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진의 미국 톺아보기

관세에서 자원·화폐전쟁으로, 미중 전략경쟁의 진화

2026-03-05 13:00:03 게재

주춤하는 듯했던 미중 전략경쟁의 전선이 이동하고 있다. 그간의 충돌이 고율 관세를 앞세운 전면적인 무역분쟁이었다면 이제는 양상이 사뭇 다르다. 최근 미 연방대법원이 행정부의 자의적인 관세 부과 권한에 제동을 걸면서 국면 전환은 더욱 가속화됐다. 의회의 위임 범위를 넘어서는 행정조치나 사법심사를 벗어난 광범위한 관세 부과 재량권 행사는 더 이상 유효한 카드가 아님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트럼프행정부는 소모적인 관세전쟁을 반복하는 대신 보다 구조적이고 치명적인 수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바로 ‘자원 패권’과 ‘통화 결제망’이다. 에너지와 핵심광물 등 자원시장을 안보의 최전선으로 격상시키고, 통화결제 시스템을 전략적 무기로 활용해 상대의 숨통을 조이는 구도다.

핵심광물 공급망과 에너지 통로 전쟁

중국은 오래전부터 자원을 안보자산으로 다뤄왔다. 1987년 덩샤오핑이 남긴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는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반세기를 앞서 본 혜안이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 커버스토리에 따르면 중국은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해 광물 채굴과 정제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굳혔다. 특히 ‘일대일로’를 통해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자원 부국들을 포섭한 결과 텅스텐 채굴량의 80%, 갈륨 정제량의 99%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이 수출 통제에 나서는 순간 미국의 F-35 전투기와 드론 등 첨단무기 체계는 물론 산업 공급망 자체가 마비될 지경이다. 이제 자원은 가격의 문제를 넘어 생존의 열쇠가 된 셈이다.

미 행정부가 올해 2월 발표한 ‘프로젝트 볼트(Project Vault)’는 자원전쟁에 뒤늦게 뛰어든 미국의 절박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때 그린란드를 통한 희토류 확보를 꾀했으나 체면만 구긴 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미국은 이제 정공법을 택했다. 미 수출입은행(EXIM)의 100억달러와 민간 자본 20억달러를 결합해 리튬 니켈 등 60여종의 전략 광물 가격 하한선을 정부가 보장하는 파격적인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맞서 국가가 직접 시장의 ‘최종 소비자’로 등판한 셈이다.

물론 채굴 이후의 정제 인프라가 여전히 중국에 쏠려 있어 후방 공정에 대한 과감한 투자 없이는 공급망 자립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고, 미 행정부가 막대한 예산으로 시장가격에 개입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그럼에도 자원을 무기화 한 중국에 맞서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현재 다른 선택지는 없어 보인다.

반대로 미국은 중국의 가장 치명적인 구조적 약점인 ‘에너지 취약성’을 파고들며 역공을 펼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5년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원유 수입 의존도는 70%를 상회해 자립률은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 특히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는 인공지능(AI) 산업을 위해 에너지원 확보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에너지 공급망이 흔들리면 국가 시스템은 전체적으로 마비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최근 중국의 주요 원유 공급처인 베네수엘라와 이란에 대해 내부의 비판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고강도 제재와 체제 압박을 지속하고 있는 배경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중국이 선점한 핵심 광물 공급망을 확보하는 동시에 중국이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 통로를 차단하는 것이 앞으로 본격화될 미중 간 자원전쟁의 핵심이다. 미국이 갈구하는 핵심 광물 시장을 중국이 끝까지 지켜낼지, 반대로 중국의 에너지 줄기를 미국이 끊어낼 수 있을지에 따라 패권 경쟁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다.

다음 전쟁터는 글로벌 금융결제 시스템

한편, 미중 간 상대방을 향한 자원 통제는 결제 체계의 주도권 문제와도 직결된다. 중국은 1970년대부터 이어진‘페트로 달러’의 아성을 깨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 오펙(OPEC) 국가들과의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를 확대하며 달러 중심 체제에 균열을 시도하고 있다.

