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과 한국의 진로
이재명정부, 러시아 외교 방치하고 관망하는 기조 … 국익 관점의 재설계 필요
우크라이나 대평원에서 타오른 불길이 가자와 페르시아만으로 번졌다.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가 끝나고 세계가 다극체제로 가기 위한 전환 비용이라고 하기에는 고통의 정도가 너무 크다. 이제는 전쟁이 일상화된 혼돈의 시대다.
그나마 4년을 끌어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중대한 변화가 시작된 것이 반가운 소식이다. 2026년 1월 말 아부다비에서 종전 조건에 대한 실질적인 3자협상이 시작되었다. 미국이 위협 제재 모호한 약속 등으로 즉각적인 휴전을 유도하던 정책을 포기하고 포괄적인 분쟁 해결로 역할을 변경했기에 가능했다.
미국의 태세 변경을 끌어낸 것은 러시아의 공세적 대응이었다. 평화협상을 회피하고 전투 행동의 격화만을 유도하던 우크라이나의 전력 시스템 등 도시 공공 인프라를 집중 타격했다. 우크라이나 지원 및 재건 비용을 급격하게 증가시키는 고통을 안긴 것이다. 전선에서는 우크라이나의 방어 체계를 무너뜨리고 진격 작전을 활성화하려는 의지를 과시함으로써 미국 유럽연합(EU) 우크라이나의 조율된 압박을 무력화했다.
협상 시작됐지만 돌파구 안보여
협상은 시작됐지만 미래 전망은 불투명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영토와 안보 등의 문제에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포기와 병력 축소, 점령지의 국제법상 인정과 우크라이나군 철수, 우크라이나에 외국군 주둔 불가, 제재 완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2014년 이후 점령지 불인정, 우크라이나 군 병력 제한 거부, 주권 인정 및 나토에 준하는 안보 제공 등을 고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가 양측을 오가며 협상안을 조율했지만 번번이 실패해 체면을 구겼다. 러시아를 대중국 견제의 동반자로 유인하는 것이 급하다고 러시아측 입장을 대놓고 두둔할 수는 없었고, 미국의 배신에 분노하는 EU와 우크라이나를 향해 통 큰 양보와 중재안을 수용하라고 압박하는 데도 무리가 따랐다. 이래저래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미국은 추가 제재, 지원 중단 등으로 양측을 압박·설득하고 있지만 불신만 키우고 있다.
만일 평화협상이 공전되고 장기 소모전이 지속된다면 최종 승자는 누구일까. 현재 EU는 전황이 악화될수록 ‘러시아의 위협’ 요인을 부각시켜 어떻게든 EU 통합을 유지하려 하지만 분쟁 장기화에 따른 비용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2026년 미국 국가방위전략은 러시아가 더 이상 미국 자체에 대한 ‘현실적 위협’은 아니며 단지 ‘나토 동부 회원국에 지속적이지만 관리 가능한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일차적 책임과 헌신은 EU에 떠넘겼다. 당장의 전비 조달도 문제지만 전후 우크라이나 재건 및 사회체제 유지 부담도 근심거리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인구의 1/3 이상이 노인이다.
점점 부담 커져가는 유럽
군사안보적 측면에서도 유럽은 위태롭다. 장기 소모전을 지속할 비용 부담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군산복합체의 역량이 취약한 것이 더 큰 문제다. 미국에 무기 장비 정보 제공을 의존하는 유럽이 단기간에 독자적인 방위체제를 구축하기는 어렵다.
위성통신, 통합방공 및 미사일 방어, 장거리 타격 수단, 표적 포착 및 평가·정찰 시스템, 그리고 국방 디지털화 전반에서 유럽은 사실상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이 보유한 군용위성은 250개인 반면 영국은 고작 6개, 프랑스는 17개에 불과하다. 미국의 이탈은 곧 전력의 심각한 손실을 의미한다.
유럽의 경제도 좀처럼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대러 제재로 유럽은 러시아 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 반면 러시아의 저렴한 에너지 시장에 대한 접근을 차단함으로써 급격한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고물가, 산업 경쟁력 약화 등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특히 에너지 집약적 산업 구조를 가진 독일이 직격탄을 맞았다. 2023년 역성장(-0.5%)했던 독일 경제는 2025년에 0.2% 성장했다. 2026~2027년에도 부진한 성장세는 1.0%, 1.3%에 그칠 것으로 예측된다. 유럽 경제의 엔진으로 불리던 독일의 강력한 성장세는 이제 볼 수 없게 되었다.
