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란전쟁 목표는 세계패권”

2026-03-11 13:00:01 게재

세계 석유수출 통제로 중국 러시아 약화…"미·이스라엘 전략 성공하지 못할 것"

호르무즈 해협은 좁은 물길이다. 가장 좁은 곳의 폭은 33km에 그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에서 출발한 유조선들은 이 해협을 지나 인도와 중국 일본 한국 등으로 향한다. 하루 약 2000만배럴의 기름이 이 해협을 통과한다. 하루 20만t의 액화천연가스(LNG)가 이곳을 지난다. 이는 전세계 석유 소비와 LNG 해상 교역의 약20% 규모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경제의 ‘목줄’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혔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는 선박에 로켓과 드론 공격을 가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200여척의 유조선과 수백 척의 상선이 페르시아만 일대에 묶여 있다.

세계경제의 ‘목줄’이 눌리고 있다. 지난 2월 배럴당 70달러 안팎에서 거래되던 국제유가는 이란전쟁 발발 후 10여일 만에 110달러선까지 급등했다가 현재는 90달러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이 장기간 봉쇄될 경우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우려한다.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이 흔들리고, 주요국 경제에 인플레이션이 일고,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하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4일 이란 테헤란에서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건물 잔해 속에서 이란 구조대원들이 희생자를 수색하고 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이날 전 세계 에너지 수송의 핵심 항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UPI=연합뉴스

이란혁명보다 덜 심각하지만 낙관은 금물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그러나 이번 전쟁의 충격이 1979년 이란혁명 당시의 위기보다는 훨씬 덜 심각할 것으로 전망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 2일(현지시간) 온라인 플랫폼 ‘서브스택(Substack)’에 올린 칼럼 ‘전쟁과 석유, 그리고 세계경제’를 통해 “오늘날 주요 경제국들의 석유 의존도가 1970년대보다 훨씬 낮아졌을 뿐 아니라 물가도 안정적”이라면서 “이번 유가상승이 1970년대만큼 큰 경제적 타격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석유 집약도’는 1970년대 이후 70% 이상 감소했다. 미국의 경우 경제 규모는 세 배 이상 커졌지만 석유 소비량은 1970년대 후반과 거의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자동차 연비 향상과 천연가스 및 재생에너지 사용의 확산 덕분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설령 이란 전쟁으로 원유가격이 크게 오르더라도 수십년 전과 같은 경제적 피해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물가 역시 비교적 안정적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오늘날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연준의 목표인 2%보다 높지만 그 수준은 1979년에 비해 훨씬 낮다”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으로 인플레이션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쟁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크루그먼 교수는 지나친 낙관을 경계한다. 오늘날 세계 경제에는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위험들이 불거지고 있다. 이란전쟁이 촉발시킬 수 있는 새로운 위험들이란 무엇일까?

첫째, 금융위기 촉발 가능성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1970년대 후반에는 미국 금융 시스템이 강하게 규제되고 있었기 때문에 대규모 은행 인출 사태나 금융 혼란의 여지가 거의 없었지만 오늘날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금융 안정성에 대한 잠재적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특히 사모신용(private credit) 시장의 금융 취약성이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충격과 결합할 경우 예상치 못한 경제위기로 번질 수 있다”면서 “중동이 단순한 석유 공급 지역을 넘어 세계 금융과 자본 흐름의 중요한 거점으로 변했다는 점 역시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고 덧붙였다.

둘째, 주식시장 거품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그는 “스탠다드&푸어스(S&P) 500의 주가수익비율이 1970년대 후반에는 낮았지만 지금은 매우 높다”면서 “만약 전쟁의 여파로 경제 타격이 커질 경우 이러한 높은 가치 평가가 지속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셋째, 중동의 ‘금융・항공 허브’ 기능이 위축될 수 있다. 세계의 초부유층들이 안전한 금융 피난처를 찾아 두바이로 몰려들고 있다. 두바이 국제공항은 세계적 항공 허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란 전쟁이 ‘금융・항공 허브’로서의 역할을 교란한다면 이는 세계 경제에 또 하나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여러 위험들을 무릅쓰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왜 전쟁을 벌이는 것일까? 미국과 이스라엘은 아무런 도발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란을 공격했다. 이란 폭격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도 거치지 않았다. 유엔헌장 제2조 4항을 노골적으로 위반한 불법적인 공격이었다. 무엇을 노리고 이런 무서운 도박판을 벌이는 걸까?

석유 통제 통한 미국의 패권전략 성공할까

세계적 석학인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학 교수와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의 중동·아프리카 자문역인 시빌 파레스는 지난 3일 미국의 비영리 오피니언 매체인 ‘커먼 드림스(Common Dreams)’에 기고한 공동 칼럼을 통해 “이란전쟁을 벌이는 미국의 목표는 세계패권”이라고 분석했다. 삭스와 파레스는 “미국의 전략은 세계 석유 수출 통제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썼다.

미국은 이미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통해 러시아산 석유가 인도와 중국으로 수출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1월 전격적인 군사작전으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제거한 것도 베네수엘라 석유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한 미국의 노림수였다. 이란전쟁 역시 미국의 세계패권 전략 중 하나라는 게 삭스와 파레스의 주장이다. 미국이 이란을 포함한 걸프 지역 전체를 통제함으로써 세계패권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란전쟁은 30년 동안 이어진 미국 패권 전략의 일환이다. 1996년 작성된 이스라엘 안보전략보고서 ‘클린 브레이크(Clean Break)’에 바탕을 두고 있다. ‘클린 브레이크’ 전략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패권에 반대하는 모든 정부를 전복하는 것이다. 최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과 서안지구 점령은 물론 지난 수십년 간 이란, 이라크, 레바논 리비아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예멘 등에서 벌어진 전쟁과 정권교체 작전은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삭스와 파레스는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패권 전략은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인구의 4%에 불과한 미국이 지배하기엔 세계는 아주 넓고,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강한 저항에 부닥치고 있다.

“미국 친구가 되는 건 더 위험하다”는 교훈

이번 전쟁에서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들조차 미국을 비판하고 나섰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미국 의회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 없이 시작된 전쟁으로,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공격은 국제법 밖에서 수행된 군사작전이며 용인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인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는 “영국 기지는 합의된 방어 목적에만 사용된다”면서 처음에는 미군의 기지 사용을 허용하지 않았다.

걸프 지역 친미 국가들도 우회적으로 미국이 벌이는 이번 전쟁에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서방국가들과 중동의 친미국가들이 한 목소리로 이번 전쟁을 말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전쟁을 벌인 나라는 미국이지만, 정작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을 맞고 있는 곳은 걸프 국가들이다. 중동의 석유시설 파괴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충격을 받는 곳도 미국이 아닌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말했다. “미국의 적이 되는 것은 위험하지만, 미국의 친구가 되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 미국의 친구인 걸프 국가들은 미국이 벌인 전쟁 때문에 자국 영공으로 새까맣게 날아오는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을 맞고 있다.

대한민국도 미국의 친구다. 주한미군 2만8500여명이 우리 땅에 주둔해 있다. 얼마 전 주한미군 전투기들이 서해 중국 방공식별 구역 근처에서 중국 전투기들과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상상조차 끔찍한 일이지만 “미국의 친구가 되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는 키신저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좋은 전쟁은 없다. 나쁜 평화도 없다.” 미국 건국시조인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여기저기 전쟁을 벌이는 미국 정부에 상기시켜 주고 싶은 말이다.

박상주 칼럼니스트 지구촌 순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