자를 인용해 차기 최고지도자로 하메네이의 아들 모즈타바가 선출되었다는 속보를 전했다. 아직 공식 확인된 소식은 아니다. 혁명수비대의 압력에 위원들이 모즈타바를 선택했다고 한다. 만일 이 보도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다시 모즈타바 제거 작전을 벌일 것이다. 모즈타바를 하메네이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인물로 여기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시위 진압 당시 인터넷을 차단하고 시위대 살해 명령을 내린 인물이 모즈타바라고 한다.
아버지 하메네이 생존 당시부터 사실상 최고지도자실을 운영하며 혁명수비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모즈타바가 최고지도자가 된다면 헌법을 개정해 최고지도자의 권한을 내려놓으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슬람체제 수호에 긍정적인 사람들마저 모즈타바에 등을 돌림에 따라 내부 갈등이 더 크게 터질 수 있다. “우리가 왜 혁명을 했는가”라는 루하니 전 대통령의 꾸짖음이 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실을 더 어둡게 할 먹구름이 이란에 더 몰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