더 나아가 중국은 중국 인민은행, 홍콩 금융관리국, 태국 중앙은행, 아랍에미리트(UAE) 중앙은행, 사우디아라비아가 주축이 된 다국적 디지털 화폐(CBDC) 공유플랫폼인 엠브릿지(mBridge)를 통해 기존 달러 결제망(SWIFT)을 우회하려는 거대한 실험을 전개 중이기도 하다. 엠브릿지 플랫폼의 누적 거래액은 지난달 기준 550억달러를 넘어섰으며 그 중 위안화의 비중은 95% 이상으로 압도적이다.

이에 더해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 인민은행의 공격적인 금 매집 행보다. 지난해 연말 중국 인민은행이 발표한 중국 금 보유량은 2300톤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2000년부터 2025년 이전까지의 장기 평균 보유량이 1258.43톤임을 감안할 때 현재의 비축량은 평균치를 2배 가까이 상회하는 압도적 수준이다.

이는 달러 자산 의존도를 낮추는 대신 위안화의 신뢰도를 실물 자산인 금으로 보강하려는 전략이다. 향후 화폐전쟁의 주도권이 디지털 인프라로 이동하더라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인 중국의 금 비축은 달러 중심 질서의 격변에 대비한 최후의 보루이자 위안화 기초체력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병기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처럼 위안화의 도전으로 기축통화 위상마저 흔들리고 있는 미국은 전통적‘페트로 달러’를 디지털 인프라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응전하고 있다. 만약 지금의 ‘페트로 달러’와 같이 전략 자원 결제를 미 국채를 담보로 발행되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 코인을 통해서만 이뤄지도록 설계된다면 달러화는 단순한 교환수단을 넘어 자원 접근을 허용하는 기술적 관문이 된다. 이는 전통적 ‘페트로 달러’를 넘어선‘상품 연동 디지털 달러패권’체제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물론 지금의 달러화에 대해서는 미 연준에 대한 트럼프행정부의 정치적 개입이 일상화되고 미국 부채가 38조달러를 돌파해 연간 이자비용만 1조달러에 달하는 등 통화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과거 신흥국 통화들이 겪었던 전형적인 불안패턴을 보이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달러화는 다른 통화가 대체할 수 없는 안전자산으로서의 성격을 보유하고 있기에 앞으로 전개될 미중 간 화폐전쟁은 당분간은 미국 우위의 경쟁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글로벌 경제 운영구조 재설계 과정

전략경쟁으로 이전과 달리 서로 단절된 글로벌 가치사슬(GVC)를 구축하게 된 미국과 중국은 이제 단순한 교역량의 숫자를 넘어서 글로벌경제를 지탱하는 새로운‘자원 공급망’과 ‘화폐 금융 네트워크’라는 근본구조 재편 단계로까지 진입하게 됐다. 효율성과 비용절감만 추구하던 글로벌 가치사슬(GVC)은 이제 안보와 통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분절된 블록경제로 바뀌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비용 상승은 불가피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공급망 분절화가 장기적으로 전세계 생산 단가를 약 20% 내외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일시적인 고물가 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국제 질서인 뉴노멀(New Normal)과도 같다.

미국은 안정적인 자원시장을 확보하는 한편 디지털 달러 인프라를 확장해 기존 질서를 수호하려 하고, 중국은 안정적인 에너지원 확보 과정에서 금 비축과 CBDC를 통해 위안화 중심의 대안 체계를 구축하려 한다. 그러나 최종적인 경쟁력은 자원 보유량이나 기술적 속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국제 거래 참여자들이 어떤 시스템을 더 신뢰할 수 있는지, 즉 제도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핵심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현재의 전략 전환은 단순한 통상 분쟁의 연장이 아니라 글로벌 경제 운영구조의 재설계를 하는 과정이다. 자원과 화폐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중심의 통제 경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며 그 결과는 힘의 과시보다는 그 시스템이 주는 신뢰의 무게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법무법인 서로변호사·M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