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 대행 범죄, 플랫폼 타고 확산

2026-03-31 13:00:29 게재

텔레그램 기반 의뢰·모집·실행 분리 … 사적 보복 ‘시장화’ 현실로

텔레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의뢰를 받아 타인의 주거 공간을 훼손하거나 협박성 행위를 대신 수행하는 이른바 ‘보복 대행’ 범죄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단순한 일회성 범죄를 넘어 의뢰·모집·실행이 분리된 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일종의 ‘플랫폼형 범죄’로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 범죄가 의뢰·모집·실행이 분리된 구조로 작동하며, 돈을 지불하면 보복을 대신 수행하고 있어 사실상의 ‘비공식 처벌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31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양천구와 경기 시흥·의왕·파주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유사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양천경찰서는 텔레그램을 통해 의뢰를 받아 아파트 현관문에 인분을 뿌리고 래커로 욕설을 적는 등 범행을 반복한 일당 4명을 구속했다. 경기 의왕에서는 유사 수법 범죄를 저지른 일당 중 1명이 구속됐고, 파주에서는 건당 50만원을 받기로 하고 범행에 가담한 20대 남성이 구속 송치됐다.

피해자들은 현관문 훼손과 유인물 배포 등으로 주거 공간이 직접 침해되면서 일상 자체가 무너지는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범죄 수법 고도화 양상 = 이들 사건은 수법과 구조가 거의 동일하다. 텔레그램 채널 운영자가 ‘복수 대행’ ‘원한 해결’ 등을 내걸고 의뢰인을 모집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급전 알바’ 형태로 실행 인력을 별도로 모집한다. 의뢰인과 실행 인력은 서로 신원을 알지 못한 채 중간 조직을 통해 연결되는 구조다. 의뢰인·브로커·실행 인력이 분리된 이 구조는 온라인 플랫폼을 매개로 반복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기존 보복 범죄와 차이를 보인다. 범행 대가는 건당 50만~100만원 수준으로 형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의뢰·모집·실행이 분리된 구조가 반복되면서 범죄가 일종의 ‘거래 형태’로 굳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부 채널에서는 ‘직장 내 이미지 훼손’ ‘범죄 덮어씌우기’ ‘사고 위장’ 등 구체적인 보복 방식을 제시하며 사실상 서비스처럼 범행을 홍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범행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추가 실행을 보장하는 조건까지 내세우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사건이 잇따르면서 이 같은 구조가 단발성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범죄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범행 수법도 점차 고도화되고 있다. 초기에는 현관문에 오물을 투척하거나 욕설을 낙서하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최근에는 명예훼손성 유인물을 제작해 배포하거나 도어락에 본드를 바르는 등 피해자의 일상생활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개인정보를 확보하기 위한 수법이 조직적으로 동원되는 점이 특징이다. 서울 양천 사건에서는 조직 총책이 범행 대상의 주소를 확보하기 위해 배달 플랫폼 외주업체에 상담사로 위장 취업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확인됐다. 확보된 개인정보는 실행 인력에게 전달돼 범행에 활용됐다. 경찰은 이러한 방식이 다른 사건에서도 반복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조직간 결합 의심 사례도 = 최근에는 다른 범죄와 결합된 정황도 나타나고 있다. 투자 사기 피해자가 계좌 지급정지를 신청한 뒤 곧바로 보복 범죄를 당하는 사례가 확인되면서 사기 조직과 보복 대행 조직이 연계돼 있거나 사실상 동일 조직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범죄 수익 보호와 피해자 압박 수단으로 보복 범죄가 활용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범죄를 은폐하거나 수사를 방해하는 수단으로까지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더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같은 연계 여부에 대해서는 수사당국이 추가 확인을 진행 중인 사안이다. 플랫폼 규제 공백 속에서 이러한 범죄가 사실상 방치된 채 확산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범죄가 단순 보복을 넘어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플랫폼형 범죄’라는 점에 주목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이 범죄는 의뢰·모집·실행이 분리된 구조로 작동하면서 참여자만 바뀌며 계속 재생산되는 특징이 있다”며 “플랫폼 기반 연결 구조가 형성되면 단속만으로 확산을 막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또 “금전 대가가 형성되면서 보복 행위가 거래 형태로 고착되고 있다”며 “수요와 공급이 맞물리면 범죄가 개인 일탈이 아니라 시장처럼 작동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온라인으로 의뢰를 받아 주거 공간을 훼손하거나 협박성 행위를 대신 수행하는 이른바 ‘보복 대행’ 범죄가 확산하고 있다. 이 범죄는 돈을 지불하면 보복을 대신 수행하는 사실상의 ‘비공식 처벌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사진 ChatGPT 이미지 생성

◆익명성에 해외 서버 기반 결합 = 텔레그램의 익명성과 해외 서버 기반 운영 구조도 범죄 확산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일부 사건에서는 총책이 해외에 있는 것으로 추정돼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사건 간 연관성이 확인될 경우 병합 수사를 진행하고, 보복 대행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집중 수사관서 지정도 검토 중이다. 다만 익명 기반 플랫폼을 활용한 범죄 특성상 조직 전체를 추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단순 개별 사건이 아니라 조직화된 범죄로 보고 대응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며 “플랫폼 기반 범죄에 맞는 수사 방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이 구조가 확산될 경우 사적 보복이 공식적인 처벌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며 “이는 법치주의 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 범죄 대응을 넘어 제도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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