유럽은 내부의 분열도 심각하다. 이제 유럽은 단일한 공동체가 아니다. 분쟁의 외교적 해결을 촉구하는 그룹과 장기적인 군사·정치적 대결을 지속하자는 그룹으로 양분되었다. 제재에 대한 견해차도 크다. 최근 유럽의회의 러시아산 석유·가스 신속 포기 계획에 헝가리는 자국의 에너지 안보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라며 반발했다.
우크라이나는 친러 성향의 헝가리정부를 압박하자고 ‘드루쥬바(우정)’ 파이프라인을 통한 러시아산 원유 공급을 차단했지만 이에 반발해 헝가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휘발유 공급 중단 조치를 단행했다. 각자도생의 길에 내몰린 국가들이 국익을 좇으며 충돌하고, 그 여파로 유럽의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는 양상이다.
제재는 러시아를 고립시키지 못했고 당사국들의 경제적 고통만 가중시키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었다. 러시아는 어리석은 ‘자해적’ 조치라며 비웃는다. EU는 유럽 가스 수요의 35~40%를 차지하는 러시아산 PNG 수입을 미국 카타르 등으로부터의 LNG 수입으로 대체하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러시아의 LNG 수출 위상만 높여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2024년 러시아는 유럽의 LNG 시장에서 3위를 차지했다. 2025년 러시아산 LNG의 EU 총수입 대비 비중은 16~17%였는데, 2026년 초에는 19%를 넘어섰다. 반면 EU의 LNG 수입 시장에서 약 22~25% 수준을 차지하던 카타르 비중은 2025년에 약 10~13% 수준으로 감소했다.
유럽 지역 천연가스 거래 기준인 ‘더치 TTF 선물’ 가격은 최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직후 약 68% 급등했다. 게다가 EU 이사회는 2027년 말까지 LNG를 포함한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러시아는 이러한 맹목적인 제재 결정이 EU 경제를 더 크게 타격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편 최근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미국 재무부는 인도에 원유 및 석유제품의 판매, 운송 또는 하역을 허용하는 30일 일반 면허를 발표했다. 불온시했던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사실상 합법화한 것이다. 한시적인 제재 해제 덕분에 러시아는 숨통이 트이게 되었고 중동확전에 따른 유가상승으로 장기 지구전을 지속할 재정 여력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대러정책, 국익과 실용관점에서 재설계
문제는 우리의 대러정책이 진로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재명정부는 기대와 달리 러시아 외교를 방치하고 관망하는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 러-우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급격한 한러관계 복원 시도가 자칫 대한민국의 글로벌 평판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둘째, 지금은 러시아가 북한과 밀착하고 있지만 종전만 되면 실익을 좇아 남한 경사 정책으로 돌아설 것이라 기대한다. 셋째, 미러 정상회담 이후 종전 협상이 급물살을 타면 곧 평화의 시간이 도래할 것이라 확신한다. 결과적으로 미러 관계가 개선된다는 신호가 나오기 전까지는 제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에 갇힌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첫째, 종전 후 러시아가 한국과의 경제통상에서 이익을 보자고 북한을 내칠 가능성은 낮다. 북한과의 포괄적인 전략적 상호작용은 푸틴 대통령의 유라시아 안보 구조 구축을 구성하는 중요한 축이다. 둘째, 종전 실현이 임박했다 하더라도 우크라이나의 탈군사화 등 근본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 한 푸틴 대통령이 전쟁을 멈출 가능성은 크지 않다. 만일 나토가 러시아의 승리로 종결될 협상에 반대하고 우크라이나를 전선으로 더 강하게 몰아간다면 분쟁은 예상보다 장기화될 수 있다.
따라서 서구의 제재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안일하게 종전 이후만을 기다리는 것은 안전한 책략이 아니다. 미국의 행태에서 보듯 제재는 언제든 국익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정책수단에 불과하다. 중국이 잠식해 들어가는 유라시아 시장 지배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경직된 제재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장의 중동발 에너지 공급망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대러정책을 국익과 실용의 관점에서 재설계해야 한다.
인천대 교수
동북아국제통상물류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