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추경·최고가격제로 ‘중동 리스크’ 넘어설 수 있을까

2026-03-20 13:00:02 게재

수출 온기 억누른 ‘중동전쟁 장기화’… 유가·환율·물가 ‘3고’ 비상등

정부, 30년 만에 ‘석유 최고가격제’ … 시장개입 불사한 물가와 전쟁

3월 그린북 “중동전쟁으로 경기하방 위험 증대” 정부 경기진단도 변화

한국 경제가 대외 악재의 거센 파고 앞에 섰다. 올 초 반도체를 필두로 한 수출 회복세가 경기 반등의 신호를 보냈으나,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매파적 금리 동결이 찬물을 끼얹었다.

19일 재정경제부는 ‘2026년 3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중동리스크로 경기하방 위험이 증대됐다”며 이같이 진단했다. 정부는 지난달까지 최근 경제상황에 대해 ‘수출을 중심으로 회복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해왔다. 그러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촉발된 중동전쟁이 확산되자 경기진단 기조를 바꾼 것이다.

심각한 표정의 재정·금융당국 수장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오른쪽 두번째)이 1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확대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중동발 ‘에너지 쇼크’ = 최근 우리 경제는 경제지표상 온기와 민생의 한기가 공존하는 괴리를 겪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1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설비투자(0.2%)와 소매판매(0.8%)는 반등했지만, 건설투자(-11.3%)가 급감하며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았다.

최대 위협요인은 대외불확실성이다. 중동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요동치면서 수입 물가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로 안정세를 보였으나, 유가 상승분이 반영되는 3월부터는 다시 3%대 진입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경고등’이 켜졌다. 여기에 미국 연준 파월 의장의 매파적 발언으로 달러 강세가 심화되며 환율발 물가 압력까지 가세했다.

정부는 3월 그린북에서 “중동상황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 등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로 물가 상승과 민생 부담 증가, 경기 하방위험 증대가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특히 글로벌 경제는 중동상황, 주요국 관세 부과에 따른 통상환경 악화 등으로 국제금융시장과 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고 교역·성장 둔화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 대응은 = 정부는 앞서 물가안정을 위해 시장경제체제에서 이례적인 ‘가격 통제’ 카드를 꺼냈다. 지난 13일부터 시행된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는 1997년 가격 자유화 이후 30년 만의 조치다.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에 상한선(휘발유 1724원, 경유 1713원)을 설정해 유가 상승 충격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것을 기술적으로 차단했다.

정부는 공급망 관리에도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IEA와 공조해 2246만 배럴의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유류세 인하 폭을 법정 최대치인 37%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아울러 정부는 대외 충격을 흡수할 ‘민생 방파제’로 4월 추경(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공식화했다. 이번 추경의 핵심은 ‘재정 건전성’과 ‘적기 지원’의 조화다.

1월 관리재정수지가 11조3000억원 흑자를 기록하는 등 세수 여건은 양호하다. 정부는 추가 국채 발행이라는 ‘나랏빚’ 대신 초과 세수와 세계잉여금을 활용할 방침이다. 고유가 직격탄을 맞은 화물·운송업자, 농어민에게 유가 보조금을 추가 지급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소상공인 지역화폐 발행 지원 예산을 대폭 증액해 내수 활력을 직접 수혈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전쟁발 ‘물가충격’ 우려 = 문제는 중동전쟁의 장기화 가능성이다. 이렇게 되면 국제유가를 끌어올려 한국 경제를 ‘비용 충격’에 빠트릴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로 버텼다. 하지만 수입물가가 먼저 뛰고(원유·항공유 급등),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을 넘어서면 4~5월 체감물가가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가 커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2020=100)는 118.40으로 전월 대비 0.3%, 전년 동월 대비 2.0% 각각 상승했다. 표면상 2%대 안정세다. 하지만 근원 흐름은 더 높다. 식료품·에너지 제외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3%(전월 대비 0.4%), 농산물·석유류 제외지수는 2.5%(전월 대비 0.3%) 올랐다. 여기에 전쟁발 물가상승이 겹치면 ‘2%대 안정세 유지’이 깨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정부도 3월 그린북에서 “2월 물가는 전월과 같은 상승폭(2.0%)이었지만, 개인서비스 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3.5%로 확대됐고(1월 2.8%→2월 3.5%), 향후 지정학 리스크 확대가 민생 부담과 경기 하방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유가 상승은 석유류 가격을 통해 소비자물가를 자극하고, 공산품 등 전 분야에는 2~3개월 시차를 두고 영향이 미친다. 4~5월에 ‘전쟁발 물가상승’이 전면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도 3월 물가의 핵심 변수로 유가를 지목했다. 김웅 부총재보는 지난 6일 물가상황점검회의에서 “중동 상황으로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서 비용 측면의 물가 상방 압력이 커졌다”고 밝혔다. 다만 낮은 농축산물 가격 흐름, 정부 물가 안정 대책이 하방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유가 움직임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4~5월 ‘전쟁발 물가급등’ 전면화 가능성 = 유가 급등이 ‘1차 충격’이라면, 환율은 국내 가격 전이를 증폭시키는 ‘2차 충격’이다. 19일 원달러 환율은 주간 거래 종가 기준 1501.0원으로 마감했다. 2009년 이후 17년 만에 1500원대를 종가로 찍었다는 점, 장중 1505원까지 출렁였다는 점이 시장불안을 보여준다.

고환율은 수입물가를 통해 다시 물가를 자극하고, 물가가 오르면 금리·소비·투자 판단이 흔들리는 악순환을 만들 수 있다.

전쟁리스크에 대비한 마지막 정책수단은 재정이다.

고유가·고물가 우려 속에서 최대 20조원 수준의 추경이 거론된다. 최고가격제 시행에 따른 정유사 손실보전과 취약계층 에너지 바우처 확대 등 선별지원이 중심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재경부는 “중동상황 영향 최소화를 위해 민생안정·경제회복을 위한 추경을 신속히 편성하고,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 중심으로 각 부문을 24시간 모니터링하면서 이상징후 발생시 신속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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