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중앙은행들 미 국채 내다판다

2026-04-01 13:00:01 게재

뉴욕 연은 수탁분 820억달러 감소 … 미 국채 금리상승 압력도 커져

3월 31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셸 주유소에서 휘발유 가격이 표시돼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으로 페르시아만 원유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미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2022년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이다. AFP=연합뉴스
세계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등 해외 공공 보유 주체들이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에 맡겨 둔 미국 국채를 대거 줄였다. 이란 전쟁 이후 자국 경제와 통화를 방어하기 위해 달러 자산을 처분한 결과다.

지난 31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연방준비제도 자료를 인용해 각국 중앙은행과 각국 정부, 국제기구 등 해외 공공 보유 주체들이 뉴욕 연은에 맡긴 미 국채 규모가 2월 25일 이후 820억달러 줄어 2조7000억달러로 감소했다고 전했다. 2012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뉴욕 연은에 보관된 외국 공공 부문의 미 국채 보유액이 최근 들어 가파르게 감소했다는 점은, 전쟁 충격이 외환보유 전략 전반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감소는 전쟁 발발 뒤 한달 동안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FT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석유 수입 의존국들의 재정이 흔들리고, 달러 강세까지 겹친 결과라고 전했다. 일부 중앙은행은 자국 통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달러를 팔거나 달러 자산을 현금화할 필요가 커졌다는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미국 금리 전략가 메건 스와이버는 “외국 중앙은행과 각국 정부, 국제기구 등 해외 공공 부문이 미 국채를 팔고 있다”고 말했다.

브래드 세처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튀르키예, 인도, 태국 같은 석유 수입국이 대표적일 수 있다고 짚었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달러로 결제하는 원유 수입 부담이 커지고, 자국 통화 약세까지 겹쳐 외환 방어 필요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이란 공습 전날인 2월 27일 이후 외환보유액에서 외국 국채 220억달러어치를 매각했다. 세처는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미 국채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태국과 인도 중앙은행 자료에서도 전쟁 이후 외환보유액 감소가 확인되지만, 이것이 미 국채 매도인지 달러 예금 감소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스와이버는 중동 산유국들도 줄어든 석유 수입을 메우기 위해 관련 자산을 팔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들 국가는 전체 미 국채 보유 비중이 크지 않다.

미 국채는 세계 중앙은행들이 가장 핵심적인 외환보유 자산으로 여겨 왔다. 규모 30조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대 채권시장인 데다 유동성이 풍부해서다. 그러나 외국 중앙은행들의 매도는 중동 분쟁이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로 이미 압박받던 미 국채 시장에 추가 부담을 주고 있다. 그 여파로 2년물과 10년물 미 국채 금리는 이번 달 들어 2024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뛰었고, 미국 정부는 물론 기업과 가계의 차입 비용도 높아졌다. 중동발 지정학 충격이 미 국채 시장과 미국 실물경제의 금융 여건까지 흔들고 있다는 뜻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감소를 놓고 해석이 엇갈린다. 일부 투자자들은 달러 강세 국면에서 외국 중앙은행들이 자산을 재조정하고 통화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본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시장 변동성 속에 외국 공공 보유자들이 실제 유동성을 끌어다 쓰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한다. 에이곤자산운용의 스티븐 존스는 “비상금을 끌어 모으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일부 보유분은 실제 매각이 아니라 뉴욕 연은이 아닌 다른 수탁기관으로 옮겨졌을 가능성도 있다. FT는 이번 움직임이 외환보유액 운용자들이 장기적으로 달러와 미 국채 비중을 줄이며 자산을 다변화하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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