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발 에너지 대란, 세계경제 덮친다

2026-03-30 13:00:13 게재

아시아 넘어 유럽·중남미로 위기 확산

일시적 제재 완화론 성장 충격 못막아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한 달째 이어지면서 국제 에너지 시장 충격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중남미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는 29일(현지시간) 최근 석유·가스 트레이더, 정유업계 경영진, 브로커, 해운 관계자 등 30여명을 취재한 결과, 업계에서는 세계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아직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일부는 이번 충격이 1970년대 오일쇼크와 맞먹거나 그 이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미 태국·파키스탄·호주 등 아시아 곳곳에서는 연료 부족과 배급 조짐이 나타나고 있으며, 업계는 이런 현상이 곧 유럽과 중남미로 확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핵심은 공급 공백 규모다. 해협 봉쇄로 세계 원유 흐름은 하루 약 1100만배럴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비축유 방출, 우회 수송, 제재 완화 같은 대응 조치를 감안해도 하루 약 900만배럴의 공급 차질이 남는다는 분석이다.

이는 영국·프랑스·독일·스페인·이탈리아의 원유 소비를 모두 합친 것보다 큰 규모다. 현재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수요가 일부 줄어들면서 충격이 일정 부분 흡수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문제는 지금까지 동원된 대응 수단이 모두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미국과 주요국의 비축유 방출, 러시아·이란산 원유 제재 완화, 사우디와 UAE의 우회 송유 확대 등은 시간을 벌어줬을 뿐 근본 해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LNG 시장은 더 취약하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LNG 공급의 약 20%를 차지하지만, 원유와 달리 뚜렷한 대체 수송 경로가 없고 전략 비축도 거의 없다. 여기에 카타르의 대형 LNG 시설 일부가 미사일 공격으로 손상되면서 공급 차질 장기화 우려도 커졌다.

에너지 업계는 해협 봉쇄가 길어질수록 단순한 가격 상승을 넘어 실제 물리적 부족 사태가 본격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유럽은 몇 주 안에 디젤 공급 부족에 직면할 수 있고, 중남미도 비슷한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디젤은 물류와 산업 전반을 떠받치는 핵심 연료라는 점에서 파급력이 더 크다.

이번 충격은 이미 물가와 성장률에도 반영되기 시작했다. 블룸버그 경제분석팀은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4%로 높아졌고, 유로존은 유가가 배럴당 110달러 수준만 유지돼도 연간 물가상승률이 약 1%p 오르고 GDP는 0.6%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유가가 170달러까지 뛸 경우 물가와 성장 충격은 두 배 가까이 확대돼, 세계 경제가 다시 스태그플레이션 압박에 놓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장 일각에서는 배럴당 200달러 가능성까지 거론한다.

결국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 세계는 더 비싼 가격을 감수하거나, 비행·운송·산업생산·소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충격을 흡수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판단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유가 급등을 넘어, 세계 경제 활동과 화석연료 소비 자체를 강제로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업계가 이번 위기를 일시적 시장 불안이 아니라, 전세계 에너지 질서를 흔들 구조적 충격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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