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의 미국 현장 리포트
충성의 정치와 소모품 장관들 - 트럼프가 놈을 버린 이유
크리스티나 놈(Kristi Noem)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3월 5일 전격 경질됐다.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첫 장관 해임이다. 후임으로는 오클라호마 출신 공화당 상원의원 마크웨인 멀린(Markwayne Mullin)이 지명됐다. 사업가이자 전직 프로 이종격투기 선수라는 다소 이색적인 경력을 지닌 그는 트럼프가 ‘마가 (MAGA) 전사’라고 부르는 확고한 트럼프 정책 지지자다.
논란의 중심에 섰던 국토안보부 장관
놈은 트럼프 2기 정부의 대표적인 충성파로 알려져왔다. 2024년 대선 당시 트럼프의 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전 사우스다코타 주지사였던 놈은 작년 1월 임명된 이후 트럼프정부의 반(反)이민정책을 앞장서서 수행하면서 트럼프 2기 정부 장관들 중 지금까지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숱한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무차별적인 이민 단속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피로감이 쌓이고 심지어 일부 공화당원조차 그녀가 국토안전부 장관 직무에 적합한지 의문을 제기함에 따라 계속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었다.
특히 지난 1월 미네아폴리스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의 총격에 사망한 두 명의 미국시민 르네 굿과 알렉스 프레티를 ‘국내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한 것은 대중의 큰 분노를 샀다. 알렉스 프레티에 대해서는 그가 총을 휘두르면서 이민단속 요원을 공격했다는 명백한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이 일로 그녀의 장관 사퇴를 요구하는 여론이 커져 심지어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사퇴 요구에 가세 했지만, 트럼프는 놈에 대한 지지를 공식적으로 철회하지 않았다. 놈 장관 또한 아직까지 희생자들에게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지난주 상원청문회에서도 희생자들을 테러리스트로 호도한 것에 대해 사과하는 것을 거부했다.
뿐만 아니라 장관 자리를 이용해 부당하게 개인적인 이익을 챙겨왔다는 구설과 의혹도 제기되어왔다. 국토안보부 산하 해안경비대가 지난해 고급 기종인 걸프스트림 G700 제트기 2대를 1억7200만달러(약 2500억원)에 구매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이 제트기의 공식 용도는 장거리 지휘통제와 추방 이민자 수송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침실 등 호화 편의시설과 18개의 좌석만을 갖춘 사실상 놈 장관의 전용기로 ‘황제의전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한 워싱턴의 아나코스티아-볼링 합동 기지 해안가에 위치한 넓은 해안경비대 사령관 관저에 무료로 거주하고, 해안경비대 소속 전용기를 개인적인 용무에 사용해왔다는 비판도 받았다. 최근에는 무려 2억2000만달러(약 3200억원)라는 거액의 정부 자금을 들여 제작된 TV 광고에 본인이 직접 출연해 장관 개인을 부각하는 ‘자기 홍보’를 위해 세금을 썼다는 비판을 받았다. 광고 계약이 공개 입찰 과정 없이 체결된 것도 부적절했다.
광고를 수주한 하청업체에는 놈 장관 측근의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가 포함되어 있다. 놈 장관과 내연관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수석보좌관 코리 루언다우스키도 이 회사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루언다우스키는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을 지낸 인물로 놈을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로비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임 발표가 나온 날 NBC 뉴스는 1억달러(약 1500억원) 규모의 ICE 요원 모집 광고 캠페인에 참여한 계약자도 공개 입찰 과정없이 놈 장관이 직접 선정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놈, 결정적 순간에 트럼프에게 책임돌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지금까지 놈을 일관되게 지지해왔다. 따라서 이번 경질은 갑작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놈 장관도 미리 언질을 받지 못한 것 같다.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놈 장관은 자신의 보좌관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2026년 11월 중간선거 때까지 자리를 지키도록 요청했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월 14일 이후 민주당은 이민 단속 요원의 보디캠 의무화, 단속 시 얼굴 마스크 착용 금지, 신분증 패용, 법원 영장 없는 체포 금지 등 ICE 개혁을 요구하면서 국토안전부에 대한 예산 집행을 멈춰세웠다. 셧다운과 이란과의 전쟁이라는 긴급한 과제들이 산적한 가운데 갑작스레 내려진 결정이라 무엇이 트럼프의 버튼을 누르게 했는지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언론 보도에 의하면 트럼프가 놈을 해고한 직접적인 이유는 지난 주 열린 의회 청문회에서 그녀가 한 답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되고 있는 2억2000만달러 광고에 대해 사전에 트럼프가 승인했다고 말하면서 책임을 트럼프에게 전가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놈의 답변 직후 트럼프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이라며 이를 전면 부인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내부 관계자에 의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상원 청문회의 놈 장관 발언을 듣고 엄청 화를 냈다고 전해진다.
국토안보부 산하 관세국경보호청 (CBP) 국장을 지낸 길 컬리카우스키는 “충성심이 절대적으로 핵심”이라면서 “윗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해 곤경에 빠뜨리지 않는 것이 경험상 좋은 법칙인데 특히 그 사람(트럼프)에게는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그걸 어겼다” 고 말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첫 임기 중 가장 후회하는 것이 '배신자'를 임명한 것이라고 참모들에게 말했다고 알려진다. 특히 그는 자신을 파시스트라고 불렀던 비서실장 존 켈리를 지목한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4성 장성 출신으로 2017년 7월 부터 약 1년 반 동안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존 캘리는 2024년 대선 직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잘못된 사람을 고위직에 앉히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부적격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1기 집권 당시 트럼프가 자신의 권력 한계에 대해 불만스러워 했고, 참모들에게 미국 헌법에 대한 충성보다 자신을 향한 충성을 요구했다고 폭로하면서 그는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파시스트라고 규정했다.
재집권한 트럼프가 다시는 켈리같은 '배신자'가 나오지 않도록 이를 갈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이번 놈의 해임 결정은 트럼프 내각의 지표가 국정수행 능력보다 그에 대한 충성도 여부에 달려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또한 놈 장관 해임이 트럼프정부의 강경 이민정책의 완화 시도로 보이지도 않는다. 트럼프는 그가 새 장관으로 지명한 멀린 상원의원 하에서도 국토안전부가 동일한 목표를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멀린 상원의원은 트럼프정부의 강경 이민정책을 열렬하게 지지해 왔다.
능력보다 충성, 트럼프 정치의 규칙
놈 장관은 2024년 출간된 자서전에서 자신의 반려견을 직접 총으로 사살한 일에 대해 상세하게 적었다. 자신이 키우던 크리켓이라는 이름의 14개월 된 강아지를 훌륭한 사냥개가 되도록 훈련시키려고 했지만 쉽게 흥분하고 지나친 공격성으로 인해 사냥을 망치고 심지어 주인인 자신에게 달려드는 등 ‘훈련받은 암살자’처럼 행동했기에 결국 직접 총으로 쏴 죽였다고 적었다.
그 결정이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선택이었다면서, 정치에서 꼭 필요한 일이라면 “어렵고, 지저분하고, 추악한” 일이라도 무엇이든 하려는 그녀의 의지를 보여주는 행동으로 정당화 했다. 같은 책에서 자신이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직접 만났다는 허위사실을 주장해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이제 놈 자신이 지나친 공격성으로 인해 사냥을 망치고 주인에게 달려들기까지 해 사냥개로서의 가치가 없어져 트럼프에게 팽을 당하는 꼴이 되었다. 트럼프정부 하에서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순간 모두가 소모품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